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돈! 여자는 미!” 흥겨운 대화가 지글지글 달아오르던 고깃집. 옆 테이블에서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렸다. 소리가 너무 커서 자연스레 눈길이 향했다. 가족 외식을 나온 그 남자는 기름때가 낀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세뇌 교육을 시켜야지!” 딸을 향한 말이었다. 딸은 겨우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너무 차별적인 발언 아니야?” 아내가 따졌지만 남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하고, 여자는 예뻐야 한단다. 심지어 “나도 돈 벌거든?!” 대꾸하는 여자를 비웃기까지 했다. “그까짓 것 벌어봤자….”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자의 그런 태도는 만성 같았고 여자는 아예 싸우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고기처럼, 엿듣는 우리 마음도 이글이글 타올랐다.

“저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얼마나 왜곡된 자아상을 가지고 살까?” 분노가 풀리지 않은 우리는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그날 나와 함께 분노한 후배는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강사다. 얼마 전, 자신이 진행하는 수업 시간에 ‘세상이 말하고, 내가 생각하는 여자다움’을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상대 남성에 따른) 적당한 키’ ‘작은 목소리’ ‘부드러운 말투’ ‘밖에 나다니지 않고 집에 있어야 한다’ ‘털 없고 땀을 안 흘려야 한다’ ‘날씬하지만 볼륨감 있는 몸매’ 등의 대답이 쏟아졌다. 심지어 “여자는 남자보다 머리가 나쁘고 운전을 못한다”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중 어느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여자애는 밥 먹을 때 숟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으면 안 되고 중간까지만 넣어야 한다고 했어요. 다 집어넣으면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남동생에게는 “남자는 그래도 된다”라고 했단다. ‘여자다움’이라는 주제에 관해 이제 중년을 향해가는 나와 열여섯 살 청소년들 간에 세대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니 놀랍고도 슬펐다. 하긴 가까운 과거에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두개골이 남성보다 작아서 머리가 나쁘다는 걸 ‘천동설’처럼 믿었다고 하니 그때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 좋아해야 하나? 그때에 비해 나아지기는 한 걸까?

ⓒ정켈 그림

지난 7월7일 젊은 여성에게 돌이나 유리병을 던진 40대 남성이 구속되었다. 그는 “술을 마시거나 카페에서 다리를 꼬고 있는 여자를 보면 화가 났다”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같은 날에는 “버릇없이 담배를 피운다”라는 이유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한 대학생에게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어린 ×이 싸가지 없이 담배를 피운다. 담뱃불 꺼라”고 말하며 피해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한 많은 여성은 “나도 담배 피우다 맞은 적 있다”라며 경험담을 와르르 쏟아냈다. 생각해보니, 나는 버스에서 졸다가 어르신에게 ‘젊은 것’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팡이로 맞은 적이 있다. 


‘남자는 돈! 여자는 미!’ 세뇌하면 혐오와 위협은 갈수록 더할 것

무엇이 그 남성들을 화나게 했을까? 술을 마신 게, 다리를 꼬고 앉은 게, 담배를 피운 게, 피곤하여 졸다가 자리 양보를 못한 게 맞을 짓인가? 어쩌면 그 남성들이 원하는 ‘여자다움’을 갖추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잘못일 것이다.

“남자는 돈! 여자는 미!”라고 외치던 그는 아마도 딸이 차별받지 않고 잘살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기준에 딸을 욱여넣어도 딸이 살아갈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기준을 강화할수록 혐오와 위협은 오히려 딸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닐 것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바로 이것이다. 여성이 아무리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단속해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 ‘여자다움’을 강조할 게 아니라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움’이란 뭔가 고민해야 한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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