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수장이다.” 지난 7월13일(현지 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군 주요 장성들 앞에서 한 말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수장’이라는 말까지 꺼내며 군의 ‘항명’에 정면 대응했다. 앞서 마크롱 정부는 올해 국방 예산을 8억5000만 유로(약 1조1000억원) 삭감한다고 밝혔다. 프랑스군 최고위 장성인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하원 국방위원회에서 “나를 엿 먹이도록 가만있지 않겠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평소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그는 언론에 “해외에서 대테러 작전을 벌이는 군의 어려운 상황과 부족한 예산 지원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며 항명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 발언을 전해 들은 뒤 “공개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자격이 없다”라고 맞받아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합참의장 경질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 인터뷰에서 그는 “합참의장이 대통령과 의견이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면 합참의장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7월19일 결국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보스니아·르완다·말리에서 총지휘관을 맡았던 프랑수아 르쿠앵트르를 임명했다. 새 합참의장을 임명한 다음 날 마크롱 대통령은 르쿠앵트르 합참의장과 부슈뒤론 지역 공군 기지에서 식사를 한 뒤 군용기 C135를 타고 파리로 복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화책도 썼다. 그는 “2025년까지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까지 끌어 올리겠다”라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올해 국방 예산은 감축하되, 점진적으로 늘리겠다는 의미다. 프랑스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군심 달래기’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둔다. 후보 시절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지지율이 곤두박질한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한다.

ⓒEPA7월14일 대혁명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손 흔드는 이)과 피에르 드빌리에 당시 합참의장(마크롱 대통령 오른쪽).

대통령과 군의 대립에 대해 여야 시각은 엇갈렸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드빌리에는 반대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수장의 선택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라고 말했다.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이하 앙마르슈)’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적절하며 존경받는 아버지 같은 이미지를 준다”라며 마크롱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반면 국방위원회 소속 상원의원 장피에르 라파랭은 “새로운 수장이 재정경제부와 국방부 간 긴장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라고 비판했다. 급진 좌파 정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알렉시스 코르비에르 의원은 이렇게 비꼬았다. “마크롱 정부에서 군 합참의장은, 사직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 수 없다.” 


최고 통수권자와 군 최고위 장성의 ‘설전’은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7월26일자 〈르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스 여론연구소(IFOP) 여론조사에서 취임 2개월을 맞은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42%에 그쳤다. 지난 6월25일 같은 기관의 지지율 64%에 비해 한 달 만에 22%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이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의 취임 2개월 지지율 중 가장 낮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취임 초기 지지율 하락은 이례적이다. 부유층 세율 인하, 교육 예산 삭감 같은 정책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지만 최대 악재는 역시 군과의 갈등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 다수는 대통령에 대해 “권위적이고 오만하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사실 프랑스에서 군과 정부의 ‘예산 신경전’은 낯설지 않다. 프랑스는 1995년 자크 시라크 정부 시절 의무병역 제도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했다. 이후 군은 꾸준히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지속적으로 긴축정책을 강조하면서 군의 요구를 일축했다. 전임 올랑드 정부는 말리 지역에 군을 파견하면서 30억 유로에 달하는 재정을 쏟아부었고, 이에 따라 2013년 6억5000만 유로 상당의 군 장비 예산을 삭감했다. 2015년 파리 테러 이후로 ‘대테러 작전’을 위해 예산을 올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올랑드 전 대통령은 경기 악화가 지속되면서 이 역시 지키지 못했다. 결국 올랑드 정부는 2016년에야 327억 유로, 국내총생산(GDP)의 1.78%에 달하는 국방 예산을 짰다.

“국방 예산, GDP의 2% 수준으로 올리겠다”

지난 대선에서 국방 예산 증액은 후보 대부분이 제시한 공약이었다. 마크롱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국방 예산을 2025년까지 GDP의 2% 수준인 500억 유로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과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도 비슷한 공약을 냈다. 다만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국방 예산을 취임 첫해에 2% 수준까지, 정권 말에는 3% 수준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만이 ‘평화’를 주창하며 유럽연합(EU) 중심의 방위, 국방 예산 유지를 주장했다.

ⓒAFP PHOTO프랑스 새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플로랑스 파를리(아래). 그녀는 국방과 무관한 일을 맡아왔다.

마크롱 정부가 군 예산을 삭감한 것은 EU의 재정적자 상한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다. EU는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어서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과도한 재정적자국’으로 지정한다. 재정지출 감축과 세금 인상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하도록 권고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정적자 상한선(GDP의 3% 이내)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최근 올해 재정적자 상한선을 지키지 못할 수 있으며, 다른 유럽 국가보다 더 취약한 상태라고 밝혔다. 마크롱 정부로서는 올해 국방비 삭감 등 대규모 재정지출 감축이 불가피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EU 국가들 중 경제적 부담을 많이 지고 영향력이 큰 독일이 프랑스의 재정 긴축을 압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 예산을 줄이면, EU 내 군사적 기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정부가 긴축재정과 군사적 기여를 동시에 잡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 ‘공동 전투기 개발’이다. 7월13일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양국이 내년 중순까지 차세대 전투기 로드맵을 마무리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연구개발(R&D)과 실전 배치, 수출까지 공동의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신임 합참의장과 함께 마크롱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도 주목 대상이다. 그녀는 유럽의회 의원으로서 독일과 공동 국방 예산을 제안했던 전 국방장관 실비 굴라르의 후임자다. 연정 파트너인 민주운동당 소속 굴라르 전 장관은 유럽의회 보좌관들을 허위로 채용한 의혹으로 사임했다. 그런데 후임인 파를리 장관의 앞날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당초 유력하게 꼽히던 국방장관 후보는 전 프랑스 총리이자 상원 외교국방위원장인 장피에르 라파랭, 국방부 출신 공화당 의원 아르노 당장이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국방 관련 경험이 없는 플로랑스 파를리를 전격 임명했다. 파를리는 프랑스 국영철도기업인 SNCF 대표를 지냈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 정부에서 예산장관을 지냈다. 그녀의 임명을 두고 의회에서는 비전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원 국방위원장인 폴 퀼레는 “평생 예산 관련 일만 맡았던 파를리를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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