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5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부제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인데, 내 기억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운 건 녹색 성장을 주장한 이명박 정부 이래 처음이다.

정부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저성장·고착화·양극화 심화’의 ‘구조적·복합적 위기 상황’으로 파악했다. 답은 “경제성장을 수요 측면에서는 일자리 중심·소득주도 성장, 공급 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의 쌍끌이 방식으로 전환”하여 “분배·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구현”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세’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1만명의 경제학자’가 도대체 어떤 정책을 만들 것인가? 필경 90% 이상 시장 만능의 정책 기조를 지지할 텐데…. 하지만 그동안의 인선이나 이번에 발표한 정책 방향은 그런 ‘기우’를 말끔히 걷어냈다.

굳이 경제 이론으로 말하자면 이번 발표는 수요 측면에서는 확실히 포스트케인스주의(소득주도 성장)이고, 공급 측면에서는 절반 정도 네오슘페터주의(혁신성장의 일부)이다. 자칫 노동시장 개혁으로 치달을 뻔한 ‘일자리 중심 경제’도 고용친화적 시스템 구축(일자리 지원 세제 3대 패키지 등 고용 유인이 주 내용), 노동시장 제도·관행 개선(규제 완화 대신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철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를 지향했다.

더 밝은 희망은 혁신성장 분야에 비치고 있다. 역대 정부 이래 ‘신성장 동력’ 또는 ‘새로운 먹을거리’로 불린 이 주제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첫 번째 항목으로 “협력·혁신 생태계 구축을 통해 중소기업의 성장동력화 촉진”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 대상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인프라·협력 생태계’이다. 즉 중소기업 네트워크 또는 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지역별·산업별 클러스터를 핵심으로 하는 네오슘페터주의 ‘혁신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정부·여당의 개혁 세력, 특히 청와대의 개혁 세력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서로 부딪칠 게 틀림없는 기조들을 소득주도 성장 중심으로 부드럽게 결합했기 때문이다. 출발점만 비교해본다면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는 이렇게 뚜렷하지 않았고, 이 발표와 아주 유사했던 2004년 말 대통령 보고서는 대통령 스스로 기각한 바 있다.

첫발을 잘 내디뎠지만 실제로 정책의 수행은 또 다른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다. 우선 가계소득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가 많은 나라의 경우 소득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빚을 갚는 데 들어가기 십상이다. 최근 가계저축률이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연합뉴스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종구 금융위원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연 부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 2017.7.25

다음으로 앞에서 격찬한 중소기업 네트워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형성되고 세계적으로 성공이라고 할 만한 사례도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늦어도 3년차쯤에는 온갖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세계 1위 수준인 자산 불평등 개선 대책도 필요

이에 대한 대책은 정부의 혁신 투자에 있다. 신기루 같은 4차 산업혁명(역대 정부에선 4T, 6T처럼 기술 분야를 적시했다)이 아니라 이미 발표문에 일부 포함된 ‘녹색 전환’에 공공투자를 집중하는 것이다. 요즘 경제학계의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표현을 빌리자면 녹색 기술혁신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여야 한다”. 화석연료의 사용 없이 한순간도 돌아갈 수 없는 현재의 경제체제를 바꾸려면 말 그대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의 생산과 배분은 물론이고 모든 교통 시스템, 주거 방식을 다 바꿔야 한다. 이 방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 실행에는 기업은 물론 시민의 적극적 실천이 필요하다.

부동산 등 자산 정책이 오직 ‘리스크 관리’ 항목에만 등장한 점은 못내 아쉽다.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이미 세계 1위 수준으로 가계소득 증가분을 모두 흡수해버릴 수 있다. 더구나 대외적으로 사드와 한·미 FTA ‘개정’ 문제에 이르면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두 문제는 크나큰 정책 기조의 문제라서 관료들이 적당히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내 걱정이 또 한번 ‘기우’로 판명 나기를 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여야 한다.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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