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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에 담긴 함정과 역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대한 반성으로 ‘기관투자가의 행동 지침’을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7월 26일 수요일 제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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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라는 낯선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의제로 떠오른 계기는 2015년 7월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다. 한국 최대 규모의 기관투자가로 당시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합병 찬성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편파적으로 삼성 총수 일가의 사익에 봉사했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기관투자가의 행동 지침’을 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마침 그런 제도가 해외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영국이 2010년 처음 도입해서 캐나다·이탈리아·일본 등 전 세계 16개국에서 운영 중인 ‘스튜어드십’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련했다(오른쪽 표 참조). JKL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이 제일 먼저 도입했고, 미래에셋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시행 준비에 들어갔다. 국민연금 역시 스튜어드십 도입을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시사IN 신선영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임시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회의장이 북적이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탄생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금융기업들(은행·펀드·증권사·보험사 등)의 문제점을 진단한 <워커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들(금융기관)이 투자 대상 회사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로 금융위기가 터졌다. 은행·펀드 같은 금융기관들은 거의 모든 영국 상장사들의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다. 금융위기 이전, 영국 상장사들의 경영진은 단기간에 자기 회사의 주가를 대폭 띄우기(단기 성과주의) 위해 무리한 경영을 일삼았다. 이런 회사들의 대주주인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기는커녕 경영진의 부실 경영을 수수방관해 금융위기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워커 보고서>는 대주주인 기관투자가들이 오너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영국의 회계감독 기관인 ‘금융재무보고위원회(FRC:Financial Reporting Council)’는 ‘기관투자가 행동 규범’을 명문화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했다.


실제로는 ‘자본의 집사’ 구실에 국한

당초 스튜어드십 코드는 장기적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의 향상, 그리고 지속 가능한 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관투자가의 역할 규범이었다. 금융업체 등 상장회사의 경영진들이 단기 성과주의, 즉 단기적 주주가치 극대화에 눈이 멀어서 기업과 경제를 파국적 위기로 몰아간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이런 취지와 별도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현실에서 단기적 주주가치 극대화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펀드·보험사·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에게 실제로 요구하는 행동 규범은 문자 그대로 ‘집사(스튜어드)’ 구실로 국한된다. ‘자기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충실한 집사로서의 책무’만 수행하면 된다는 의미다. 기관투자가들이 고객에게 ‘집사’로 충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의 수익률이 낮은 기업이라면 장기적 전망이 우량하다고 해도 빨리 떨어내고 고수익률 주식으로 갈아타야 한다. 기업 경영진에 배당률 인상이나 자사주 매입을 강제해서 주가를 올려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려면, 특정 주식이나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오너십 전략’ 따위는 절대 구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실물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이를 통한 장기적 주주가치 극대화를 도모하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또 기관투자가들을, 성장 잠재력이 높은 대신 수익 발생 시기까지 적잖은 세월이 필요한 기업에 투자하는, ‘인내하는 자본(patient capital)’으로 전환시킬 인센티브도 담고 있지 않다.

오늘날 주식시장은 단타 매매가 판치는 곳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1975년 35%에서 2009년 70%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과거의 57개월에서 2009년엔 4.8개월로 감소했다. 한국에서는 더욱 심하다. 개인의 경우 두 달 반, 펀드의 경우 석 달 반 정도 보유하고 매각한다. 보험사는 반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7개월 정도 보유한 뒤에 시세차익을 노리고 팔아버린다. 당초 장기적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향상을 목표로 했던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런 단타 매매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EPA
삼성전자에 대해 주주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창업자 폴 싱어.

더욱이 기관투자가들이 ‘고객의 집사’인 동시에 ‘기업의 오너’로 행동하려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들은 투자 대상 회사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잠재적으로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투자 대상 기업을 제대로 알아야 해당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돕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정 회사와 해당 업종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심층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상당한 인력과 비용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추가 비용을 들인다 해도 그 비용을 상쇄할 만한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채택을 주저하거나 아니면 채택하더라도 시늉만 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자본시장에는 기꺼이 그런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오너처럼 행동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이 존재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적대적 M&A 사모펀드들이다. 이들은 삼성전자 같은 특정 기업을 주도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주주총회에서 주주 제안 및 사외이사 파견 등의 방식으로 그 회사를 공략할 작전을 세운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이런 적극성은 투자 대상 회사를 오히려 파괴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요약하자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오너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자본시장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요구에 적극 부응할 만한 처지에 있는 기관투자가는 많지 않다. 이런 전제조건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은 채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가정책 차원에서 도입될 경우 그것이 초래할 결과는 대충 두 가지다.

첫째, 헤지펀드 같은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2006년 KT&G를 공격했던 미국의 아이칸, 현재 삼성전자를 공략하고 있는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대표 사례다. 일각에서는 이 점을 ‘스튜어드십 코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비판한다. 본래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범의 하나인 헤지펀드와 그들의 약탈적 단기 수익 추구를 억제하려는 취지에서 논의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인데 오히려 헤지펀드의 활동을 더욱 촉진하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둘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기관투자 주주 서비스) 같은 ‘의결권 자문회사’의 역할이 비대해질 것이다. 사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투자가들에게 요구하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03년 펀드와 연금 등 모든 기관투자가의 주주총회 투표를 의무화했다. 또한 기관투자가들이 주주총회에서 ‘어떤 쪽으로 투표했는지’는 물론이고 ‘그 결정의 이유’도 공개하게 했다. 펀드와 연기금, 보험사 등은 자신들이 투자한 수많은 회사의 주주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추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너무 많은 돈이 든다.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ISS 같은 외부 자문회사에 그 귀찮은 임무를 맡겨버렸다. 기관투자가들 처지에서는 ISS 등 의결권 자문사의 추천을 따르는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가 요구하는 주주권 행사 책무를 이행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의결권 행사에서 표 몰리는 ‘양떼 행동’ 우려

ⓒ연합뉴스
2월13일 임종룡 금융위원장(맨 오른쪽)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예정기관 간담회’에서 참여 운용사에게 인센티브를 고려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한국에도 토종 의결권 자문사들이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4곳이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주로 ISS의 조언을 받는다. 이미 ISS는 해외 기관투자가를 통해 한국 상장사들의 주주총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채택될 경우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ISS의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이미 국민연금은 ISS에 자문을 위탁할 것을 검토 중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업체인 ISS는, 스튜어드십 코드 같은 주주권 행사 의무화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ISS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업’ 시장에서 60%를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 3만3000여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한 뒤 1600여 기관투자가들에게 ‘찬반’ 형식으로 ISS의 의견을 전달한다. 2위 업체인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 & Co.)의 글로벌 점유율은 20%다. 두 회사의 의견이 한국에 투자하는 국제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좌지우지한다. 그 결과, 국제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에서 한쪽으로 표가 몰리는 ‘양떼 행동(herd behavior)’이 발생한다.

ISS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현재 ‘베스탈 캐피털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의 자회사다. 이 사모펀드의 대주주인 로버트 몽크스는 당초 ISS의 공동 설립자로, 레이거노믹스를 신봉하는 주주행동주의자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행태를 적극 옹호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책임 있는 ‘오너’처럼 그 장기적 성장·발전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당초 취지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이 자칫 미국 월스트리트의 벌처펀드들이 자사의 단기 고수익 실현을 위해 한국 최대 상장사들의 주주총회를 좌지우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신중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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