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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콤플렉스’에 대한 명상

장정일 (소설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8월 03일 목요일 제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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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내 최초의 독후감은 2000년 2월22일에 쓴 것으로, <장정일의 독서일기 5>(범우사, 2002)에 실려 있다. 그 글에서 나는 험버트가 묘사하는 롤리타가 “소년을 연상”시켰다면서, “성 심리학 속에서 소아성애증과 호모섹슈얼리티는 등가나 호환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작품에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테니스를 치고, 무용 연습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롤리타가 반복해 등장한다. 까닭은 서른일곱 살 된 험버트가 좋아하는 소녀의 신체 부위가 “날씬한 팔” “매끄럽고 사랑스러운 다리” “갈색의 팔다리” “날씬한 종아리” “천진난만한 다리” “가무잡잡한 두 다리” “황금빛 다리” “미끈한 다리”였기 때문이다. 반면 험버트는 그가 만났던 모든 여성의 젖가슴에 무관심했다. 사라진 롤리타가 열일곱 살 임신부로 그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성숙해진 젖가슴은 험버트를 창백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C. 세토는 <성도착증-소아성애증과 아동 성범죄>(시그마프레스, 2016)에 이렇게 썼다. “소아성애자는 일반 성인 남성과 달리 유방과 같은 성숙한 신체적 특징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아동 성범죄자들은 아동의 부드러운 피부, 작은 신체, 체모가 없는 신체적 특징에 성적 매력을 느낀다.”

험버트는 “남아용 셔츠”와 “사내 같은 차림새”의 롤리타를 좋아했고, 아예 “푸줏간 소년 스타일”의 파자마를 그녀에게 입혔다. 험버트는 “풋풋한 엉덩이” “작고 팽팽한 엉덩이” “좁다란 엉덩이” “아직 골반이 벌어지지 않은” “소년의 골반처럼 좁았”던 롤리타에 집착했다. 세토에 따르면 “소아성애자 상당수는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남자 아동을 선호”하며, “소아성애자들은 일반 성인 남성에 비해 동성에게 매력을 느낄 확률이 약 10배”나 많다고 한다. 하지만 세토는 소아성애자에게 훨씬 더 빈번한 동성애 선호가 “이성애자인 일반 남성들이 여자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성인을 선호하는 게이 남성들이 남자 아동을 대상으로 더 많은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소아성애자가 동성을 선호하는 것은 입증되지만, 동성애자가 소아성애자만큼 어린애를 좋아한다는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보코프의 이 소설로부터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잡스러운 용어가 나왔다. 롤리타 콤플렉스가 나오기 이전에 성인 남자가 성숙하지 않은 소녀에게 성욕이나 정서적 동경을 가지는 심리적 경향을 지칭하는 소아성애증(pedophilia)이라는 용어가 엄연히 있었다. 미군이 사용하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민간인 살상을 회피하기 위한 세탁어(洗濯語)이듯, 소아성애증을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것은 소아성애자에게 욕지기 나오는 문학적 후광을 부여한다.

실제의 <롤리타>는 한 사회·문화가 롤리타 콤플렉스를 낭만화하거나 무해한 취향으로 수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체의 신비화나 합리화 기제를 제공하지 않는다. 고아가 된 롤리타는 열두 살에서 열세 살이 되는 1년 반 동안 의붓아버지 험버트에게 납치된 후, 미국 48개 주를 전전하며 성폭행을 당했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수단은 손찌검과 용돈이었고, 모든 게 들통 나면 ‘나는 감옥으로, 너는 고아원’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험버트는 아침과 저녁 식사 전에 롤리타에게 의무적인 성교를 요구했다. 그는 새로운 도시에 머물 때마다 차를 몰고 제일 가까운 학교를 찾아가, 하교하는 여학생들을 훔쳐봤다. 그러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소녀가 보이면 롤리타에게 애무를 시켰다. 어느 날 감기에 걸린 롤리타가 불덩이처럼 펄펄 끓게 되자, 험버트는 “환상적인 체온으로 뜻밖의 쾌감을 선사하는 그녀를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험버트가 달콤하게 생각하는 그 시절을 롤리타는 어떻게 보냈을까? 그녀는 “이렇게 답답한 모텔 방을 전전하며 더러운 짓을 해야 하느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느냐”며 따졌고, “짐승”이 잠들면 밤마다 혼자 흐느껴 울었고, 걸핏하면 우울해했다.

마이클 C. 세토 지음
이장규·최은영 옮김
시그마프레스 펴냄

이 소설이 어린 소녀를 사랑한 중년 남자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읽히기도 하는 이유는, 이 소설의 화자인 험버트가 매번 “독자여! 형제여!”를 호명하면서 독자를 자신의 심정에 감정이입하도록 하는 술수를 썼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가해자이고 롤리타는 피해자인데, 왜 가해자만 말을 하는가. 롤리타는 험버트에게 자신의 말할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이제 아주 기이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유혹한 사람은 그녀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첫 남자도 아니었습니다”와 같은 모함에 속수무책이다.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험버트는 의붓딸을 성 노예로 삼을 수 없다. 그는 롤리타에게 “충분한 교육, 건강하고 행복한 소녀 시절, 청결한 가정, 좋은 동성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 등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롤리타>를 뽑은 자들은 누구?

세토는 “그 어떤 치료도 동성애적 (혹은 이성애적) 성향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던 것처럼 그 어떤 치료도 소아성애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한다. 신빙할 수 없는 화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현대 소설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소아성애자인 험버트만은 믿어도 괜찮다. “어떤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혹시 운이 좋으면 그녀가 내 피를 이어받은 아름다운 님펫을 낳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롤리타 2세는 1960년경에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이 될 텐데, 그때쯤에도 나는 여전히 한창나이이리라.” 그에게는 종신형과 전자발찌가 필요하다.

이 소설은 1998년 ‘영어로 씌어진 20세기 100대 소설’을 뽑는 어느 조사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이 소설에는 내가 모르는 심오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소설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한 독자는 자책까지 하게 된다. <롤리타>가 영어로 쓰인 20세기 100대 소설 가운데 4위에 오른 비밀을 작품에서 찾지 말라. 이 작품에 무수하게 나오는 수수께끼는 솔직히 말해 스무고개처럼 한갓된 것들이다. 문제는 작품의 질이 아니라, 뽑은 자들이 누구냐다. 100대 소설을 뽑는 선정위원에 여성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선정위원의 남녀 비율이 반반씩만 되었어도 저 소설은 하위권을 맴돌았을 것이고, 저 소설을 4위에 올려놓았던 남성 선정위원의 수만큼 압도적인 여성 선정위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롤리타>의 순위는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 것이다. <롤리타>가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사육 포르노’의 기원인 것도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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