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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을 이렇게 그냥 둘 겁니까?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8월 11일 금요일 제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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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둘이 마주보고 가락을 내느라 열심이다. 왼쪽 사내는 버티고, 오른쪽 사내는 막 힘을 쓸 참이다. 작업물에 땀 떨어질세라 두 사내는 머리끈을 동였다. 그 아래로 물건에 지저분한 것 묻지 말라고 받침대도 받쳐두었다. 받침대 위에는 우리 눈에 익숙한 물건이 보인다. 틀림없는 엿가위이다. 두 작업자 너머의 사내도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작업대인 듯 진열대인 듯 보이는 간이 탁자 앞에 선 사내는 완성한 가래엿 등을 한참 정리하고 있다. 더벅머리 아이의 허리께에 언뜻 비치는 돈주머니가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라니? 그림 오른쪽 맨 위, 그림 제목을 보니 그렇다. ‘당임매매(糖餁賣買)’, 곧 ‘엿 만들어 장사하기’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빈민족학박물관
김준근 작 <당임매매(糖餁賣買)>.

엿을 고는 한편 사러 온 사람에게 바로 엿을 내주는 엿집의 풍경이다. 그림 제목 바로 밑 붉은 낙관이 그린 이를 알려준다. ‘箕山(기산)’, 앞서 소개한 바 있는 19세기 말 화가 김준근의 호가 바로 ‘기산’이다. 현대적 일러스트레이터의 면모가 다분한 김준근은 안 그린 장면도 없고, 못 그린 장면도 없었다. 그러니 김준근의 시대에 가장 인기 높은 간식거리이자 꿀이나 설탕보다 대중적으로 쓰인 감미료를 만드는 엿집을 어찌 빠뜨리겠는가. 엿은 홀로 맛난 과자가 되기도 하지만 강정, 정과, 약과 등의 바탕이 되기도 하는 식료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 <당임매매>는 한국 제과사의 한 장면을 적극적으로 포착했다고 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준근은 산수화의 조연으로 사람을 그린 적이 없다. 구체적인 장소와,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동작, 행위에 바로 뛰어들었다. 이 작품처럼 엿집에서 막 갱엿을 켜는 모습이나 돈주머니 찬 더벅머리 아이가 엿을 정리하는 식의 ‘과정’을 한 폭에 담은 화가는 없었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와 유숙은 그저 가만히 선 엿장수를 그렸을 뿐이다. 김준근은 막 거리에 나서 엿가위를 치며 씩씩하게 걷고 있는 엿장수 그림도 남겼다. <매당아(賣糖兒·엿장수)>란 그림이 그것이다.


엿은 맥류(주로 보리)에 물을 먹여 싹을 낸 뒤 말려 부순 엿기름에서 나온다. 쌀 등 곡식으로 지은 밥에 엿기름을 부어 삭힌 물이 엿물이다. 이를 옅게 고면 조청이다. 계속 졸여 짙어지면 검붉은 갱엿이 된다. 엿기름을 한자로 쓰면 ‘맥아(麥芽)’다. 영어로는 몰트(malt)다. 술 이름에 몰트가 들어가면 엿기름인 줄로 아시라. 맥주도 위스키도 엿과 마찬가지로 엿기름의 자식이다. 갱엿을 잡아 늘이는 작업을 되풀이하면 갱엿 안에 공간이 생기면서 빛깔은 흰빛이 돌게 되고 오도독 부서지기 쉬운 물성까지 생긴다. 이것이 흰엿이다. 김준근의 그림에서 보는 대로이다. 이렇게 낸 엿을 외가락으로 모양을 잡으면 가래엿, 두세 가락을 더 꼬아 꽈배기 모양을 지으면 타래엿이다. 부재료를 알맞게 써 풍미를 더하면 호박엿, 무엿, 생강엿, 고구마엿, 옥수수엿같이 다채로운 변주가 이루어진다. 동물성 부재료를 쓰기도 한다. 함경도 지방의 염소엿, 제주의 꿩엿이 대표적이다.

가래엿, 타래엿, 호박엿, 생강엿, 꿩엿…

한때 가장 친숙한 간식이자 식료였던 엿. 하지만 엿은 이제 꿀보다 값싼 식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물엿’이란 이름을 단 전분시럽에 완전히 자리를 내주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음식, 고향의 맛이어서가 아니다. 엿은 여전히 훌륭한 참고자료이다. 과자를 마무리하는 마감재로서도 그렇다. 엿에는 꿀·설탕·전분시럽과 다른 여러 개성, 제과상의 장점이 있다. 저 그림 한 장을 들여다보며 글쓴이는 안타까워서 팔짝 뛸 지경이다. “내가 제과 종사자라면 엿을, 조청을 그냥 두지 않을 텐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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