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4일,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와 원자력발전 업체 사이에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독일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국가였다. 스웨덴, 이탈리아 등 독일보다 앞서 원전 폐쇄를 정치적으로 결정한 국가들이 있었으나 경제 규모나 원전 용량 측면에서 독일의 원전 폐쇄 결정은 단연 ‘역사적’ 사건이었다. 독일은 어떻게 원전 폐쇄에 이르게 되었을까?

1970년대 초 급증하기 시작한 원자력발전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사회적 저항을 초래했다. 1975년 2월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빌(Wyhl)의 원전 건설 부지 점거운동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에는 브로크도르프와 그론데에서도 원전 건설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1970년대 중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설립 논의가 본격 시작되면서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고속증식로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도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정치권은 시민사회에서 촉발된 이러한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EPA2012년 3월 시위 참가자들이 독일 그로나우의 우라늄 농축시설 앞에서 전체 원전의 가동을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독일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원전은 에너지원으로뿐 아니라 수출산업으로도 각광받았다. 1966년 집권한 사민당은 원자력 연구개발 사업에 적극적이었으며 그 일환으로 1970년대 고속증식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자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집권 사민당 내부에서 기존 원자력 찬성의 당론에 점차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사민당은 찬반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의 정책적 결정을 일단 미루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집권에 실패하고 야당이 되자 원자력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프로젝트를 반대했다. 당시 집권당이던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야당인 사민당의 원자력 정책에 선명한 차이를 만든 계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였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사민당은 원전 폐쇄 정책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집권하면 10년 내로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기민당은 원자력의 계속적인 이용을 고수했다.

2000년대 독일 연방총리가 된 게르하르트 슈뢰더(사민당)와 앙겔라 메르켈(기민당)은 1990년대 각각 니더작센 주지사와 연방 환경장관으로 원자력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당시 쟁점이 된 사안은 원자력 이용과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장 사업인 ‘고어레벤 프로젝트’였다. 슈뢰더는 원전을 폐쇄하고 니더작센 주에 위치한 고어레벤 대신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할 것을 주장한 반면, 메르켈은 원자력의 미래 옵션을 포기할 수 없고 ‘고어레벤 프로젝트’도 중지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 에너지 정책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는 정당 간 대화가 3차례 진행되었으나, 기민당과 사민당은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고어레벤 프로젝트’는 결국 좌절되었다.

ⓒ시사IN 이정현

1998년 가을 연방의회 선거로 사민당·녹색당의 이른바 적·녹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폐쇄 정책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기민당은 2000년 연방정부와 발전업체 간의 원전 폐쇄 합의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 2000년 합의를 뒤집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 때문에 2000년 이후에도 원자력 문제는 연방의회 선거에서 쟁점을 이루는 주된 이슈였다. 2005년 적·녹 연정이 끝나고 기민당·사민당의 대연정이 이루어졌을 때도 원자력 정책에 대해서는 양당이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고 연정 합의문에 명시했다. 2009년 기민당이 자민당과 함께 보수 연립정부를 수립하면서 연방정부와 원자력발전 업체 간에 다시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 협상에 따라 2010년 가을 운영 중인 원전 17기의 수명이 평균 12년 연장되었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한 원자력법 규정은 유지되었다. 기민당은 수명 연장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력한 비판을 의식해 원자력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가교 에너지원’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기민당의 원자력 정책을 바꾸어놓았다. 기민당이 수명 연장 정책을 실행한 지 겨우 6개월 만에 후쿠시마 사고가 발발했다. 메르켈 총리는 즉시 수명 연장 정책을 폐기하고 1980년 이전에 준공된 원전과 고장으로 운영이 중지된 원전 등 8기를 폐쇄했다. 그리고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나머지 원전 9기를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로써 독일에서 원자력 이용을 둘러싸고 30년 이상 지속된 사회 갈등과 정치적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2022년까지 원전 완전 폐쇄’ 선언

독일의 원전 폐쇄는 정치적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현실적 정당성을 꾸준히 확보해왔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의 세계적 모범 사례로 꼽힌다. 현재 독일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의 전력 생산 비중은 30%에 달한다. 2011년 원전 8기를 폐쇄했지만 줄어든 원자력의 전력 생산 비중만큼 이듬해 재생 가능 에너지의 전력 생산이 늘어났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은 위험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원자력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지만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관련해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시민배심원단의 공론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원자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촉매제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2017년 대선 기간 주요 후보들은 원자력 확대에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해서는 중단 내지는 재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미래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지역민이나 시민사회에 맡겨두고서 뒷짐 지고 눈치 볼 문제가 아니다. 정당들이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두고 경쟁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에너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정당의 존재 이유이자 ‘책임 정치’의 모습이다.

 

기자명 김수진 (고려대 연구교수·BK21플러스 BEF경제사업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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