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자사고 폐지가 ‘옳다’ 하지만 ‘보내고 싶다’

‘자사고 폐지’를 내세운 현 정부 교육정책이 실현되더라도 고교 서열화가 유지되리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입 실적이 좋은 고등학교로 쏠리는 현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2017년 07월 13일 목요일 제512호
댓글 0

지난 6월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서울시자율형사립고교장연합회가 ‘자사고 폐지 정책 저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육 가치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자사고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는 교육 가치를 실현한다. 인성·감성 교육 등을 충실히 해서 대학에서 요구하는 훌륭한 인재를 많이 육성했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것이지, 우리가 학원처럼 국영수만 시행하는 학교는 아니다.”

이들 주장처럼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입시 위주의 학교가 아닐까? 학부모들은 인성·감성 등 다양성 교육을 위해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할까? 6월27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한 대형 입시학원의 ‘2018 특목고·자사고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학부모 100여 명이 객석을 채웠다. 자신을 유명 자사고 교사 출신이라고 소개한 학원 강사가 연단에 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특목고·자사고 가려는 제일 큰 이유가 뭐죠?” 강사는 좌석에 앉은 학부모들을 죽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죠.” 학부모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는 ‘자사고 폐지’를 내세운 현 정부 교육정책에 신경 쓰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자사고 폐지에 대해 부모들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중학교 2~3학년생이 자사고에 입학한 뒤 그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이 학생들이 자사고였던 학교 출신이라는 걸 다 알고 있어요.” 비록 몇 년 후에 자사고가 없어지더라도, 대학 입시 과정에서 ‘자사고 프리미엄’이 유지될 것이라고 이 강사는 주장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강사의 말을 받아 적었다.

ⓒYouTube 갈무리
경기도 용인시에서 열린 ‘특목고 입시전략 학부모 설명회’의 모습. 특목고에 진학한 학생이 유명 대학에 입학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6월29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에서 열린 또 다른 특목고·자사고 입시 설명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학원 강사는 커다란 스크린에 고등학교 출신별 서울대 진학 학생 수를 정시와 수시로 나눠서 보여주었다. 학부모들은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스크린을 찍었다. 강사가 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 보면 ○○고는 광역 단위 자사고인데 인문계고인 △△고보다도 서울대를 못 보냈어요. 이건 반성해야 해요. 왜냐면 ○○고가 우수한 애들을 더 많이 뽑아갔는데 그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교육 수요자들이 자사고에 기대하는 임무는 ‘서울대 진학’으로 대표되는 대학 입시 성공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강사도, 학부모들도 ‘명문대 입학 실적’을 중요시했다. 기자가 참석한 오프라인 설명회뿐 아니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자사고 입시 설명회’를 검색하면 나오는 약 2000개의 동영상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이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이르는 말)’에 자녀들을 진학시키고 싶은 분들입니다.” “SKY 대학을 점령한 특목고·자사고. 대입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목고·자사고 입시!”

‘자사고 가야 좋은 대학 간다’는 명제를 뒤집으면 ‘자사고 못 가면 좋은 대학 못 간다’이다. 이 믿음이 교육 수요자들 사이에 퍼져 불안이 확산된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은정씨(50)는 “아들이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이라 본격적인 입시 제도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특목고·자사고에 보내면 좋은 대학에 입학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안다. 학벌이 미치는 영향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자사고마저 없어지면 믿을 곳이 사라져 더 불안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 입시학원에서 주최한 ‘특목·자사고 진학 및 대학 입시 집중분석 설명회’에 학부모 수백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학부모들도 다 ‘좋아서’ 자사고에 보내는 건 아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학부모 송진희씨(40·가명)는 “큰아이가 일반고에 다니다가 ‘너희는 아무리 애써봐야 ‘인(in)서울’에 못 간다’라는 소리를 교사에게 듣고 충격을 받아 자사고로 전학했다. 그런데 막상 자사고로 가니 또 교사들이 학생들을 볼 때 강남에서 온 전학생인지, 비교적 낙후된 곳에서 온 전학생인지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더라.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 서열화의 고리를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학부모는 “주변에 자사고를 보낸 학부모들 말을 들어보면 교육비로 허리가 휜다고 한다. 특정 유명 자사고는 졸업시키는 데 등록금과 사교육비로 1억원이 든다는 얘기도 있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등학교 때부터 계층화가 너무 심해지는 거 같아 자사고는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강남 8학군, 특목고·자사고에 이어…

자사고가 없어지는 게 ‘옳다’면서도 당장 ‘내 아이’ 앞에 닥친 교육 현실에서는 선뜻 그 원칙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의 한 중학생 학부모 김민희씨(가명·52)는 “청소년기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서로 섞여서 어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므로 사회적으로 자사고 폐지가 옳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사고·특목고라는 게 존재하고 그게 대학 입시에 유리한 이상, 현실적으로 아이를 거기에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사고 전환만으로 고교 서열화가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6월27일 자사고 입시 설명회에서 학원 강사는 “목표로 하는 자사고가 없어지면 준비하던 우리 아이는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그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해도 초·중학교 시절 이어왔던 자사고 입시 준비는 결국 헛된 것이 아닙니다. 전국 단위 자사고나 특목고 입시는 대학 입시와 매우 유사합니다. 자사고 입시 준비 자체가 대학 입시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여론은 자사고나 외고를 폐지하자는 쪽이 높다. 지난 6월26일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506명을 대상으로 자사고와 외고 존폐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52.5%,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27.2%였다. ‘잘 모름’은 20.3%로 집계됐다. 학부모든(유지 27.7% 대 폐지 55.4%) 학부모가 아니든(유지 27.0% 대 폐지 51.5%) 폐지 의견이 높았다.

김찬휘 대성마이맥 입시센터장도 “자사고는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게 맞다고 보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본질적으로 학벌 사회가 해소되지 않고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이상, 대입 제도에 더 유리한 고등학교나 입학 실적이 더 좋은 고등학교로 쏠리는 현상은 유지된다. 지난 시절 ‘강남 8학군’이 그랬고 현재 특목고·자사고가 그렇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