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을 뜻하는 부사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개그우먼 김숙은 자신의 이름 ‘숙’이 주는 어감 그대로 참 ‘들쑥날쑥’ 살아왔다.

군대식 서열 문화가 강한 희극인실에서 김숙은 ‘모난 돌’이었다. 선배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거나 말대꾸를 하는 유일한 신인이었기 때문이다. 선배의 음료수 심부름을 다녀온 김숙이 “입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만 사오냐”라고 꾸중을 들은 뒤, 나중에 선배가 10만원을 주면서 담배를 사오라고 하자 900원짜리 담배 100갑을 사왔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이후 선배들 사이에서는 ‘김숙 접근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알아서 하면 왜 마음대로 했냐고 혼나고, 물어보면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냐고 혼나는 세상의 모든 신입들에게는 왠지 후련한 일화다.

이렇듯 타고난 ‘제멋대로’ 김숙이지만, 삶은 때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쑥날쑥해지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따귀소녀’와 〈웃찾사〉 ‘난다김’ 캐릭터로 인기를 모은 시간도 있었지만, 출연료 8000만원가량을 받지 못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통보받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예능 프로그램이 여성 출연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두 가지로 줄었다. 호들갑스러운 찬미를 받는 ‘꽃병풍’, 혹은 결혼과 육아 이야기를 하는 ‘엄마’.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김숙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돌파하는 방식도 김숙답게 참 제멋대로였다. 오랜 친구 송은이와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을 자비로 시작했다. 100% 익명성을 보장하는 고민 상담이라는 뼈대를 빼면 모든 것이 허술했다. 허술함을 메울 유일하지만 가장 값진 자산은 연예계에서 버텨온 20여 년의 세월 그 자체였다. 인맥을 총동원해 청취자에게 가장 알맞은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고, 때로는 30대와 40대를 먼저 지나온 두 사람의 삶을 곧 해답으로 삼았다.

ⓒ이우일 그림

팟캐스트가 예상 밖의 인기를 모으자 방송국 안에서도 다시 김숙의 자리가 생겼다. 들쑥날쑥하던 ‘숙’의 인생이 상향 곡선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여기서도 김숙의 전략은 같았다.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긍정하며 그 시간에 쌓은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운전 실력을 의심받으면 “후진만 시속 80㎞다”라고 되받아치는가 하면 가상 결혼 프로그램에서는 목공 솜씨를 뽐냈다. 관련 책을 내려고 했을 정도로 여행 마니아인 덕에 KBS 2TV 〈배틀 트립〉 섭외 1순위로 꼽혔다. 이 프로그램에서 김숙은 “외로워 보인다”라는 다른 출연자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제주도를 누비며 1인 여행자를 위한 정보와 싱글 웨딩 화보 촬영기를 소개했다.

‘가지런하지 않게’ 걸어온 삶이 뒤따라오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는

혼자서도 혹은 혼자라서 잘 살아온 김숙이지만 이제 그의 관심은 혼자만 잘 사는 데 있지 않은 듯하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재테크 요령을 공개했고, MBC 〈무한도전〉 ‘예능 총회’ 편과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는 남성 중심의 예능판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의 아쉬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크 콘서트에서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어른들 말을 믿지 말고 안 맞는 사람과는 과감히 인연을 끊으라고 조언해서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건 모두 김숙 자신의 표현대로 ‘그냥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직접 경험하고 고민해본 사람이 누군가는 자신처럼 후회하지 않길 바라며 전하는 말은 무게가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가지런하지 않게’ 걸어온 삶이 이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김숙은 오는 8월 방영될 온스타일의 새 프로그램 〈뜨거운 사이다〉의 진행자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과 만난다. 다양한 직종의 여성 진행자들이 모여서 사회·문화 이슈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김숙에게 딱 어울리는 자리처럼 보인다. 2017년 7월6일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 김숙이 앞으로도 50대, 60대, 70대에도 여전히 제멋대로, 들쑥날쑥 살면서 많은 이들의 용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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