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버스 승강장 주변이 강아지풀로 무성했다. 건너편은 사정이 더 안 좋았다. 한여름 뙤약볕과 장마를 통과하며 아스팔트까지 뻗은 덩굴식물로 인도는 발 디딜 자리가 없었다. 전북 군산 시내에서 30여 분 차로 달리면 8차선 도로 양옆에 군산국가산업단지가 펼쳐진다.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180만㎡(약 54만 평) 부지는 차로 돌아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다. 7월25일, 문 닫힌 현대중공업 앞 정류장에는 종이 2장이 붙어 있었다. 넉넉한 발코니를 강조하는 892세대 원룸단지 광고와 조선업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건설기계 중장비 재취업 무료 교육과정’ 안내 포스터였다. 각각 조선소의 흥망을 상징한다. 군산조선소는 7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마지막 배를 떠나보낸 지 한 달, 넝마처럼 뒤엉킨 잡초가 우거졌다.

현대중공업 북문에 다다르자 주황색 크레인이 시선을 붙들었다. 130만t급 도크(건조된 선박을 바다에 띄울 수 있게 해주는 시설)와 세계 최대 규모의 1650t급 크레인은 한때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상징이었다. 2010년, 크레인이 군산에서 조립된 첫 블록을 도크에 들여놓자 관계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1조2000억원을 들여 만든 조선소였다. 진입로 건설과 전용부두 등의 시설을 닦는 데 시·도의 예산이 200억원 이상 들었다. 완공 전부터 1년치 물량을 수주받자 군산시는 활기를 띠었다. 그즈음 군산시 인구도 1000명이 늘었다. 6개월 만이었다. 군산조선소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매해 1조원 매출을 올렸다. 조선업계에 불황이 닥치자 현대중공업은 ‘수주 절벽’을 들어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올해 1월부터 6개월간 군산시 인구는 1477명이 줄었다.

ⓒ시사IN 조남진지난 6월30일 폐쇄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작업장이 텅 비어 있다.

순찰을 돌다 기자와 마주친 비응파출소 경찰관은 8차선 도로 양옆으로 출근 차량이 빈틈없이 주차되어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오가는 차를 찾기 힘들다. 맞은편 7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부두 노동자 최종만씨는 “현대중공업이 문 닫은 후 철판 수입이 줄어 우리에게도 타격이 왔다”라고 말했다. 조선소 실직자 일부가 일자리를 찾아 부두를 찾기도 했다. 최씨에게 더 큰 걱정거리는 같은 산업단지에 있는 한국GM이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곳이다. 군산 공장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는 전용 부두에서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지난해부터 GM이 한국 공장을 철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대중공업과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오식도동은 원룸과 상가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군산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터전이었다. 지난해 9월만 해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는 한 족발 가게의 사정은 1년 새 급변했다. 족발집 사장 박경아씨는 “두 달만 더 버텨보려고 하는데 시내도 경기가 좋지 않아 옮길 데가 마땅찮다”라고 말했다. 24시간 운영하던 순대국밥집도 석 달 전부터 야간 장사를 접었다. 매출은 반 토막 났고 종업원을 내보낸 뒤 가족끼리 운영하고 있다. 군산에서 12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미용사는 한때 견습 미용사를 2명까지 두었다. 300만원 이상 매출이 줄어든 뒤에는 혼자 일한다. 그녀는 “남편이 하루는 현금통에서 돈을 꺼내 세보더니 잘못 센 줄 알고 다시 세고 또다시 셌다”라고 말했다.

퇴로가 없는 원룸 건물주들의 갑갑함도 크다. 한 채 5억~6억원 하던 건물이 3억원 초반대로 내려갔다. 35만원 하던 월세를 15만원으로 줄였지만 찾는 이가 없다. 부동산 업자 김대근씨는 군산에 산 지 13년째다. 일대가 허허벌판일 때 와서 공장 부지를 거래해 꽤 수익을 올렸다. 다 옛말이다. 그는 “남은 상가들도 계약 기간이 남고 보증금이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중이다. 기업들도 줄도산해 경매 매물이 무더기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업체 대표는 “그래도 이때 건물을 사놔야 한다. 새만금 사업도 있고, 조선소가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른다”라고 귀띔했다. 주민들 사이에는 조선소가 재가동될 수도 있다는 희망과 한번 문 닫은 사업장이 재개하기는 어렵다는 절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혜택을 주었는데 무책임하게 폐쇄하나”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김근식씨는 무엇보다 대기업의 행보에 분노했다. “사기이고 ‘먹튀’다. 산업단지에 자리를 내주고 혜택을 주었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폐쇄를 결정할 수 있나. 이만한 부지를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업도 없다. 바다와 가까워 전자나 반도체 업체도 못 들어오고 결국 다시 조선업이 들어와 가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시사IN 조남진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노동자들이 살던 군산시 오식도동 원룸단지의 한산한 모습.

지난해 말부터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5000여 명으로 붐비던 조선소에는 현재 경비 인력 등 50여 명만 남아 있다. 가장 타격이 큰 건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이다. 군산시가 파악한 ‘군산조선소 및 협력업체 근로자 변동 현황’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사내 협력업체, 사외 협력업체 등 총 86개(지난해 4월 기준)였던 조선소 관련 사업장이 지난 6월 30개로 축소됐다. 노동자 수 역시 1년 새 5250명에서 541명으로 줄었다. 4709명이 빠져나간 셈이다. 이 중 3989명이 협력업체 노동자다. 760명이던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역시 40명으로 줄었지만 대부분 울산 본사 등으로 옮아갔다.


70명 규모의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김선재씨(가명)는 지난해 12월 갑자기 실직자가 되었다. 그는 2008년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들어가 용접 일을 배웠다. 1년만 고생하면 현대중공업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일이었다. 조선업계 생리를 너무 몰랐다. 취부(선체·배관 등 선박 의장품들을 설계도면대로 가용접해 부착하는 일) 일부터 시작해 크레인 운전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부터 현대중공업 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12월이 되자 선박 만드는 작업 순서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졌다. 선박 건조 분야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직업을 잃었다. 실직자들은 벌크선을 만드는 작은 규모의 조선소를 찾기도 했지만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일부는 조선소가 모여 있는 울산·거제 지역으로 갔고 또 일부는 용접공 수요가 있는 경기도 평택 등지로 흩어졌다.

처음 업체가 문을 닫았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자격증도 있는 데다 이전까지 외국계 기업, 제철소 등에 어렵지 않게 취업해왔다. ‘설마 갈 데가 없으려고.’ 이런 심정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 길어지자 조급해졌다. 예전 일자리가 일당 15만원 선이었다면 지금 나온 일자리는 잘해야 13만원, 아니면 11만원 선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거의 없다. 김씨는 얼마 전부터 ‘군산 조선업 일자리 지원센터’에서 컨설턴트로 일한다. 조선업계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상담하는 일이다. 지역 고용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설립한 이곳에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 조선업계 실직자 520명이 다녀갔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숙련공인 경우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지만 군산조선소가 문을 열 때 유입되었던 군산 시민의 경우 다른 산업으로 이직하기가 어렵다. 군산 내 일자리가 없다. 선박 용접과 타 산업 용접의 성격이 달라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렵다. 초과근무나 2교대 근무를 해도 이전보다 임금 수준이 열악해지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7월26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한 근로자가 일자리 지원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협력업체 대표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사내 협력업체를 운영했던 이유호씨(가명)는 현재 주유소, 대리운전 업체, 이삿짐센터 등을 전전한다. 운영하던 사업체는 지난 1월 말 문을 닫았다. 이씨는 조선업계에 종사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컸다. 배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모두 수작업이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용접하고 기술로 쌓아올린 배를 물에 띄우면 장인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조선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돌 때마다 현대중공업은 그에게 희망적으로 말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군산에서 건조하려던 LPG선 두 척을 울산 본사로 재배정한 뒤 불안감이 커졌다. 70명 직원 중 일부가 이직했다. 남은 직원 60명은 목포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으로 가거나 식당을 여는 등 각자 흩어졌다. 협력업체 관리자로 일하다 직접 사업장을 인수한 지 3년째 되는 시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조선소 재가동 약속은 빠지고

사내 협력업체를 운영하며 호황기 때 산 집값도 5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기가 죽었다. 그는 아직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다. 집기와 비품 모두 조선소 안에 두고 나왔다. 재가동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부는 7월20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관련한 대책을 발표했다. 24억 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활용해 선박 건조 물량을 확대하고 노후 선박을 교체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군산 지역 조선소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보증 한도를 3억원에서 4억원으로 높이는 동시에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 시기도 늦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 관련 노동자들의 고용과 재취업 지원책도 포함됐다. 군산시는 가장 중요한 조선소 재가동 약속이 빠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7월26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새만금 남북도로 기공식’에 참여하기 위해 군산 새만금 컨벤션센터를 찾았다. 소식을 들은 시의원과 현대중공업 사외 협력업체 대표들이 아침부터 모여 피켓을 들고 “조선소 재가동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쳤다. 이날 이낙연 총리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문동신 군산시장, 군산 조선업 협력업체 대표를 만나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에서 이 총리는 “정부가 민간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대한 노력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밝히며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박정희 군산시의장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차별하는 걸 보면 공평치가 않다. 그렇게 부실했던 곳은 11조원 이상 퍼부으면서, 건실하게 1조원씩 이익을 냈던 군산조선소는 지원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군산에다 세계 최대의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했을 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특혜 의혹이 있었지만 일자리의 희망 때문에 어려움을 감내하고 시 차원에서 지원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버리고 수많은 협력업체가 도산했다. 기업 윤리가 없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만난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가보았다. 현대중공업의 1차 사외 협력업체 중에서도 최대 규모에 속하는 이 사업장은 한때 연매출 45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는 150억원으로 줄었다. 직원 420명 중 220명이 남았다. 사무실은 비다시피 했지만 공장은 예상과 달리 가동 중이었다. 파란색과 하늘색 철제물이 공장 입구에 다수 늘어서 있었다. 일부는 LNG 발전소에 들어가는 구조물로 알제리 수출용이었고, 일부는 신서천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제품이었다. 원래는 선체에 들어가는 블록을 주로 취급하던 업체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손은 많이 가고 돈은 안 되는 데다 주력하던 품목이 아니라서 어색하다”라고 말했다. 자구책으로 취급 품목을 늘린 것이다. 이 업체는 전기세로만 월 1억원, 임차료로 연 3억원을 내고 있다. 살아남은 협력업체들은 조선소가 재가동하기 전까지 이 금액을 감면하는 한편, 사업장을 꾸리는 데 들였던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 상환 시기를 미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선업 영업만 15년 이상 해온 이 업체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 만들었던 중국 배들의 교체 시기가 오고 있다. 외국 선주들이 한국 배로 다시 갈아타는 추세다. 다시 호황이 온다. 그사이 버틸 수 있도록 정부에서 배를 발주해달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7월26일 새만금컨벤션센터 앞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가동을 위한 협력업체 총궐기대회’에 참석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조선소 재가동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군산시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GM을 포함한 자동차 관련 산업 역시 조선소와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두산인프라코어 군산 공장까지 생각하면 지역경제 대부분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셈이었다. 지난해 12월 국토연구원이 낸 ‘지역경제 회복력 진단 및 증진방안 연구’를 보면 “전북의 지역경제 회복력은 일부 산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에 있어서도 특정 기업(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외부 충격으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회복 능력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군산 지역 시민단체는 현대중공업의 즉각적인 재가동을 요구하는 한편, 그게 어려우면 조선소를 매각하라고 주장한다. 정부 주도로 선박을 발주하는 것 역시 내세우는 대안 중 하나다. 서지만 군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민간기업이라면서 간섭을 주저하고 있는데 조선업이나 반도체 산업, 자동차 산업은 국민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측면에서 국가 산업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는 조선업계 3사의 도크 31개를 2018년까지 24개로 줄인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보유 중인 11개 도크 가운데 3개를, 대우조선해양은 9개 중 2개를 중단했다. 삼성중공업이 10개 중 1개를 중지시킨 데 이어 1개 더 가동을 멈출 계획을 밝혔다.

다시 군산산업단지로 향하는 택시 안, 저 멀리 군산 풍력발전소가 보였다. 택시기사가 돌아가고 있는 흰 날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선소는 떠나고 저 발전기 소리만 ‘우웅우웅’거린다. 가슴 아픈 군산의 멜로디 같다.”

취재 도움·신동민 〈시사IN〉 교육생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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