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개혁은 검찰·국정원 개혁과 한 묶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권과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 쪽으로 넘기는 개혁안을 추진한다. 두 권력기관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견제와 균형을 설계하는 모델이다(〈시사IN〉 제506호 ‘검찰 개혁 재수, 이번엔 성공할까’, 제509호 ‘국정원 적폐 청산, 제도로 완성한다’ 기사 참조). 이 모델에서 자연스레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검찰과 국정원을 견제하려다 경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정부·여당도 이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공약집의 경찰 개혁 부문 공약 첫머리는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전국 확대’다. 경찰 역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 견제·균형 모델을 적용한다. ‘경찰위원회(경찰의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으로, 위원회 구성이 정부·여당 쪽 인사에 편중돼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질화를 통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국가경찰은 전국 치안 수요 대응, 자치경찰은 지역 밀착 치안 서비스 제공’ ‘특별사법경찰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실질수사권 강화’도 함께 쓰여 있다. 현재와 같은 단일한 국가경찰의 권한을 분산해 수사권 집중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시사IN 이명익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게 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아래)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세월호 집회 과잉 진압 등을 다루며 야당 시절 경찰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인권경찰을 먼저 주문했다. 인권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이철성 경찰청장도 잇따라 관련 방안을 내놓았다. 경찰개혁위원회를 띄웠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또 살수차 운용지침과 채증 활동 규칙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경찰과 최전선에서 부딪친 시민·인권단체는 인권경찰 선언에 앞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경찰의 신뢰 회복이 되어야 새 역할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은 국회에서도 나온다. 〈시사IN〉은 7월부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 여당 간사를 맡게 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진 의원은 2012년부터 안행위 소속으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세월호 집회 과잉 진압 등을 다뤘다. 야당 시절 주로 경찰의 문제점을 비판한 공격수였다. 이제는 여당 간사로 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 파트너 구실을 맡게 되었다.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사과했다.

‘사과’라는 표현만 가지고 경찰과 1년 넘게 논쟁했다. 일단은 긍정적 변화이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하다. 이렇게 쉽게 사과할 수 있는 걸 왜 박근혜 정권에서 못했을까. 그만큼 경찰이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경찰의 비독립성’을 수차례 목격했을 텐데?

2012년 12월16일 밤 11시, 대선을 사흘 앞두고 경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게 대표적인 사례다. 5년 전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경찰 발표 직전에 문재인·박근혜 후보가 일대일 토론을 했다. 중요한 토론이었는데, 경찰의 심야 브리핑이 모든 걸 덮어버렸다. 명명백백한 대선 개입이었다. ‘경찰 조직을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대선 이후 윤석열 검찰 특별수사팀은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김용판 전 청장은 1·2·3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다만 각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경찰 보도자료와 언론 브리핑의 시기와 내용 면에서 최선이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1심 이범균 부장판사).” “수사 발표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2심 김용빈 부장판사).” 적극적 선거 개입으로 판단할 확증이 부족했다는 것이지, 경찰의 행위가 적절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다).

김용판 전 청장은 무죄를 받았다.

심지어 김 전 청장은 〈나는 왜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는가〉라는 책을 내고, 총선 출마까지 준비했다. 비록 공천을 못 받아 국회 입성은 못했지만. 현재 경찰개혁위원회가 활동 중이지만 부족하다고 느낀다. 국정원은 적폐 청산 TF를 꾸려 과거사를 조사한다. 경찰도 대국민 의심을 사는 사건은 자체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 경찰은 지금 권한 강화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정치적 중립을 어겼던 조직이 수사권만 달라? 냉정하게 평가해서 처벌할 건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경찰 조직 비대화에 대한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위)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변호사로 활동했다. 당시는 막강한 검찰권에 문제의식이 컸다. 검찰권 견제를 위해서는 경찰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찰의 선거 개입 사건을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당시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조직은 무력했다. 심지어 출세를 위해 사실과 다른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 믿을 수 없는 경찰의 모습이 반복됐다.

진상 조사와 반성, 그런 다음에 수사권을 이야기하자?

경찰 내부 통제 방안도 필요하다. 경찰위원회 내실화가 당장 꼽힌다. 경찰 통제를 위해 경찰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지금까지는 제구실을 못했다. 친정부 인사로만 이뤄져서다. 2015년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 열린 경찰위원회를 예로 들어보자. 그해 11월16일 열린 경찰위원회에서 위원들은 ‘경찰 대응 적절, 폭력 집회 근절’로 뜻을 모았다. 경찰 대응이 과잉이라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내부에서는 자화자찬만 했다. “경찰의 대응이 매우 적절했고 노고를 위로한다(보수 성향 변호사)” “이번 시위는 법질서의 근간을 흔든 폭력 사태(전직 경찰)”라는 발언 등만 위원회에서 나왔다. 경찰위원회도 국가인권위처럼 야당·법원 등에 위원 추천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 다른 내부 견제책을 꼽자면?

경찰 직장협의회도 도입하고 경찰 하위직의 목소리도 경찰 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김용판 사건이 일어나고, 일선 경찰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내부 반발이나 문제 제기가 권은희 당시 수사과장 한 명에 머물렀는가에 대해서였다. 그때 경찰 직장협의회 이야기가 나왔다. 현행법상 경찰은 노조를 만들지 못한다. 직장협의회 같은 내부 조직을 만들어 일선 경찰관을 보호해줄 수 있었다면 김용판 사건 같은 일은 불가능했다고 말하더라. 내부 조직의 긴장감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일리가 있다. 또 경찰청장 등 고위직 상당수를 경찰 외부에서 채용하는 입법안도 검토해야 한다.

자치경찰도 경찰권 견제 방법으로 거론된다.

자치경찰제는 근본적으로는 권력 배분의 문제다. 중앙과 지방의 배분, 경찰 내부의 권력 배분, 경찰과 지자체의 권력 배분에 관한 이슈다.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지방분권이 부족하다. 행정조직과 권한을 민주적이며 효율적으로 나누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자치경찰이 운영된다.

참여정부 때 도입했다. 당시는 지방자치 권한 강화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역할이 음주운전 단속, 관광객 단속 정도에 머물러 있다. 자치경찰제 도입 자체가 경찰 권력의 분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치경찰이 방범·생활안전·교통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사·정보·경비 등은 국가경찰이 맡는 모델이다. 사실 자치경찰이 맡는 기능에서 정치적 편향성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이번에 자치경찰 제도가 본격적으로 좀 논의되어야 한다. 경찰 내부 문화의 변화와 시스템 설계가 함께 가야, 권력 지향적인 경찰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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