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이 최악의 콜레라 사태에 빠졌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따르면 지난 4월 첫 환자가 발생한 뒤 감염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30만명을 넘었다. 1600여 명이 사망했다. 21개 주 가운데 19개 주에서 환자가 확인돼 사실상 전국으로 퍼졌다.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은 “예멘에서 대재앙이 벌어지고 있다. 1시간에 1명꼴로 콜레라 사망자가 발생한다”라고 밝혔다.

콜레라는 전염 속도가 빠르다. 급성 설사를 유발해 중증의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수액과 항생제를 적절히 투여하면 사망률이 1% 정도에 그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현재 예멘의 어지간한 병원에서는 수액과 의약품이 동났다.  

ⓒEPA7월14일 예멘 사나 시의 한 병원에서 콜레라 감염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전염병을 통제하려면 정부가 건재해야 하지만 예멘은 내전 상태다. 2014년 9월 당시 예멘 북부를 장악한 시아파 후티 반군은 수니파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정부를 공격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했다. 2015년 3월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이 내전에 개입했다. 유엔에 따르면 내전 발발 이후 민간인 8000명이 사망했으며 260만명이 거처를 잃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반군이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의 정부 모두 싸우느라 콜레라 통제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예멘은 원래 물이 부족했다. 발전기로 펌프를 돌려 지하수를 퍼 올려야 했다. 내전은 주민한테서 발전기 돌릴 연료를 살 여력을 앗아갔다. 국민의 60% 이상이 깨끗한 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오염된 물을 식수로 썼던 것이 콜레라 창궐의 직접 원인이다. 내전으로 보건 시스템이 무너진 것도 콜레라가 확산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예멘에서 정상 가동되는 병원은 전체의 45%에 불과하다. 


“아침에 온 환자가 약 없어서 저녁에 사망한다”

“예멘은 거대한 콜레라 배양소 같다.” 예멘 남부 타이즈 지역에서 소규모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사이드 씨(49)는 필자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콜레라를 치료할 수액과 항생제가 턱없이 부족하다. 어떻게든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바쉬르 알후세인 씨(37)는 타이즈 지역의 비르바셰르 시장에서 큰 슈퍼마켓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빈 가게만 남았다. 그는 “전쟁 전에는 가게에 물건이 가득 찼었다. 지금은 물건을 받아올 수도 들여올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설상가상 콜레라가 그의 아이들과 이웃을 덮쳤다. 그는 지난 5월 유통기한이 지난 밀가루를 찾아냈다. 이 밀가루를 주민에게 팔았다.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자신의 세 아이에게도 먹였다. 동네 사람들과 그의 아이들이 모두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다. 콜레라에 감염된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상태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보니 밀가루가 오염되고 말았다. 이들이 찾아간 곳이 바로 사이드 씨의 병원이었다. 사이드 씨는 “아침에 실려온 환자가 의약품 부족으로 해가 지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구 60만명인 타이즈에는 원래 병원이 20곳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이드 씨 병원을 비롯해 6곳만 문을 열었다. 내전으로 길이 차단되면서 의약품뿐 아니라 식량 등 생필품도 부족하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간호사 노라 에차이비 씨는 의약품과 의료 지원을 위해 타이즈 지역에 겨우 들어갔다. 그녀는 “우리는 반군한테 두 번 저지당한 후, 겨우 통행 허가를 받았다. 마지막 검문소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EPA6월9일 예멘 사나 시에서 사우디아라비아군의 공습 뒤 주민들이 파괴된 가옥의 잔해를 뒤지고 있다.

입원실이 모자라 병원 마당에 천막을 치고 환자를 치료했지만 사망자가 속출했다. 바쉬르 씨의 세 아이도 콜레라로 모두 사망했다. 그가 특히 예뻐하던 둘째 딸은 “아빠, 그래도 오랜만에 맛있는 빵을 먹어서 참 좋았어”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슬픔에 빠진 바쉬르 씨는 “나는 살기 위해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밀가루를 또 먹어야 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물자 수송이 힘들어지자 생필품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민간인들은 연료와 음식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지난해 12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내전으로 예멘에서 10분에 어린이 1명꼴로 굶어 죽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라며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유니세프 예멘 지부에 따르면 예멘 어린이 22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긴급 구호를 해야 하며, 아동 170만명이 영양실조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들은 배가 고파서 오염된 음식과 물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콜레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예멘의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 등에 총 6670만 달러(약 75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7월18일 예멘 타이즈 지역 칼리드 난민촌 인근 주민이 사는 마을을 공습했다. 이 폭격으로 민간인 11명이 숨졌다. 한 손으로는 기부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폭격을 한다면, 예멘은 이 비극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콜레라 확산을 막으려면 반군과 정부군 양측이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고립 지역에 의약품과 식량을 공급하고 의료진의 이동도 보장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맹군도 구호단체 차량이 안전하게 물자를 수송할 수 있도록 폭격을 중단해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예멘 현장 책임자 사토루 이다 씨는 “예멘의 콜레라 확산은 전쟁이 빚은 결과이다. 국제사회가 먼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콜레라를 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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