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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코드]에 담긴 ‘미인도’의 진실

고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씨가 책 <천경자 코드>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검찰이 천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7년 08월 09일 수요일 제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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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12월19일 검찰이 “<미인도>는 고 천경자 화백이 그린 진품이다”라고 발표한 직후의 일이다. 제목에 ‘결론’ ‘종지부’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쏟아졌다. “이제 천 화백의 작품세계 연구에 매진할 때”라는 미술계 인사들의 발언도 소개됐다. 1991년 천 화백이 문제를 제기한 이래 25년 만이었다.

김정희씨(63)에게는 끝이 아니었다. 미국 몽고메리 대학 미술과 교수인 김씨는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이다. 김 교수는 7월20일 직접 쓴 책 <천경자 코드>를 내놓았다. 가족이자 미술인으로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을 풀어 적었다. 김정희 교수에게 천경자 화백과 <미인도> 이야기를 물었다.

ⓒ시사IN 이명익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씨는 “어머니는 그림을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라고 말했다.


<천경자 코드>는 어떻게 쓰게 됐나?

그간 여러 출판사의 청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해왔다. 유명한 부모들의 자녀가 책 쓰는 일이 좋게만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검찰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를 하고, 내 반박은 간접적으로만 알려지니 답답했다. 책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지난 2월부터 5개월간 썼다.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미인도>를 위작이라고 밝혔으나, 검찰은 인용하지 않았다.

어머니 작품 9점과 <미인도>를 놓고 ‘빛의 균형’을 비교분석했다. 화가가 작품 안에서 맞추는 ‘주관적 명암 대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진품들은 대부분 98~99%였으나 <미인도>는 0.0002%였다. 검찰은 진품 가운데 확률이 떨어지는(42.5%) 작품 한 점을 이 계산식에 대입해, ‘진품도 이 방법에 따르면 진품 확률 4%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내가 조언을 구한 통계학 교수들은 이를 ‘무의미하고 부적절한 통계 적용’이라고 평했다.

평소보다 신경을 덜 쓴 작품일 가능성은 없나?

어머니는 사람의 정면 얼굴을 그릴 때 의도적으로 인중을 표현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코와 입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미인도>는 ‘굳이’ 인중을 표현했다. ‘스케치 선’도 근거가 된다. 화가로서 경지에 이른 1977년 이후 어머니의 채색화(색을 입힌 동양화)에는 스케치 선이 없다. 스케치는 옆에 펼쳐두고 참고할 뿐, 처음부터 붓으로 윤곽선을 그렸다. 검찰 발표에서 <미인도>의 ‘인중 표현’과 ‘세밀한 스케치 선’을 진품의 근거로 든 것이 우스운 이유다.

<미인도>에 쓰인 재료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석채(동양 채색화에 쓰이는 광물질)’가 쓰였기에 어머니 작품이라고 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미인도>에 쓰인 석채는 소량이고 대부분은 값싼 분채로 칠했다. 같은 석채라도 어머니는 일본의 ‘유벤도(유편당)’ 제품만 썼다. <미인도>에 쓰인 석채는 질도 더 낮다. 위조범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여서 그럴 것이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천 화백의 <차녀 스케치>가 지난해 나왔다. <미인도>와 흡사하다.

전시되거나 판매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못 보는 건 아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미 어머니는 유명 인사였고, 매일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어머니가 스케치를 옆에 놓고 엎드려서 작업하는 동안 찍힌 사진도 많다.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머니 몰래 작품을 베끼고 있어서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완성작이 아닌 다음에야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김 교수가 고소·고발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미술평론가 정준모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람 직업 때문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데, 나는 진품 주장 자체에 법적 대응한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했다는 게 문제다(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씨에 대해 ‘천경자가 생전 포스터만 보고 위작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KIST에서 진품이라고 확정했다’ ‘천경자가 법적 대응했으나 법원은 판단 불가라고 했다’라는 등 6가지 허위 사실을 적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김정희씨는 <미인도>(위)의 ‘인중 표현’과 ‘스케치 선’이 천경자 화백의 표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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