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샤프 압르메 메코넨(26)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 에리트레아의 ‘아셉’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4년 전 고향에서 8700㎞ 넘게 떨어진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난민 지위를 얻었다. 에리트레아는 악명 높은 독재국가다. 대통령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가 25년째 집권 중이다. 2016년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만 18세가 되면 남녀 모두 군대에 징집된다. 이후 수십 년씩 강제 노동에 동원되며 고문·성폭력 같은 위험에 놓인다. 요샤프의 아버지 역시 군대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

여덟 살이 되기 전, 요샤프는 삼촌·형과 함께 이웃 나라 지부티로 도망쳤다. 삼촌은 요샤프가 열세 살 무렵 숨을 거뒀다. 형은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혼자가 된 요샤프는 정박된 화물선에 숨어들어가 필리핀을 거쳐 2013년 11월 대한민국 여수항에 내렸다. 경찰이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데려갔고 그는 곧바로 구금되었다. 외국인 구금 실태를 조사하던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이정훈 변호사의 도움으로 그는 2014년 7월24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모르는 요샤프는 그때부터 7월24일을 생일로 삼았다.

ⓒ요샤프 제공요샤프의 외국인등록번호는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발급했다.

여권이 없는 요샤프에겐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난민 지위를 인정한 후 발급해준 외국인등록증이 유일한 신분증이다. 외국인등록증에 기재된 외국인등록번호는 주민등록번호처럼 앞자리 숫자 6개가 생년월일로 정해진다. 요샤프의 등록번호는 ‘910000’으로 시작한다. 1991년 0월0일에 태어났다는 의미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요샤프의 생일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런 번호를 발급했다.

농담 같은 생년월일이 요샤프의 발목을 잡았다. 취업을 하려고 해도 고용주는 4대 보험을 적용할 수 없는 생년월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어렵게 취업한 곳에서는 사업주가 허위로 작성한 생년월일로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정작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번호의 생년월일이 다르다며 보험을 적용해주지 않았다. 운전면허증 발급도 거절당했다. 휴대전화 개통도 어려웠다. 그는 불법 ‘선불폰’을 개통해 쓴다.

요샤프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등록번호를 바꾸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동안 법무부는 ‘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요샤프의 외국인등록번호 변경 신청을 받지 않은 이유를 묻는 〈시사IN〉의 서면 질의에 법무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각 통신사에 연락을 취해본 결과, 뒷자리 고유 번호가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건강보험 적용, 휴대전화 개통 등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국내 등록 외국인 중 요샤프처럼 출생연도만 표시된 등록번호를 가진 외국인이 상당수 체류 중이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실제로 요샤프가 이 변호사와 동행해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갔을 때도 개통을 거절당했다. 이정훈 변호사는 “증명 서류가 없다는 사유로 거절한다면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3년간 변경 신청이라도 받아달라고 거듭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꼬박 3년 만에 다시 찾은 자유

한국에 도착한 순간 자유를 느꼈던 요샤프는 3년간 포기를 배웠다. 신분증 때문에 겪은 불편에 대해 요샤프는 “이제 더 이상 그 문제는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으며 살 수 있으니 이전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된 뒤 7월10일 법무부는 뒤늦게 “외국인등록번호를 고쳐주겠다”라고 밝혔다. 직접 외국인등록증 변경 신청을 받는 대신 먼저 난민 인정 서류에 표시된 생년월일 변경 신청을 하면, 이 서류를 근거로 외국인등록번호도 고쳐주겠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아주 사소한 일을 고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요샤프는 지난 6월30일부터 인천시의 한 작은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며 기숙사에 살고 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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