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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과장이 수첩을 땅에 묻었던 까닭

김은지·주진우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8월 01일 화요일 제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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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박헌영(39) K스포츠재단 과장은 박근혜·최순실 재판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검찰은 그의 수첩 2권을 공개했다. 박 과장이 지난해 1월부터 10월 사이 최순실씨 지시를 받아 적은 업무수첩이었다. 지난 3월 박 과장이 검찰에 제출한 증거를 두고 최순실씨 변호인은 이의를 제기했다. 뒤늦게 낸 터라 믿을 수 없다며 조작이라고 변호인들은 주장했다. 박 과장은 자신을 보호해줄 최후의 자료라는 생각에 땅에 묻어두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을 K스포츠재단에 소개한 대학 선배 고영태씨한테 받은 가방에 “최순실씨의 지시를 받아 적은 수첩 2권을 비롯해 외장 하드와 문건 등을 넣어 보관했다”라고 밝혔다. 그 가방에 든 관련 자료를 <시사IN>에 공개했다.

ⓒ시사IN 윤무영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업무수첩을 숨겼다고 고백했다.

왜 지난 3월 말에야 검찰에 이 자료를 냈나?


솔직히 말하면 불안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최순실씨 가까이서 그 힘을 봤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뒤집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최씨가 구속됐어도 가볍게 처벌받고 나올 거라 여겼다. 그렇게 되면 이런 자료를 내는 게 무슨 소용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다 수첩을 쓰게 됐나?

K스포츠재단 면접을 보는 자리에 ‘회장’이라 불리는 최순실씨가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안 적고 뭐 하냐고 타박하더라. 면접 때 가방에 있던 수첩을 꺼냈는데, 그게 네이버 로고가 붙은 ‘박헌영 업무수첩 1권’이다. 최씨가 청와대 마크가 붙은 수첩(박헌영 업무수첩 2권)을 줬는데 께름칙해서 잘 안 썼다. 그때부터 최씨 말을 적었다. 항상 자기가 지시한 사항을 쓰게 했다. 나중에 안종범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 말을 정신없이 받아썼다는 보도를 보고,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진짜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박헌영·안종범 수첩에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나도 소름이 돋았다. 데칼코마니처럼 하루 차이로 내가 쓴 내용이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쓰여 있다니, 깜짝 놀랐다. 나라가 정말 이렇게 돌아갔나 싶었다. 내 업무수첩에 쓰인 내용은 당일 최순실씨 지시로 황급히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국가 최고지도자가 청와대 수석에게 똑같은 내용을 지시했다.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나.

법정에서 마지막 말을 하려 했지만 최씨의 거부로 못했다.

최씨에게 인간적으로 충고하고 싶었다. 아직도 죄를 부인하지 않나. “이렇게 많은 증거와 증언이 당신에게 죄가 있다고 가리킨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익제보자를 지원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곳이다. 국정 농단 사건을 겪으며 나도 용기를 내 공익제보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활동을 하다 보니 정말 힘들게 자기 역할 하는 많은 공익제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민들이 공익제보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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