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특목고 폐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처음 자사고가 생길 때 취지는 이랬다. ‘독립적인 재정으로 운영하며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학교 다양화의 견인차 구실을 하기 위한 것.’ 이러한 취지가 무색하게, ‘독립적’인 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계층의 자녀들끼리 ‘자율적’으로 입시 위주 과정에 ‘몰빵’하는 학교가 되어버렸다.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사람의 문제이지, 이런 학교(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반발한다. 현재 자사고·특목고를 다니고 있거나 입시를 준비 중인 학생들은 ‘우리 학교를 제발 없애지 말아달라’고 항변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하는 게 폭력적인 정책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김보경 그림

그렇다면 자사고·특목고 폐지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 말하면 자사고·특목고 폐지 반대 목소리가 더 많이 울려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고 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자사고·특목고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학생들이 당연히 찬성 의견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학생들은 침묵을 지켰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왜 별… 관심 없…어?” 용기를 낸 한 친구가 말했다. “당연히 없어졌으면 좋겠죠. 저는 그냥 중학교를 졸업해 근처 고등학교에 온 건데, 괜히 2등 시민 된 거 같고, 대학은 다 간 거 같고…. 근데 저도 (자사고) 시험 봤다가 떨어졌거든요. 실력으로든 돈으로든 다닐 능력이 없으니까 배 아파서 하는 소리라고 할 거 같아요.”

기득권을 실력으로 치환해버린 학교

우리 사회는 무엇을 비판하든 ‘자격’을 요구한다. 학생들이 인권을 주장할 때도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다. 학벌을 비판할 때도 ‘그건 네가 지잡대를 나와서 그렇지’라는 비아냥이 꼭 따라붙는다. 대다수 사람이 갖출 수 없는 자격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면서 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침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자사고와 특목고가 폐지되면 가장 아쉬울 이들은 자사고와 특목고를 다니고 있거나 그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일부 계층이다. 이 일부 계층만의 학교는 초등학교 졸업해서 중학교 가고, 중학교 졸업해서 고등학교 가는, 평범하게 자신의 행복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학창 시절부터 ‘2등 시민’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대다수 2등 시민은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를 끝내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리그는 계속되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말을 못하고, 그러다 보니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만 ‘스피커’를 통해 재생산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사고·특목고는 기득권을 실력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리 없다. 그 극단적인 예가 멀리 있지 않다. 민중을 ‘개돼지’라거나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것 아니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는 것도 이런 특권 의식 탓이다.

1968년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68혁명은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그 상상력은 68혁명 이후 교육 현장에서도 현실화했다. 파리의 국공립대학들이 파리1대학, 파리2대학, 파리3대학 등 대학 이름에 숫자를 붙이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기득권의 정점인 대학 서열화를 깬 것이다. ‘87년 6월항쟁’ 30주년이 된 2017년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까? 오늘도 교실에서 자신의 무능과 부모를 탓하며 주눅 들어가는 어린 촛불들의 체념이 가슴을 친다.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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