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이소라가 방송 출연, 그것도 ‘음악과 관련된 방송’에 고정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게 실화냐” 싶었던 사람,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와 유희열, 윤도현 그리고 노홍철이 함께 등장하는 JTBC 〈비긴 어게인〉은 본격 해외 버스킹 프로그램으로 최근 화제를 얻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그들이 음악하는 풍경은 잠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짝하고 사라질 뿐이고 보면, 그 시선들을 붙들어둘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 전략의 중심축이, 〈비긴 어게인〉을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유희열일 거라 추측했다. 유희열이 맞았다. 그 전략의 브레인이 주로 향하고 있는 핵심이 더욱 중요하다. 그게 바로 이소라다.
살면서 “아 저 사람은 그냥 저거 자체로구나” 싶은 경우들을 만난다. 이소라는 그냥, 음악이다. 물론 유희열도 음악이고, 윤도현도 음악이지만, 이소라는 좀 다르다. 〈비긴 어게인〉에서 처음 ‘바람이 분다’를 불렀을 때가 대표적이다. 이 노래가 끝나고 난 뒤 이소라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은 박수를 보냈다.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는 와중에 이소라의 표정은 많이 어두워 보였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이소라가 추구하는 보컬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컨디션 난조 때문이었을까. 이소라의 목소리에는 힘이 과도하게 실려 있었다. 어렵게 노래를 마친 뒤 그녀가 말했다. “이거는 노래가 아니지. 안 돼.”
이 외에도 〈비긴 어게인〉에서 보여준 몇몇 에피소드들 때문에 혹자는 이소라의 까다로움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기를. 타고나기를 예술가로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까다롭고, 가끔씩은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천편일률이라는 이름으로 얼어붙은 땅을 도끼로 내리치는 사람. 이런 예술가마저 품에 안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짜배기 문화강국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오직 “케이팝, 몇십억 가치” 따위의 문구로 재단하는 나라에서 이소라를 최대한 섬세하게 품어내려 하는 프로그램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비평은 예술가를 비추는 거울
이소라가 말했듯이 노래라는 건, 음악이라는 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다름 아닌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종족이다. 잘할 때에는 칭찬을 하다가도 못할 때에는 비판을 할 수도 있는 토양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사실 거기서 출연진은 박수를 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소라의 목소리는 대개 황홀할 테니까. 그런 이소라가 바로 눈앞에서, 명곡인 ‘바람이 분다’를 부르고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래서 텔레비전 밖의 우리가 된다. 비평의 책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비평이 바른생활 지침서가 되어야 할 이유 따윈 없다. 누군가를 옹호하는 변론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대상을 비난하려는 공소장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어떻게든 최대한 정확하게 예술가를 비출 수 있는 거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 오늘도 나는 내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을 되새김질해본다. 긍지까지는 바라지 않을지언정 최소한 부끄럽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아일랜드까지 가서 굳이 ‘Falling Slowly’를 왜 부르고 있나”라는 비판 글이 꽤 있었다. 나는 이게 전략적으로 유효할 것이라 봤지만, 누군가에게는 퇴행적으로 비춰진 모양이다. ‘첩보’에 따르면 앞으로는 신곡도 (심지어 영어로) 하나둘 부를 거라 한다.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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