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취업준비생 4명이 〈시사IN〉 편집국에 모였다.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고향과 거리가 먼 지역의 대학에 진학했다. 스무 살 무렵 청주에서 부산으로, 서울에서 충주로, 광주에서 서울로 떠났다. 20대의 절반을 타지에서 보낸 셈이다. 공기업·사기업·언론사 등을 지망하는 이들에게 이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방침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 방침을 밝혔다. 취업준비생 사이 갑론을박이 많은데? 


시목(25·지방 국립대 재학 중):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공기업은 지원서를 쓰기만 하면 대체로 서류 전형 때 합격시켜준다. 직무와 관련된 필기시험을 통해 걸러낸 다음, 면접 자리에서 실제로 남는 건 2배수 정도라 지금도 사실상 블라인드 방식으로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진(24·서울 사립대 재학 중):정책이 너무 급작스럽게 시행됐고 정부도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학교 이름은 안 넣고 전공은 넣는 건지, 학점은 어떤지 논란이 있고 당장은 문제가 많을 것 같다.

은수(26·서울 사립대 졸업):루머인지 모르겠지만, ‘뽑고 나니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더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서류 전형까지는 통과한다고 해도 면접에 가서는 출신 학교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동재(27·지방 사립대 휴학 중):달라질 게 있는지 의문이다. 이미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추세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자기소개서에 학교 주변의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희망고문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책의 방향에 대해선 옳다고 생각하나?

시목:채용 과정에서 학력에 대한 이야기를 100%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해당 직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학벌 등의) 정보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거다. 정부가 그런 기조로 나아간다는 신호를 주면 그게 기준이 되고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겠나. 그에 따라 구직자나 채용 담당자도 변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여진:난 학벌이 직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요소들, 가령 사진·출신지역·신체조건·가족사항 등은 비상식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에 빼야 하는 게 맞지만 학력은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기업이 뭘 보고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각기 다른 대학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교육의 질을 얻지 않나. 그와 함께 재학 중의 성실도도 평가하는 걸로 안다.

은수:꼭 실력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이 다르다. 경험의 폭이 다를 수 있다. ‘SKY’ 출신은 자기소개서에 쓸 이야기도 많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많다. 블라인드 채용만으로 기회의 평등을 이루려고 하면 사실 반쪽자리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그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출발선이 다르다. 서류만 같게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토익 공부를 위해서도 서울에 오는 시대다. 취업 스터디조차 지역에서 구하기 어렵다.

ⓒ시사IN 이명익취업준비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이 되어도 성별 차별의 문제가 남고,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는 역차별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목:서울권 대학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수준이 높을 수도 있고 양질의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SKY’ 출신이 ‘우리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니 내가 더 뛰어날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그걸 한 번 더 증명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20대 중·후반에 취업시장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10대 후반, 그러니까 7~8년 전에 쳤던 입학시험(수능)이라는 오래된 정보를 입사 평가의 척도로 삼는 건 타당하지 않다.

은수
:이번에 여학생들이 많이 반발했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여학생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게 학벌 하나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가져가면 어쩌라는 건가’ 싶은 거다.

성차별이 더 심하다는 건가?

시목:학력 차별보다 남녀 간의 차별이 더 심하다고 느낀다. 주변을 보면 여자 친구들이 취업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일이 많다.

은수:필기 시험장에 가면 70~80%는 여자인데 최종 합격자를 보면 60~80%가 남성이더라. 허탈감을 느낀다.

동재:내 경우 어쨌든 30세까지 합격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데 여자 동기들은 그러지 못하더라.

자원이 서울에 몰려 있는 문제에 대해 다들 공감하는 것 같다.

시목:큰 공모전은 서울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지방 학생들이 엄청 노력해서 비슷해졌는데 혹시라도 예전처럼 학교 이름 때문에 감점을 받거나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라든가 사회경제적 기반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상향평준화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여진:만약에 경험이 비슷하고 자격증이나 영어 점수가 같은 A와 B가 있는데 A는 서울대고 B는 지방대라고 하면 기업 처지에서는 서울대 출신을 뽑을 수밖에 없다. 그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출발선상의 문제는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을 없앤다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학벌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정돼야 할 요소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은수:학벌이라는 게 여러 자원이 중첩된 결과물이라는 걸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그것을 어떻게 깰 것인지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목:수능 성적을 가지고 대학에 갔고 기업에서조차 그걸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데, 왜 그렇게 뽑느냐면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학벌 말고도 사람의 능력을 다양하게 평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은수:어떤 글로벌 기업은 고용할 때 그 사람이 일할 직무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만나게 한다더라. 함께 일할 사람이니 그만큼 열심히 인터뷰를 한다.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애쓰는 만큼 기업도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동재
:기업 처지도 이해는 된다. 공채를 하면 사람이 수만명 모이는데 매뉴얼대로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공채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공채가 고시 같다. 영어 점수, 적성검사 등 원하는 게 많다. 수능을 봐서 대학에 갔더니 다시 고시를 준비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사IN 유옥경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주변 친구들의 경우 주로 어디에 입사하길 원하나? 


시목:대부분 서울에 가고 싶어 한다. 친구들의 경우 블라인드 채용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지방대지만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고 취업시장에서 별 손해 볼 게 없다고 느껴서다. 오히려 모든 관심은 어디서 얼마나 뽑을 것인지에 있다. 일자리의 양이 많은 게 훨씬 중요한데 너무 평가 방식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준비하는 처지에서는 더 막막할 수도 있다. 학벌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자기소개서에 뭘 써야 하나 싶고, 서울 학생한테 더 유리한 게 아닌지 불안감이 생긴다.

동재:친구들의 경우 영업직을 선호한다. 영업직은 학력보다 능력에 따라서 성과가 나니까. 학교에서 공무원 준비반을 지원해준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경우 서울이 집인 경우가 많고 당연히 취업도 지역 말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본질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에 있는데 블라인드 채용을 말하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를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얘기하면서 더 논란이 되는 것 같다.

여진:블라인드제와 지역할당제를 함께 시행하는 건 모순이고 역차별이다. 블라인드 자체가 지역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일환인데, 할당제와 함께 시행되어버리면 서울 및 수도권 출신에 대한 역차별 아닌가.

은수:내 경우 서울로 와서 주거비가 남들보다 배로 드는 데다, 정서적으로도 집과 떨어져 있어서 좋지 않다. 그런 걸 감수하면서, 내 터전에서 벗어나 서울에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정작 여기에서 취업을 하려는 순간 지역할당제에선 배제되는 등 역차별을 받게 된다.

동재
:서울과 지역 간 정보 격차가 엄청나게 나는 데다 지역 자체가 초토화됐다. 지역에서 인재를 키워야 하는데 지역할당제 같은 배려는 필요할 것 같다.

채용 과정의 전반적인 아쉬움을 말하자면?

은수:블라인드제보다 더 직면한 문제는 인신공격이다. 면접을 보며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했는데 그것만 없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좀 사람답게 대해주면 좋겠다.

시목:기업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 학점도 중요한데 그것만 있으면 안 되고 대외활동도 필요한데 그게 직무와 연관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딱 한 군데 기업만 보고 준비하진 않는다. 할 게 너무 많아 어느 순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테고 상징적 의미가 큰 것 같다. 채용할 때 기업에서 더 많이 신경을 쓰라는 신호로 보인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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