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3일 밤 11시30분. 집에 샴푸가 떨어졌다. 휴대전화를 들어 쿠팡 앱을 켰다. 9500원짜리 600㎖ 샴푸 3개들이 세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로켓배송(쿠팡의 익일 배송 시스템)’이 가능한 1만9800원을 채우기 위해 치약과 두루마리 휴지로 가격을 맞췄다. ‘내일(월) 7/24 도착 보장(30분 내 주문 시)’을 확인한 뒤 주문 버튼을 눌렀다.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만 주문하면 내일 저녁에도 무사히 머리를 감을 수 있을 것이다. 편리한 ‘로켓배송’이지만, 쿠팡 앱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의문을 풀기 위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하루짜리 노동자가 되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이에서 ‘쿠팡 일용직’ ‘쿠팡 노가다’라 불리는 이 일자리는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 매일 모집 공고가 뜬다. ‘야간/주간/쿠팡/일당/주급알바/단순포장업무/동반/대학생/주부가능’과 같은 제목으로, 인천·이천·칠곡에 위치한 쿠팡 물류센터에서 패킹(포장), 피킹(집품) 등 ‘단순하고 쉽고’ ‘여자분들도 절반 넘고’ ‘일당 익일 지급’되는 ‘꿀알바’를 매일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7월24일 오전, 인천 물류센터 ‘야간 여자’ 담당자 번호로 알바 지원 문자를 넣었다. 모집 공고에 적힌 양식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 6자리, 성별, 일할 날짜, 근무지(택), 셔틀 탑승지, 주간/야간(택)을 적으면 신청 완료. 10분 뒤 “오늘 출근하세요~ 현관 J-pack팀에 출근 사인”이라는 답장이 왔다. 셔틀버스 노선도와 함께 ‘오후 7시~새벽 3시, 야간 기본 금액 6만6000원, 외국인 불가, 핸드폰 금속류 수거함, 치마·민소매·반바지·슬리퍼·샌들 불가’ 따위 안내 문자도 연달아 도착했다.

ⓒ쿠팡 제공정규직 배송 사원 ‘쿠팡맨’으로 알려진 쿠팡도 물류센터 인력 운영은 자회사와 아웃소싱 업체가 담당한다.

저녁 6시30분 인천 검암역 앞에 쿠팡 셔틀버스가 섰다. 버스는 20대 초반 남녀, 40~50대 중년 여성으로 구성된 ‘임시’ 쿠팡 직원들을 인천 오류동 쿠팡인천메가물류센터로 날랐다. 2016년 쿠팡이 로켓배송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한 9만9173㎡ 면적의, 이커머스 사업자 중 최대 규모 물류센터이다. 부평, 가양역, 문산 등 수도권 서쪽 11곳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태운 다른 버스들도 속속 물류센터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현관 로비에 마련된 ‘J팀’과 ‘W팀’의 접수대 앞에 길게 줄을 섰다. J와 W는 쿠팡 물류센터에 인력을 공급해주는 인력 파견업체의 이니셜이었다. 줄을 섰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이름이 적힌 명부에 출근 서명을 하고 주간 교대조가 반납한 목걸이 출입증을 건네받았다. 내가 받은 출입증에는 ‘김○○’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입은 따로 분류돼 ‘신규’ 방에 들어갔다. 차례차례 줄을 세운 다음 근로조건과 안전·보안 서약, 영상정보 제공 동의에 관한 내용 등이 빽빽이 쓰인 종이 4장을 내밀었다. 꼼꼼히 읽어보려고 몸을 숙이니 앞에 선 직원이 재촉했다. “다 봤죠? 사인하세요.” 계약서에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쿠팡의 물류 담당 자회사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제대로 읽지 못한 계약서에 네 번에 걸쳐 사인하고 교육을 받았다.

사실 교육이랄 건 딱히 없었다. J팀 관리자로 보이는 직원이 ‘긴 머리는 묶어라’ ‘문신이 있으면 가려라’ ‘사탕·껌·캐러멜 먹지 마라’ ‘핸드폰·전자담배·웨어러블 기기도 반입할 수 없다’ 등의 금지 조항들을 나열했다. “작업장으로 들어갈 때 금속 탐지 검색대를 지날 건데 거기에서 ‘허튼 행동’을 하면 ‘위’에서 페널티를 주라고 했으니 명심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바구니를 갖고 돌아다니며 휴대전화를 수거해갔다.

꺼내고, 찍고, 싸고, 넣고, 자르고, 붙이고…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간 물류센터는 ‘메가(MEGA)’라는 명칭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넓고 높았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형광등 불빛 아래 노동자 1000여 명이 컨베이어 벨트와 칸막이 카트와 종이박스와 에어캡 사이에서 땀 흘리며 일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데려간 직원은 먼저 세 줄로 대기하던 노동자들에게서 ‘피킹’과 ‘패킹’ 업무 자원을 받았다. ‘피킹’은 2·3·4층의 물류창고로 올라가 8시간 동안 카트를 끌며 송장에 적힌 상품들을 ‘집품’하는 업무다. ‘패킹’은 1층 작업 라인에 서서 ‘피킹’자들이 골라온 상품들을 스캔해 박스에 담아 포장한 뒤 운송장을 붙여서 컨베이어 벨트로 출고시키는 일이다. 뭐가 더 나은 일인지 알 길이 없어 어벙하게 서 있던 신입들에게는 무작위로 업무가 주어졌다. 나는 패킹 라인 ‘B-3라인’ 세 번째 작업대에 배정됐다.

ⓒ김흥구7월24일 오후 6시30분, 인천 오류동에 위치한 쿠팡인천메가물류센터 출입구 근처에 퇴근하는 주간 조와 출근하는 야간 조 직원들이 섞여 있다.

작업대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선임 노동자가 업무 내용을 설명했다. “여기 송장 보이죠? 송장 바코드를 먼저 스캐너로 찍고 모니터에 뜬 물건들을 카트에서 찾은 다음 하나씩 다 스캔하세요. 송장에 찍힌 규격을 찾아서 박스를 만든 다음 ‘뽁뽁이’로 싸서 넣고 빈 공간은 에어캡(연두색 대형 뽁뽁이)으로 채워요. (송장에 붙은) 영수증을 떼어서 안에 같이 넣고 박스 포장을 마친 다음 송장 스티커를 떼어 붙이고 컨베이어 벨트에 세로 방향으로 올리세요.” 단 한 번의 설명을 끝으로 20대 초반 여성으로 보이는 선임은 입을 닫았다. 옆에서 같이 일하다가, 내가 바코드 찍는 순서를 틀린다든가 박스 안에 영수증 넣는 걸 잊고 테이프를 둘러버리는 등 실수하면 한숨을 쉬며 물건을 가져가 재작업할 뿐이었다.

 

선임의 손가락에는 일회용 반창고가 잔뜩 둘러져 있었다. 선임자는 B(박스 규격) 2·4·8·9·11·16·18·33·39호와 PB(비닐봉지 규격) 1·1.5·2·3호가 계통 없이 뒤섞인 작업대에서 송장 한번 흘끗 보고 0.1초 만에 알맞은 크기의 박스를 골라냈다. 기지개 한번 목 돌리기 한번 하지 않고 쉼 없이 일했다. 일용직은 아닐 것이라 판단하고 물었다. “여기 정규직이세요?” 선임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아뇨, 주급으로 일해요.” “그러면 혹시 할당량이 있거나, 많이 하면 주는 인센티브 같은 게 있어요?” “아뇨, 그런 거 없어요. 왜요?” “하도 잘하고 열심히 하셔서….” “하다 보면 그렇게 돼요.”


그녀 말이 맞았다. 완벽한 ‘로켓배송’ 쿠팡맨 아니, 패킹맨이 되는 데에는 2시간이면 충분했다. 꺼내고 찍고 싸고 넣고 자르고 닫고 붙이고 뒤집기를 반복하며 1분당 하나씩 컨베이어 벨트에 상자를 올렸다. 멸균우유, 핑크퐁 동요책, 헤어 에센스, 수저 받침대, 생리대, 바나나 걸이 등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 수백 개를 칸막이 카트에서 비워 출고시키면 또 다른 카트가 작업대 앞에 도착했다. 모니터에 뜬 물류 시스템 프로그램 화면에는 목걸이 출입증에서 봤던 이름 ‘김○○’이 ‘작업자명’ 칸에 입력돼 있었다. 도대체 김○○은 누굴까, 날 고용한 사람일까, 관리하는 사람일까, 일용직을 대표하는 고유명사 같은 걸까, 궁금했지만 그 현장에서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찰찰찰찰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나는 그저 ‘패킹’해야 했다. 어서 상자를 만들어 저 기계와 속도를 맞춰야 했다.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최신 인기 가요와 컨베이어 벨트 소음이 뒤섞여 귓전을 때리다가 10분에 한 번꼴로 음악이 꺼지고 방송이 나왔다. “좀 더 속도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빠른 속도, 빠른 속도 부탁드립니다.” “곧 배송 트럭 출발 마감할 시간입니다. 좀 더 빨리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정이 넘어가자 몸을 지탱한 발과 다리가 부어오르고 테이프를 끊는 반복 작업에 손과 어깨가 얼얼해졌다. 카트에서 물건들을 꺼내며 라인 앞뒤 다른 노동자들을 살펴봤다. 일당 임시직인지 주급 임시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옆자리 선임처럼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두 명이 일하는 작업대마다 하나씩 걸린 미니 선풍기는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식히지 못했다. 더위야 어쩔 수 없다 쳐도, 테이프 커팅기와 상자 모서리의 날카로움에서 손을 보호해줄 장갑이나 공장 내 가득한 먼지를 막아줄 마스크도 지급되지 않았다. 모두 자기 돈으로 산 장갑과 마스크를 끼거나, 아예 끼지 않고 일했다. 무엇보다 의자, 바로 의자가 필요했다. 앉아서만 일한다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문득 ‘일하다가 몰래 짱박히는 걸 막으려고 작업 시간에 화장실을 단수시키기도 한다’라는 인터넷상 쿠팡 아르바이트 후기가 떠올라 선임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었다. “글쎄요, 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할걸요.” 작업대를 빠져나와 자회사 이름이 표기된 조끼를 입은 직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니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인터넷 후기와 달리 화장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물도 잘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수기에서 물을 떠 마셨다.

ⓒ시사IN 변진경‘패킹’과 ‘피킹’ 임시직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저녁 식사.

작업대로 돌아오자 선임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몇 주간 매일 밤 8시간을 일하면서 그녀는 한 번도 화장실에 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못 가게 했어요?” “아니요, 그냥, 물어보기가 그래서….” 내가 가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고 정수기에서 물을 떠 마셨다.


야간 8시간 근무 중 휴식 시간은 있었다. 밤 9시30분부터 10시5분까지 35분. “식사요, 식사”라는 외침에 작업대에서 나온 사람들 무리에 섞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식당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2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식당에 도착하는 데 10분, 배식 줄을 기다려 음식을 받는 데 5분이 걸렸다. 메뉴는 닭고기덮밥과 어묵케첩조림, 배추김치, 무국. 컵라면이나 빵으로 야식을 제공한다는 쿠팡 다른 물류센터 알바 후기에 비하면 괜찮았지만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화장실에도 줄이 길게 서 있었다. 흡연자들은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출입증을 찍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누가 자신을 고용했는지 알지 못해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옆 벽에는 쿠팡의 물류 부문 자회사에서 사무행정·물류 사원을 채용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3개월 이후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을 결정하는 단기 계약직이었다. 물류센터 벽과 집기 곳곳에 ‘쿠팡’ 로고가 찍혀 있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쿠팡맨’으로 대표되는 정규직 사원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배송 사원 정규직 채용’으로 박수를 받은 온라인 유통업체마저도 막대한 유통 물량을 감당하는 이면에서는 3개월짜리, 1주짜리, 하루짜리 (초)단기 ‘패킹맨’과 ‘피킹맨’을 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는커녕 누가 자기를 고용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부여받은 ‘의무’만 수행하고 있었다. 쿠팡만 표 나게 그런 것도 아니고 물류업계만의 특성도 아니다. 우리 시대 일상적인 노동 현장의 모습일 수 있다(쿠팡 측은 “물류센터 인력 운영은 자회사나 아웃소싱 업체가 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른다. 다만 물류업계 특성상 일시적 잡(JOB)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건 우리뿐 아니라 택배 회사 등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새벽 3시30분, 작업을 끝낸 노동자들은 퇴근 명부에 이름과 일당을 받을 계좌번호를 적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셔틀버스에 올랐다. 차가 드문 도로 위를 위태위태한 과속과 추월 운전으로 달린 버스는 꾸벅꾸벅 조는 20대 청년들을 수도권 서쪽 어느 지하철역 근처에 내려줬다. 흩어진 청년들은 텅 빈 거리 가로수 밑, 상가 계단, 인도 턱 등에 앉아 2시간 뒤 올 첫차를 기다리거나 터덜터덜 어디론가 걸어갔다. 새벽 4시 도착한 집 앞에는 그제 밤 주문해 어제 낮 ‘로켓배송’된 쿠팡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상자 속 샴푸를 꺼내 머리를 감고 잠자리에 누웠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