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책이 있다. 내게는 〈핀치의 부리〉가 그런 책이다.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같은 명망 있는 상을 받은 유명한 책이기 때문은 아니다. 〈핀치의 부리〉에는 다윈 이후 진화학자들이 찾아 헤맨 ‘진화의 실체적 진실’이 있으며, 평생을 바쳐 끈질기게 지켜본 어느 과학자의 인생이 있다. 이를 허투루 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 한 과학저술가의 열정이 있다. 내 손을 거쳐 출판된 〈핀치의 부리〉 20주년 기념판은 양병찬 번역가가 함께해주었다. 그의 번역은 빈틈없으면서도 정확하고, 원래 한국어로 쓰인 책인 양 부드럽게 읽히기로 유명하다.

조너선 와이너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펴냄

책은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진화(evolution)’를 이야기한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어느 섬 대프니메이저에서 연구하는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의 업적을 바탕으로 진화란 무엇이며 진화를 이끄는 힘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랜트 부부는 1973년부터 40년 동안 갈라파고스에서 연구를 이어온 진화론계의 세계적 권위자로, 대프니메이저에 사는 핀치를 모두 조사했다. 몸집, 부리 크기, 식생뿐만 아니라 짝짓기 대상, 낳은 알의 개수, 부화한 새끼까지. 핀치의 삶을 모두 추적·조사했다. 마침내 갈라파고스 내에 새로운 분기종의 등장과 진화를 목격했다. 책은 이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최선의 최선.’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던 2016년 겨울이었다.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병찬 번역가에게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핀치의 부리〉로 독서 토론을 하는데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함께 가실래요?” 그곳에는 2015년 한국을 방문한 그랜트 부부를 만난 독자도 있었고, 나처럼 양병찬 번역가의 팬도 있었다. 책을 향유하는 이들과 함께 읽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시간이었다. 〈핀치의 부리〉는 편집자 이전에 독자로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준 책이다.

기자명 이지경 (동아시아 편집2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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