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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7월 28일 금요일 제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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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마이클 로버츠 지음, 유철수 옮김, 연암서가 펴냄

“불황의 원인은 불충분한 이윤, 바로 그것!”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세계경제를 분석한 이 책의 결론을 결코 지지하고 싶지 않다. 복지 증대, 최저임금 인상 등 수요 측면의 부양으로는 지금의 불황을 끝낼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은 ‘자본’이다. 결국 불황을 타개할 유일한 길은 ‘더 심한 불황’ 혹은 ‘공황’으로 자본재와 노동력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밖에 없다. 그래야 더 많은 설비재와 노동력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자본이 생산을 재개할 것이다. 암담한 전망이지만 최근의 이윤율 추세를 통계자료로 면밀히 점검한 결론이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긴 힘들다. ‘더 심한 불황’을 겪기 싫은 민중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라고 선동한다.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
미야지마 히로시·배항섭 지음, 너머북스 펴냄

“서구와 근대가 만든 역사관을 제거하자.”


근대란 무엇인가. 유럽보다 근대화에 늦은 우리에겐 여전히 숙제 같은 질문이다. 지금까지 주로 두 가지 답이 제시됐다. 하나는 자생적 근대화의 싹이 있었지만 식민지가 되어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구 근대화를 좇기 전에는 무지·몽매에 머물렀다는 주장이다. 두 의견 모두 극단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은 서구 근대화의 보편주의를 담은 말이다.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의 두 번째인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두 의견에 도전한다. 19세기 한·중·일을 탐구한 저자들은 전통과 근대를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며 전통과 근대를 대립으로 보는 서구의 시간관과 역사관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서구와는 다른 근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사이행성 펴냄

“자기는 미친 게 아니야. 여자일 뿐이야.”


택시 안에서 ‘당한’ 일이라면 대략 30개쯤 말할 수 있다. 그중 최고는 혼잣말로 계속 욕하며 미친 듯이 도로를 질주하다가 집 근처에 다다르자 “내 트렁크에 뭐 있나 궁금하지 않나?”라고 묻던 기사였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자꾸 생길까 자책했다. 나중에 알았다. 대부분의 여성이 택시에 얽힌 안 좋은 ‘추억’ 하나쯤 갖고 있다는 걸. 그렇다고 해서 택시 밖이 안전한가. 소설 속 ‘그녀’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은 밤늦게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도 안전을 계속 확인한다. 그런 그녀에게 애인은 이렇게 말한다. “완전 미쳤구나.” 부러워라, 저 무신경함.
‘페미니즘의 새로운 고전’이 된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가 이번에는 단편소설로 국내 저자와 만난다.




끌리는 박물관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예경 펴냄

“시간이 멈춘 그곳에서 잠들어 있던 사유의 즐거움이 깨어난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 생생하다. 박물관은 무엇이 전시되어 있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박물관 이야기는 누가 전하느냐가 중요하다. 맨부커 상, 부커 상, T.S. 엘리엇 상, 마일스 프랭클린 상 등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살아 있는 박물관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전한다. 박물관에서는 과거의 시간도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세상은 넓고 박물관은 많다. 어떤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하느냐가 바로 안목의 시작이다. 그 박물관 때문에 그 도시를 가고 싶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다. 포화 속에서도 평온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국립박물관 이야기는 르포르타주 문학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초기 불교의 서방 전도를 보여주는 유물의 거친 상태와 박물관장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저자의 안타까운 시선이 선명하게 읽힌다.




귀농의 대전환
정기석 지음, 들녘 펴냄

“귀농 후 농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농촌 주민 또는 마을 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나이 마흔 즈음, 그토록 갈망하던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을 감행했다. 그 뒤 열 차례 넘게 이삿짐을 쌌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치기 농사꾼이자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사는 법’을 연구하는 농촌사회학자로 거듭난 저자는 지금도 “부디 조심하라”며 귀농 지망생들의 의욕을 꺾어놓곤 한다. 그렇다고 귀농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평생 경쟁에 쫓기는 ‘도시난민’ 신세를 탈출한 용기만으로도 귀농인은 격려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개인이건 정부건 여전히 낡은 귀농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10가지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를 제안한다. 도농이 조화로운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개인과 국가가 할 일을 조목조목 짚은 점이 설득력 있다.




민주주의의 정원
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지음, 김문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경제와 정치는 완벽하게 효율적인 영구운동 기관이 아니라 복합 적응 시스템이다.”


책이 제시하는 핵심 비유는 ‘기계형 지성’과 ‘정원형 지성’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장과 민주주의를 마치 영구운동 기계처럼 대했다. 톱니바퀴 같고, 원인과 결과가 일대일로 대응하며, 균형으로 수렴한다. 하지만 실제의 세계는 톱니바퀴의 조합보다는 그물처럼 얽힌 생태계에 더 가깝다. 네트워크 효과, 예상 밖의 창발성,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면 세계를 다루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영원히 잘 돌아가는 영구운동 기계가 아니라, 생태계의 끊임없는 변화에 맞춰 돌봐야 하는 정원으로 세계를 보자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바꾸자는 간명한 주장만으로도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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