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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이 키운 ‘공부하는 시민’

스웨덴에는 시민교육 전통의 뿌리가 깊다. 나라에서 전액 지원하고 사회 발전에 참여하도록 장려한다. 시민교육 단체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며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스웨덴·고민정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8월 02일 수요일 제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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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스웨덴 예테보리 시의 한 사무실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랍어로 운동을 의미한다는 ‘하라캇(Harakat)’ 강좌를 듣기 위해서였다. 탈식민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토론하기 위해 신설된 시민 강좌였다. 무슬림 복장을 한 강사들은 현직 초·중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스웨덴 문화계의 권력 구조를 비판하고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종차별주의적 시선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을 마련하려 했다”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스무 명 남짓한 참가자들은 주로 문화예술인으로, 스웨덴의 주류 백인이 아니라 입양인·이민자 2세이거나 필자처럼 외국인이었다. 피부색 때문에 혹은 낯선 이름 때문에 인종적인 차별을 경험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시민들은 마치 비슷한 처지의 ‘동지’를 만난 듯 각자가 경험한 차별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무엇보다 이 강좌의 운영 방식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스웨덴 주류 사회와 기성 권위를 비판하는 ‘급진적인’ 강좌인데도, 스웨덴 정부가 전액 지원을 했다. 심지어 정부 차원에서 이런 대안적인 교육 활동을 장려한다. 스웨덴에는 시민교육 전통의 뿌리가 깊다. 사회민주당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시민교육 지원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성인교육정부지원법’에 따르면 민주주의 강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사회 발전에 참여하도록 장려한다. 물론 정부는 재정 지원만 한다. 시민교육 단체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며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예를 들어 최소 세 사람이 모이면 결성할 수 있는 공부 모임이나 네 사람이 모이면 조직할 수 있는 동아리 등도 각종 문화지원금을 신청해서 받는다. 당연히 자발적인 모임이 활발히 이뤄진다. 노동자교육협회 예테보리 지부의 미디어 분과 담당자인 라르스 비베리 씨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말할 권리가 있다. 우리 강좌도 미디어를 그대로 피동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고 또 직접 미디어를 만들어봄으로써 자발적 교육 활동이 이루어진다”라고 소개했다.

스웨덴 예테보리 시의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인 마리야 보이보도바 씨(왼쪽)는 불가리아 출신 이민자이다.

다문화 사회의 ‘상징’ 시의회 위원장


시민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의 효과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반이민 정서나 극우 성향 운동을 저지하는 데도 이런 교육이나 문화 활동, 그리고 예술가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예테보리 시의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리야 보이보도바 씨의 말이다. “스웨덴의 과거와 오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사회민주당은 문화(시민교육)를 복지의 일부분이라 여겨왔으며, 소득 격차나 사회 배경에 상관없이 어린이·청소년 등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을 누리도록 노력해왔다.” 보이보도바 위원장은 “문화는 커피에 첨가되는 크림이 아니라 커피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 직접 융화되도록 하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라고 비유했다.

시민 사회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보이보도바 위원장이라는 인물 자체가 다문화 사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는 예테보리 시의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기관, 문화학교, 강연장, 영화관, 체육 활동, 시민교육 단체 등 크고 작은 모든 기관·단체의 예산 집행을 담당하고 기관장을 임명한다. 자신이 바로 이민자이다. 그녀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스웨덴에 이민 온 지 14년 만에 지역 문화 권력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


스웨덴도 이민자 증가로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치들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스웨덴 정부의 시민교육 지원은 여러 목소리가 공존 가능한 틀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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