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30%쯤 진척된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과 앞으로 나갈 일이 확정된 돈을 합쳐 2조6000억원쯤 된다. ‘탈핵’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새 정부는 난처하다. 계속 짓자니 대선 공약 파기다. 중단하자니 지금까지 들어간 유·무형의 비용이 간단치 않다. 어떤 판단이 답일까는 두 번째 질문이다. 진정으로 시급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떠오른 질문은, 무엇이 답인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이다.

설계 수명을 넘긴 원전은 끄고 신규 원전 계획은 백지화해 탈핵 국가로 간다는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가 완공 40년 만인 올해 6월 가동을 영구 중단했다. 신한울 3·4호기는 설계 용역을 발주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신한울 1호기는 공정이 90% 정도 진척된 상태여서 계속 짓는다. 여기까지는 판단이 쉬웠다. 문제는 공정률 30%가량인 신고리 5·6호기였다. 대선 공약집에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이 명시되어 있으나, 집권 후의 정책 판단은 또 다른 문제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고뇌”라는 표현을 썼다. 신고리 5·6호기까지는 그대로 진행하고 후속 원전 계획만 백지화하는 방안은 쟁점을 덜 만든다는 점에서 유혹적인 대안이었다.  

ⓒ연합뉴스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영구 정지 터치버튼을 누르려고 준비하고 있다.

결정적인 변곡점은 6월19일이었다. 고리 1호기 영구 중단 기념식이 있던 날이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습니다.” 청와대 내의 에너지 정책 실무자들도 사전에 몰랐던, 일종의 폭탄 발언이었다. 핵심은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공약 이행도 후퇴도 아닌 제3의 카드를 냈다. 탈핵 신념이 강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일각의 신중론에 선을 긋는 한편으로, 사회적 합의에 결정권을 넘겼다. 그런데 대체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도출하는 것일까.


문제의 해법으로 ‘숙의민주주의’ 제안

청와대는 ‘공론조사’를 선택했다. 큰 그림은 이렇다. 전체 유권자를 대리할 수 있는 일정한 수의 시민을 뽑는다. 이들을 ‘시민배심원’이라고 부르는데, 개념상 혼란이 있는 용어지만 일단 그대로 쓰자. 시민배심원에게 각계 전문가들이 브리핑과 토론을 제공한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시민배심원이 토론을 거쳐 숙성된 결론을 낸다. 이 결론이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정한다.

기술적으로 구분하면,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은 별개 모델이다. 시민배심원은 배심원단이 양측의 주장과 근거를 듣고 결론을 내린다. 법원의 배심원 재판(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하다. 배심원단의 크기는 자신들끼리 한자리에서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소수인 경우가 많다.

반면 공론조사는 비교적 다수의 대상자들에게 사전에 의견을 조사한다. 그리고 양측의 주장과 토론을 들려준 후 의견 변화를 추적한다. 2012년 일본에서는 원전 정책을 두고 공론조사를 했다(22~23쪽 기사 참조). 무작위로 뽑은 6849명 가운데 토론회 참가자 28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30년 탈원전’ 찬성 의견이 토론 전 41.1%에서 토론 후 46.7%로 증가했다. 이 변화폭을 관찰하는 것이 공론조사의 핵심이다. 정책 결정자인 정부와 의회는 이 조사 결과를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하지만, 공론조사단이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사회적 합의는 두 모델의 혼합형에 가깝다. 이 테이블에서 나온 결론은 그대로 정책으로 결정된다. 시민배심원 모델이다. 하지만 조사에 참여하는 시민은 백 단위 이상의 대규모로 구성되며 사전 의견과 사후 의견도 조사될 가능성이 높다. 공론조사 모델이다. 청와대가 개념상의 혼선을 감수하고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이라는 용어를 동시에 썼던 이유다. 합의 과정의 구체적인 규칙은 총리실이 출범시킬 공론화위원회에서 정하게 된다. 일종의 ‘룰미팅’이다.

시민배심원과 공론조사가 기술적으로 다른 모델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둘은 ‘숙의민주주의’로 불리는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한 유형이다. 현대국가에서 모든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전 국민의 모사품인 표본 집단을 추출해서, 이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 기회를 준다. 이들은 전체 시민을 압축한 대리물이므로, 거기서 나온 결론은 전체 시민 토론의 대체물로 간주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의회가 이런 숙의 기능을 담당해야 하지만, 정파 경쟁 등 여러 이유로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문제의 해법으로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한 셈이다.

ⓒ연합뉴스6월27일 정부는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공사를 일시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제기되는 의문은 이렇다. 원전 정책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슈다. 원전 기술만 해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주제는 기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에너지 안보, 위험평가, 현세대와 미래 세대 부담 조정, 지역 간 형평성 등 서로 다른 차원의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과연 이런 고도의 판단을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에게 맡겨도 될까? 


공론조사 방침이 발표된 직후부터 보수 언론과 원자력계가 퍼부은 공세의 핵심이 이 대목이었다.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성이 존재하는 정책 결정을 왜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가? 가장 적극적인 〈조선일보〉만 훑어보면 이렇다. “일본은 ‘공포’를 ‘과학’으로 극복하고 있다. 히로시마를 겪은 일본이지만, 국가 안보를 목표로 할 때 원전보다 합리적인 선택은 없는 것이다(〈조선일보〉 7월5일자).” “공론조사를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위험한 대중 영합주의다. 소크라테스의 사형도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했다(〈조선일보〉 7월3일자).” 7월5일에는 공대 교수 417명이 탈핵 추진을 중단하고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른바 ‘한수원 마피아’가 똘똘 뭉쳐 사실을 왜곡한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원전의 위험성 평가는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지만, 대중의 원전 공포는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을 해외 과학계에서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리처드 뮬러도 그중 한 명이다. 동일본 대지진은 1만5000명이 사망한 대참사였다. 하지만 뮬러는 지진이나 해일 외에 오로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추가로 사망한 인명은 많아도 300명을 넘기 어렵다고 추산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반(反)과학주의를 폭로하는 책 〈똑똑한 바보들〉을 쓴 과학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진보주의자가 반(反)과학주의로 기우는 드문 예외로 백신 공포와 원자력 공포를 꼽는다.

전문가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설득력을 발휘한다. 고도의 복잡성을 다루는 과제는 고도의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생각은 직관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아무리 단호한 민주주의자라고 해도 이런 특수한 장면에서는 전문가주의를 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유를 이미 30년 전에 논증한 정치학자가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로버트 달이다. 1989년에 내놓은 주저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달은, 상식처럼 보이는 전문가주의가 왜 민주주의 원리를 위배하는지 치열하게 논증한다. 달은 가상의 사례로부터 출발한다. “치명적 독감이 아시아에 등장했고 곧 미국 전염을 앞두고 있다. 아무 대책을 내지 않는다면 이 독감은 600명을 죽일 것이다. 대책 두 가지가 제안되었는데, 대책 A는 200명을 살릴 것이다. 대책 B는 3분의 1 확률로 600명 모두를 구하거나, 3분의 2 확률로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 어떤 대책을 채택해야 하는가?”

대책 A와 대책 B는 확률상 같다. 두 대책이 살릴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의 수는 똑같이 200명이다. 예방의학자라면 두 대책의 효과는 차이가 없다는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동전 던지기를 해도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 결정은 예방의학적 전문성과는 무관한 가치의 선택 문제가 얽혀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서로 다른 차원의 가치들 중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가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탈핵이냐, 아니냐’는 민주주의의 영역

탈핵 문제만큼 서로 다른 차원의 가치들이 겹쳐 있는 이슈도 흔치 않다. 탈핵 이슈가 갖는 고도의 복잡성은 전문가주의의 논거였으나, 달의 논증에서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논거가 된다. 가치들이 대체 관계(트레이드-오프)로 얽혀 있는 세계에서, 전문가란 자기 영역에 속하는 정보를 최대한 폭넓고 깊게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어떤 가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겹쳐 있는지가 충분히 확인된 후, 이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이 시민의 몫이다. 

ⓒ시사IN 신선영‘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이 열리는 동안 행사장 밖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계획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공대 교수 417명이 탈핵 반대 성명을 낸 다음 날인 7월6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윤태웅 대표(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민들은 값싼 전기 공급을 원할까요? 아니면 미래 세대를 위해 전기요금을 더 낼 각오가 돼 있을까요? 원전은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공간적으론 특정 지역에, 시간적으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학자들이 원전을 좁은 의미의 공학적 문제로만 본다면, 그분들에겐 다른 의미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여깁니다.” 원전 이슈에는 ‘가치의 차원들’이 존재하고, 그 선택이 시민의 몫이라는 의미다. 로버트 달이 살아 돌아와서 한국 상황을 보았다면 했을 말처럼 읽힌다.


신고리 5·6호기 해법을 모색하던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원전 정책과 같은 결정적 이슈를 놓고 민주주의와 전문가주의가 선명하게 충돌했다. 가치들이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전문가주의의 매력은 올라가지만, 실제로는 그럴 때야말로 민주주의의 공간이 넓어진다.

로버트 달의 논증은 야당과 보수 언론과 원자력 학계가 주장하는 전문가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그와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공론조사 모델의 모순도 드러낸다. 가치의 차원들이 여럿 겹칠수록 전문가의 영역은 좁아지고 민주주의의 공간이 넓어진다. 원전 안전성 평가나 가동연한 판단과 같은 기술적인 질문일수록 전문가주의의 영역이고, 탈핵이냐 아니냐와 같이 가치가 중첩된 질문일수록 민주주의의 영역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론조사에 부친 의제는 ‘탈핵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공론조사 의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끝낼 것이냐 백지화할 것이냐’로 제한된다. 단순화하면 두 원전 공사에 물려 있는 2조6000억원을 매몰비용으로 보고 손을 털지, 회수 가능한 투자로 보고 완공할지의 양자택일이다. 공론조사 과정에서 에너지 안보 문제나 위험평가와 같은 여러 층위의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핵심 질문은 신고리 5·6호기의 처리 방안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는 가치의 선택보다는 경제적·기술적 판단의 비중이 더 높아진다. 전문가주의의 영토다.

문재인 정부는 왜 탈핵 자체가 아니라, 신고리 5·6호기라는 좁은 의제와 숙의민주주의라는 어색한 조합을 택했을까. 논의 과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탈핵 자체는 대선 공약이다. 논란거리가 아니라 기정사실로 간주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화두를 던진 6월19일 기념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별다른 유보적인 표현 없이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습니다”라고 못 박는다. 문 대통령은 낙선한 2012년 대선에서도 탈핵 공약을 내걸었고,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에도 “정식으로 탈핵을 당론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문제는 탈핵으로 과는 과정의 스케줄에만 영향을 줄 뿐(건설로 결론이 날 경우 탈핵 시점이 더 뒤로 밀린다) 탈핵 노선 자체는 사회적 논의에 부치지 않는다는 기조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7.6.19

 

청와대는 원자력계가 내세우는 전문가주의에 대항하는 카드로 숙의민주주의를 던지면서, 한편으로는 탈핵 기조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편으로 의제를 좁고 기술적으로 제한한다. 균형 잡기가 쉽지는 않은 곡예다. 7월7일자 〈중앙일보〉 칼럼은 정확히 이 대목을 찌르고 들어온다. 칼럼은 “논의 과정을 보면 정부가 탈원전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심증이 더 깊어진다. 공론조사, 하자. 대신 진짜, 제대로 하자”라고 주장한다. 제대로 설계한 공론조사에 탈핵 자체까지 부치자는 의미다.  

탈핵은 대선 공약이었고, 여론조사로는 6대3 정도로 탈핵 지지가 우세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대한 이슈에서 ‘사회적 합의가 끝났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풍부한 정보가 제공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 전체가 주목하는 집중적인 논의로, 말 그대로 ‘공론’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현재 그 정도 수준의 공론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청와대 관계자들도 부인하지 않는 판단이다. 탈핵이 초래하는 비용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하지만 이는 시민이 이쪽 전문가들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도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공론 형성을 생략하고 탈핵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전략은 신고리 5·6호기가 결론이 난 후로도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고, 차기 정부를 현 정부 기조에 묶어둘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과 모순된 쟁점을 가득 담은 채로 3개월의 실험에 돌입한다. 대단히 다층적이고 풍부한 논의가 여러 방향에서 생성될 수 있는 흥미로운 항해다. 에너지 정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의사결정 문제를 다룰 때 두고두고 선례로 인용될 중요한 실험이 막 시작됐다.

 

ⓒⓒ시사IN 임지영·최예린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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