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힙합 서바이벌’을 표방한 엠넷 〈쇼미더머니〉(〈쇼미〉)가 지난 6월30일 여섯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타깃층인 15~34세에게서 매회 지상파·종편·케이블을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3회 방영분 기준). 총 1만2000명이 1차 예선에 참가했고, 유명 래퍼들의 출연도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일부 음악인들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말한다. 시청률이 오르고 화제가 될수록 〈쇼미〉라는 ‘외부 세력’이 힙합판의 절대 권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Mnet 갈무리‘국내 최초의 힙합 서바이벌’을 표방한 엠넷 〈쇼미더머니〉가 6월30일 여섯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쇼미〉는 지원한 래퍼들의 공연을 보고 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시즌 6의 특이점은 프로듀서(심사위원 겸 멘토)와 지원자들의 이름값이다. 타이거JK, 다이나믹듀오 등 힙합 팬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래퍼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지원자들도 면면이 화려하다. 시즌 1 당시 지원자(1200명)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도 그렇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파로 유명한 래퍼들이 대거 나왔다. 디기리, P-type, 키비 등 15년 이상 활동한 베테랑도 지원했다.

이번에도 방송 초반부터 논란이 불거졌다. 예고 영상 속 ‘노란색 리본’이라는 랩 가사를 묵음 처리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구설에 오르거나 실력이 부족한 지원자가 예선을 통과했다는 단골 비판도 나왔다. 출연자가 비난받을 만한 행동만 내보낸, 이른바 ‘악마의 편집’ 논란도 여전했다. 일부 출연자들을 ‘통편집했다’는 푸념도 있다. 그러나 시즌 1 때 나왔던,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찾기 어렵다. 프로그램의 위상이 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서이다.


한국 힙합판 전체보다 더 커져버린 〈쇼미〉

2012년 5월께 처음 불거진 ‘프로그램 최초의 논란’은 힙합판에서 〈쇼미〉 존폐 여부를 다툴 만한 문제였다. 첫 방송을 한 달여 앞둔 시점, 10년가량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온 래퍼가 “제작진에게서 신인 래퍼로 출연해달라고 제의받았다”라고 밝힌 것이다. 격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언더그라운드, 나아가 힙합판 전체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라는 비판이었다. 저변에는 ‘일개 TV 프로그램이 누구를 평가하는가’라는, 래퍼들의 근본적 자존심이 깔려 있었다.

‘일개 TV 프로그램’이 장르 전체를 재편하는 데에는 5년이 걸리지 않았다. 비판을 감내하고 〈쇼미〉에 출연했던 래퍼들은 인생이 바뀔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 이제 〈쇼미〉는 십수 년간 이름을 날린 래퍼들도 기꺼이 가슴팍에 지원자 번호표를 달게 만드는 ‘질서’가 되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더블케이다. 2004년 첫 앨범을 낸 이 서른다섯 살 래퍼는 〈쇼미〉 시즌 1에서 우승했다.
시즌 6에 지원자로 나선 그는 첫 방송에서 “나를 알리는 방법은 〈쇼미〉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제 논란은 공정성 여부에만 머무른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은 불공평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더블케이 정도 래퍼가 왜 〈쇼미〉에서 평가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는 없다. 힙합판은, 〈쇼미〉가 한국 힙합 전체보다 더 커졌다는 사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시사IN 조남진강일권 〈리드머〉 편집장(위)은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래퍼가 평가받는 것 자체가 터부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장르를 삼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래퍼들의 동조와 묵인으로 점차 힘이 커진 〈쇼미〉는 힙합이라는 장르를 새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시즌 4에서 불거진 여성 비하, 욕설 논란에 대해 엠넷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장르 음악의 특성”이라고 언급했다. 〈쇼미〉 시즌 5까지 제작을 총괄한 한동철 PD는 “‘디스(disrespect: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힙합 문화다”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라는 말은 돈에 한 맺힌 미국 흑인들이 힙합에 정착시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과 전혀 다르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지만 힙합판 내부의 비판은 미미했다.


〈쇼미〉는 힙합의 규칙이 아닌 자본의 규칙에 따라 ‘카스트’를 만들었다. 최상층에는 편집권을 가진 제작진이 있고, 심사권을 위임받은 프로듀서 래퍼들이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 지원자들은 실력이 아니라 상업성으로 나뉜다. ‘발굴’의 대상이어야 할 아마추어 래퍼들은 일찌감치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역학 관계는 거스를 수 없다. 일부 래퍼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엿을 먹이겠다” “비판자들을 가르치고 돈을 벌겠다”라며 지원의 변을 내놓았지만 출연분은 통편집됐다.

가장 큰 문제는 〈쇼미〉라는 자본이 힙합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흑인음악 매체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래퍼가, 기꺼이 다른 래퍼들 앞에서 벌벌 떨며 평가받는 것 자체가 터부다. 그 시스템에 일조하면서 ‘스왜그(힙합 특유의 뽐내기)’를 외치는 건 자기기만이다. 대중이 지원자의 생계를 걱정해주는 동안, 자존심을 지키는 래퍼들은 점점 배를 곯는다. 미국에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제일 먼저 래퍼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7월14일 〈쇼미〉 방송에서는 드렁큰타이거의 ‘뿌리’가 비트로 흘러나왔다. 이 곡을 만든 타이거JK와 다른 프로듀서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곡은 ‘총알보다 무서운 건 MC의 철학’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쇼미〉의 ‘총알’ 앞에 번번이 판정패한 ‘철학’이 이번에는 판을 뒤집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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