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은행을 열었다. 7월27일 오전 7시, 인터넷 전문은행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4월3일 출범한 ‘케이뱅크(K뱅크)’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후발 주자이지만 금융권의 관심과 기대치는 K뱅크 출범 때보다 높다. ‘카카오’라는 이름값 때문이다. 콘텐츠(게임 등), O2O 서비스(택시, 대리운전 등) 분야처럼 점유율 1위 메신저 앱 ‘카카오톡’과 연계할 경우 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뒤따른다.

이용객 반응도 나쁘지 않다. 카카오뱅크 측은 서비스 개시 12시간 만에 신설 계좌 18만 개, 예·적금 426억원, 대출 14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서비스 첫날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려 서버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걸 증명했다. 마이너스 통장 금리가 싸고, 해외 송금 수수료가 시중은행 대비 10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이 화제를 불러 모았다.

화려한 등장이지만, 출범 전부터 제기된 여러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논란의 핵심에는 ‘금산분리’가 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뜻한다. 특히 은행은 현행법상 재벌을 비롯한 산업자본이 소유·지배할 수 없다. 재벌 등 대기업이 은행을 ‘곳간’처럼 활용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유독 인터넷 전문은행만은 산업자본의 지분 소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연합뉴스7월27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린 한국카카오은행 출범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명분은 ‘핀테크(Fintech) 발전론’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업이 적극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운영에 나서야 업계 전반에 핀테크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현행 은행법상 ICT 기업(산업자본)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지분을 최대 10%(금융위원회 승인이 없을 경우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지분이 10%라 해도 의결권은 4% 수준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금산분리 완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4% 의결권으로는 ICT 기업이 인터넷 전문은행에 주도적 기술혁신을 적용키 어렵다고 주장한다.


카카오뱅크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뱅크의 실제 대주주는 전체 주식의 약 56%를 보유한 한국투자금융지주(금융자본)다. 카카오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윤호영(카카오 출신)·이용우(한국투자증권 출신) 두 공동대표가 함께 은행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실제 카카오의 지분(10%)과 의결권(4%)은 크지 않다. 앞서 운영 중인 K뱅크 역시 설립을 주도한 KT의 지분율이 8%에 불과하다.

이 같은 독특한 구조는 2년 전, 금융 당국이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부터 예고되었다. 2015년 6월18일, 금융위원회는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방안’을 발표하며 법 개정을 전제한 단계별 확대 계획을 밝혔다. 1단계로 현행 금산분리 제도하에서 한두 개를 시범 인가하고, 그동안 은행법 등 법령 개정안을 마련한 뒤, 법 개정 이후 2차 사업자를 모집할 계획이었다. 핵심 규제인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지분 한도를 현행 4~10%에서 50%(단,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제외)로 상향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 당국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했다”라는 논란이 나올 만큼,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정책이었다. 당시 금융위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확보했음에도 여전히 핀테크 분야에서 여타 선진국에 뒤져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당시 계획에 따라 시범 케이스로 선정된 두 곳이 KT·우리은행 등이 주도한 K뱅크와 카카오·한국투자금융지주·KB국민은행이 주도한 카카오뱅크다. K뱅크의 초기 자본금은 2500억원, 카카오뱅크는 총 3000억원이다. 은행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은행법상 1000억원 이상)은 넘지만, 대규모 여신을 감당할 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 투자 여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추후 지분 재조정을 염두에 둔 ‘초기값’에 가깝다. 관계 법령이 개정되면, 두 컨소시엄은 추후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 규모를 늘리고, 지분 구조를 조정할 계획이었다. 2015년 당시 금융위가 제시한 시간표대로라면, 현 시점에는 법 개정이 완비되어 KT와 카카오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유상증자가 가능했다. 20대 국회가 들어서고, 정권이 바뀌면서 관련 논의는 2015년 당시 금융위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사IN 윤무영4월3일 출범한 K뱅크(오른쪽)에 이어 한국카카오은행이 설립되었다. 사진은 앱 초기 화면.

그사이 밑천은 빠르게 소진됐다. 4월부터 영업을 개시한 K뱅크의 경우 7월11일 기준 누적 예금이 6500억원, 대출금이 6100억원에 이르렀다. 대출 신청액이 늘어나면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점차 하락하자, K뱅크는 각종 신용대출 신규 발급을 6월부터 줄이고 있다. K뱅크는 올 3분기에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더 확충할 계획이지만, 당초 계획한 KT 중심의 유상증자(KT 지분율 높이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K뱅크보다 빠른 속도로 대출이 늘고 있는 카카오뱅크 역시 수개월 내 자본금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전문은행, 최소 1년은 지켜봐야”

K뱅크·카카오뱅크의 바람과 달리 정치권에서 현행 규제를 서둘러 풀기가 쉽지 않다. 핀테크 활성화는 당면 과제이지만, 금산분리 대원칙에 균열을 내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금융이 재벌의 금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금산분리로 재벌과 금융을 분리시키겠다(지난 1월10일 좌담회)”라고 공약한 바 있다.

다만 최근에는 대전제인 금산분리 원칙은 유지하되, 이미 추진 중인 인터넷 전문은행을 위한 특례법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여당에서도 나온다.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 여당 의원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27일 카카오뱅크 출범식에 참석해 “은행도 새로운 경쟁체제로 돌입했다”라며 인터넷 전문은행에 힘을 실어주는 말을 남겼다. 신임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인터넷 전문은행은 금산분리의 취지를 저해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라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완화와 추가 사업자 선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당초 K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설립 목적이 ‘테스트베드’였던 만큼 두 인터넷 전문은행의 운영과 실적을 최소 1년은 지켜보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대두된다. 여기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주장도 ‘신중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16일, K뱅크 최대주주(지분율 10%)인 우리은행이 재무건전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금융위가 예비인가를 통과시켜줬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인가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전 분기(2015년 2분기) BIS 비율이 14%에 불과해 업계 평균(14.08%)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중론이 힘을 얻을 경우, 결국 인터넷 전문은행의 미래는 K뱅크·카카오뱅크가 스스로의 가치를 얼마나 증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앱 성능이 기존 은행 것보다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흔들 만큼 이용객의 실생활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자산의 안정성, 보안 기술 역시 평가의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축복받으며 탄생했지만, 가능성을 어느 정도 현실화해야 살길이 열릴 판국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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