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야경과 관광지로 유명한 싱가포르가 요즘 시끄럽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리셴룽(65) 현 싱가포르 총리와 그 형제들 간의 갈등 때문이다. 아버지 리콴유는 싱가포르 초대 총리이며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965년 8월9일 싱가포르는 독립국가가 되었고 그때부터 리콴유는 1990년까지 무려 25년간 총리로 장기 집권했다. 이런 아버지를 둔 2남1녀 ‘금수저 자녀’들은 2015년 아버지 리콴유가 사망한 뒤부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갈등은 아버지 리콴유의 유언장 내용을 두고 벌어졌다. 리 총리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에 동생인 리셴양(60)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의 부인이자 로펌 대표인 리수엣펀 변호사가 개입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보통 유언장 다툼은 재산 등 상속과 관련된다. 하지만 이들의 유언장 다툼은 ‘리콴유 생가’에 관한 것이다. 리콴유는 사후 우상화 가능성을 우려해 ‘자택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내용을 유언장에 남겼다. 그런데 이 같은 유언 내용을 장남이자 리셴룽 현 싱가포르 총리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리셴룽 총리는 이 내용이 부친의 의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제수인 리수엣펀 변호사가 이 내용을 아버지 모르게 유언장에 넣었다고 의심한다. 리셴양 의장과 리 총리의 여동생 리웨이링(62) 싱가포르 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은 즉각 반발했다. 아버지 유언이 맞으니 맏이인 총리는 즉각 아버지 유언에 따르라고 주장한다. 동생들은 여러 차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총리의 의혹 제기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리 총리가 집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생가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들은 “(리 총리가) 아버지를 우상화하는 수법으로 ‘리콴유 왕조’를 만들고, 형의 아들인 리홍이(30)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 우리는 그를 형제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신뢰할 수 없다”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즉 유언장 싸움 뒤에는 싱가포르의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암투가 자리 잡고 있다.

ⓒAFP PHOTO7월3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동생들과의 불화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대표적으로 잘사는 나라로 꼽힌다. 세계 반부패 운동을 주도하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6년 기준 국가별 부패지수(CPI·국가청렴도)’에서 싱가포르는 7위(84점)로, 아시아에서는 가장 상위다(한국은 100점 만점에 53점으로 176개 전체 조사 대상국 가운데 52위였다).


하지만 이면에는 리콴유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리콴유는 청렴도를 높인다며 건국 초기부터 부자들 중에서 장관을 골랐다. 부자들은 관직에 올라도 축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공무원에게 민간 기업 회사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었다. 세금으로 지급하는 싱가포르 공무원 연봉은 고소득 5% 이내에 든다(〈시사IN〉 제396호 ‘부유한 나라의 불행한 국민’ 기사 참조). 국제 언론감시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17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180개 조사 대상 국가 중 151위였다.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치이다.

싱가포르의 정치·사회 체제는 일반적인 민주주의 잣대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싱가포르 정부가 모든 언론을 통제한다.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없다. 대부분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거나 찬양하는 기사만 보도된다. 유력 야당 인사에 대한 비판 기사도 자주 실린다. 인터넷 사용도 국가가 감시한다. 인터넷에 함부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는 누구든 잡혀갈 수 있다. 싱가포르에는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국내안전보장법’이 있다. 범죄를 일으킬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수사기관이 포착하면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어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주로 온라인에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썼다가 이 법으로 체포되거나 구속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허가 없이 집회나 시위를 할 수도 없다.

리 총리 동생들,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는 데 국내안전보장법을 악용한다.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이 쓰는 수법은 따로 있다. 명예훼손 소송 남발이다. 인민행동당은 1997년 야당 지도자인 탕량홍 싱가포르 노동당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청구액은 무려 808만 달러(약 68억원)였다. 탕량홍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망명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리콴유 전 총리가 만든 인민행동당이 싱가포르 독립 이후 1965년부터 장기 집권하고 있다. 싱가포르 총선은 의원 4~6명을 뽑는 집단 선거구와 의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병행해 의원 89명을 선출한다. 그런데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자체가 여당에 유리한 쪽으로 짜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혹시라도 야당 정치인이 당선되는 지역은 예산이 삭감된다. 유권자들은 여당 후보를 찍어줄 수밖에 없다. 장기 집권의 비결이다. 2011년 총선에서 여당인 인민행동당이 87석 중 81석을 차지했다. 겨우 6석을 빼앗겼는데 이것이 싱가포르 집권 여당 역사상 최대 참패였다.

ⓒEPA논란이 된 리콴유 전 총리의 생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남동생 리셴양(왼쪽, Google 갈무리)과 여동생 리웨이링(맨 왼쪽, Google 갈무리).

싱가포르는 의원내각제이지만 여당 독재 아래에선 권력 세습도 어렵지 않았다.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 리셴룽 총리는 2004년 취임 이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10여 년간 총리직을 맡고 있다.


비민주적인데도 ‘리콴유 키즈’들이 장기 집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 당시 1인당 GDP가 500달러로 가난한 나라였다. 독립 전에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강대국에 시달렸다. 독립도 말레이시아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과 말레이시아계 말레이인들 간의 마찰이 심하자,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독립시켰다. 서울보다 조금 넓은 면적을 가진 싱가포르는 자원이 빈약했다. 노동력을 제공할 인구도 적었다. 여러 나라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악조건에서 리콴유 전 총리는 독재에 가까운 강력한 통치만이 싱가포르를 살릴 수 있다고 여겼다. 악명 높은 태형을 비롯한 엄격한 법 집행과 사회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 모를 싱가포르식 사회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정치적으로 억압당했지만, 빈국에서 부국으로 거듭났다. 국민들은 리콴유가 아니면 싱가포르를 이 정도로 이끌지 못했다고 칭송한다.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의 자녀들이 세습과 권력의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이다. ‘형제의 난’이 싱가포르 안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결국 리셴룽 총리는 7월3~4일 의회에서 청문회 형식의 토론회를 열고 직접 ‘형제의 난’ 수습에 나섰다. 리우 청 치앙 노동당 총재는 “이건 한국 드라마가 아니며, 나라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다”라면서 정부 차원의 대응과 의회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조사할 것을 주장했다. 리셴룽 총리는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형제들이 제기한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 해명했다. 마지막에는 형제들과 화해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리웨이링과 리셴양 남매는 7쪽에 달하는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와 아버지의 바람들이 왜곡되지 않는다면, 소셜 미디어에 추가 증거를 올리는 것을 그만두겠다”라고 밝혔다. 형제의 난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홍콩으로 망명할 것이라고 본다. 리셴룽의 동생들은 지난 6월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들은 국가 감시기관에 감시당하고 있다며 조만간 국외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몰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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