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 강의용으로 콘돔이나 페미돔을 종종 구매한다. 하루는 미처 챙기지 못해 도중에 약국에 들러 콘돔과 손가락 콘돔, 윤활제, 살정제 등을 한꺼번에 계산대에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사의 경계하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굳이 두 번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어서 그 이후부터는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택배 상자에는 ‘사무용품’이라고 적혀서 온다.

한국은 왜 이렇게 콘돔을 꺼려할까. 질병관리본부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18~69세 남성 중 성관계 시 콘돔을 항상 사용하는 비율은 11.5%, 자주 사용은 9.8%, 가끔 사용은 11.4%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70% 이상의 성관계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시선이나 비용 때문에 콘돔을 사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비닐이나 랩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콘돔을 사려면 성인 인증과 유해물 경고창을 거쳐야 한다. 유럽과 미국 등의 고등학교와 보건센터에서 콘돔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콘돔을 쓰는 건 장갑 끼고 손잡는 것 같다는 ‘변명’을 파헤쳐보자.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해본 연구가 있다. 미국에서 2009년 실시한 ‘성건강 및 건강행동에 대한 전 국민 조사’에서 콘돔과 윤활제 사용에 대해 응답한 1645명의 답변을 분석했다. 당연하게도 콘돔을 사용하건 안 하건 섹스는 즐거웠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르가슴 정도는 콘돔과 윤활제를 모두 사용한 경우와 콘돔과 윤활제 중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같았고, 그다음이 콘돔만 사용한 경우였다. 알고 보면 콘돔의 기능도 무궁무진하다. 성감을 높여주는 발열 콘돔, 조루를 방지하는 마취제가 발린 콘돔, 다양한 돌기와 색깔과 향과 맛을 가진 콘돔들은 섹스토이 구실까지 한다.

ⓒ정켈 그림

프랑스는 2006년부터 케이블 TV에서 방영되는 포르노 프로그램에서 콘돔 착용을 의무화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도 2012년부터 포르노 배우가 콘돔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포르노 산업 종사자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조치일 뿐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콘돔 사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콘돔을 사용한 포르노를 본 남성들이 실제 성행위 때 콘돔 사용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웨덴의 포르노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여성이 지갑에서 콘돔을 꺼내고, 콘돔을 씌우는 장면도 자세히 묘사되었다.


타인의 몸에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원칙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위험스러움이 매력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위험이 당신의 쾌락의 원천이라면 부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시길 바란다. 임신과 성 매개 질환에 도박을 걸지 말자.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위험을 알면서도 술과 담배를 하고, 운전을 한다. 하지만 콘돔 사용은 나를 위해서는 물론 상대에 대한 보호와 배려이기에, 다른 위험한 행동에 비해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외출하고 나면 손을 씻듯이,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듯이, 타인의 몸과 만날 때 갖추어야 할 예의이자 기본 위생이라고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올해 1월 스위스에서는 성관계 도중 콘돔을 뺀 남성에게 강간죄를 적용한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동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입·질·항문에 내 손가락·혀·성기가 들어가는 데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원칙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오럴섹스를 할 때도 콘돔 등으로 보호된 상태를 권유하며, 관계 전후에는 구강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칫솔질이나 치실 사용은 피하는 게 좋다. 손톱 밑의 세균이 질 점막이나 항문 점막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성관계 전 비누와 솔로 꼼꼼히 씻고, 손톱은 짧게 자르고, 라텍스 장갑 또는 손가락 콘돔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외음부와 회음부의 피부는 콘돔으로도 보호되지 못하기 때문에, 증상이 있을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한 번씩 파트너와 같이 꼼꼼히 들여다보자.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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