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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방에 ‘남’지 않고 ‘살’고 있다”

지난 호(제511호)에서 지역 불균형이 청년 세대를 만났을 때의 악순환을 다루었다. 이번 호에서는 지역을 청년이 꿈꿀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7년 07월 13일 목요일 제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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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만난 ‘꿈꾸는’ 청년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원하는 일’이란 꼭 일자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문화생활을 누리며, 좋은 꿈을 꿀 기회의 폭을 지방 청년들은 갈망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좋다’의 기준은 주류 사회가 규정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정한 다양한 ‘좋은 삶’의 잣대를 품고도 ‘별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지역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토양이 부족하다고 느낀 청년들은 스스로 기반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형태는 다양하다. 함께 모여서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여행을 다니고, 지역 청년 잡지를 발행하거나,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도 한다. 노동 의제를 발굴하고, 주거 공동체를 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하거나, 민관 협의체 기구에 들어가 청년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은 답이 없다’며 낙담하고 비아냥대며 손을 놓고 있을 때 어떤 지방 청년들은 부지런히 밭을 일구고 있다.

■ 지방 청년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란

ⓒ시사IN 조남진
대전 지역 청년들이 만드는 비영리 청년 잡지 <보슈>는 지역의 청년 이슈를 다룬다.

대전의 대학생 서한나씨(26)는 글을 쓰고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좋았다. 비슷한 욕구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기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연히 학교 근처 카페에서 <보슈>(facebook.com/boshu)를 읽고 모집 공고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보슈>는 서씨와 같은 갈증을 느끼던 대전의 2030 청년들이 2014년 3월부터 발행해온 비영리 청년 잡지다. 현재 에디터로 활동 중인 서씨는 그때 본 <보슈>를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대전에는 이런 게 없었으니까요.”


지방 청년에게 ‘해보고 싶은 것에 한번 도전해볼 기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에 가깝다. 사회는 “취업하기 힘들어요” 이상의 지방 청년들 목소리엔 관심이 없다. <보슈> 구성원들은 말한다. “처음엔 많은 지방 청년들도 ‘다른’ 꿈을 꾼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정말 잘해보고 싶어서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그 꿈을 지속할 수 없게 되면서 지방 청년들도 하나둘 ‘취준생’이 되어 같은 꿈을 꾼다.”

다행히 동아줄을 잡은 <보슈> 구성원들은 다시 지역 청년들에게 동아줄을 내린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정도로 쉽게 묶여서 지워진 대전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분류해 <보슈>에서 담아내는 방법을 통해서다. 대전에 사는 성 소수자 청년, 창작 예술가 청년, 인디밴드 청년, 정당 활동 청년 등의 이야기가 이제껏 <보슈>에 실렸다. 이렇게 다른 꿈을 꾸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또 다른 대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단다.

ⓒ시사IN 최예린

부산 청년 라디오 팟캐스트 <부산의 달콤한 라디오>(이하 부달라, podbbang.com/ch/10869)도 목마른 청년이 스스로 판 우물이다. 라디오와 부산을 동시에 좋아하는 부산 청년들이 PD, 작가, DJ가 되어 매주 3회 팟캐스트로 정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부산의 대학 언론인을 만나는 ‘수정과 대학언론, 한잔해요!’, 부산 기반 힙합 뮤지션의 라이브와 음악 이야기를 듣는 ‘힙합 놀이터’, 부산 지역 청년 창업가를 만나는 ‘스타트인: 청년창업 게시판’ 등 부달라를 통해 송출되는 이야기 또한 ‘목마른’ 부산 청년들의 분투기다.


유명인이 나오지 않아도, 화려한 방송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부달라에는 사연과 출연 신청, 청취자 피드백이 이어진다. 한 회 다운로드 수가 1000회에 이른 적도 있다. 부달라에서 DJ로 활동하는 김서희씨(24)는 “방송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마땅한 통로가 없는 부산 청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라고 말했다. 김씨 스스로도 방송 미디어 쪽 진로를 꿈꿨지만 ‘부산에선 답이 없나’ 좌절하다가, 부달라 DJ를 통해 ‘여기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통로이자 돌파구로서, <보슈>나 <부달라> 같은 지역 청년 미디어가 기능하고 있다.

■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여서 성장한다”

대구 청년 최유리씨(31)의 20대는 ‘성취’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시절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의 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0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90곳은 서류 전형에서, 10곳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겨우 들어간 직장에선 주 6일, 야근, 저임금 근무를 견뎌야 했다.

ⓒ시사IN 이명익
최유리씨(가운데)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구청년유니온에서는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나는 정말 한심한 인간이구나’를 되뇌던 최씨는 한 선배의 소개로 <대구청년유니온>(facebook.com/TKYouth CommunityUnion)을 접했다. 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서울뿐 아니라 광주·대전·부산·경남 등 여러 지역에 지부가 있는데 대구청년유니온도 조합원 100여 명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씨는 그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조합에 가입하고 활동에 참여해 나가면서는 점차 확신했다. ‘내 잘못이 아니구나’.

동료들과 함께 대구 동성로에 거리 노동상담소를 열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찾아가 노동법을 알려주고, 대구 청년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 설문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냈다. 조그맣게 뜬 언론 기사를 보고 “이런 것도 상담해주나?”라며 문을 두드리는 청년 노동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주지 않던 프랜차이즈 업체에게서 “앞으로는 최저임금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최씨는 혼자서는 얻기 힘들었던 ‘성취감’을 느꼈다. 현재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최씨는 “아, 이렇게 하면 변화하는구나, 사회도 들어주는구나 싶어 뿌듯했다. 개인의 성취를 경험해볼 기회가 적은 지방 청년에게 공동체 활동이 특히 소중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북 안동의 <바름협동조합>(face book.com/BarumCoop)도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 청년들이 만든 지역 청년 단체이다. ‘(놀이+학습+노동+주거)×협동÷지역사회=청년 자립 공동체’라는 슬로건 아래 2015년 상주·문경·안동 등 경북 북부권에 사는 청년들이 뭉쳤다. 바름협동조합은 지역 청년 잡지 <링커>를 격월간으로 내고, 안동역 앞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동네 대학’ 같은 지역 청년 교육 프로그램을 꾸린다. 9월에는 지역 청년 축제 ‘흥해도 청년 망해도 청년(흥청망청)’을 열 예정이다.

■ “우리는 지방에 ‘남’지 않고 ‘살’고 있다”

지역 청년 공동체 활동이 마냥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바름협동조합 조합원 임경식씨(33)는 “지역 소도시를 벗어나려고 하거나 지금 시스템을 따라가기에만 바쁜 친구들 사이에서 연대하는 청년을 모으기가 녹록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성세대 사이에서도 ‘신기하다’며 동물원 구경하듯 둘러보는 어른들은 많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소도시에서든 청년은 찬밥 신세다. 어리고 말 잘 듣는 값싼 노동력 이상으로 잘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지역 청년 공동체가 필요하다. 바름협동조합의 임씨는 말했다. “혼자 지방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예술과 놀이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함께 모이니 뚝딱뚝딱 축제가 만들어졌다. 이런 활동은 결국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내가 이 지역에서 잘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강원도 강릉의 청년 단체 <청년나루> (facebook.com/UTHNARU)의 이혜림씨(29)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활동하면서 만나는 친구들은 결국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남아 있는 우리를 위해, 우리도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뭐라도 벌여보자고 뜻을 모았다.” 이씨를 비롯한 청년나루 회원들은 독서 모임, 인문학 강좌, 토론회, 역사·문화 기행 등을 연다. 언뜻 보면 한갓진 놀이 같은 이 활동들은 실상 삶의 풍요로움을 갈구하는 지방 청년들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스스로가 그곳에 사는 청년들을 서울 ‘못’ 간 잔류자로 바라보는 시선 아래에서 지방 청년들은 청년기에 큰 상처를 입고 시작한다. <제주청년협동조합> (facebook.com/jejucoop) 강귀웅 사무국장은 “제주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가지 않은 청년들은 자존감이 낮아지는 과정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씨를 비롯한 제주 청년들은 제주엔 청년에게 부족한 것이 많아서 채울 것도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곳에서 ‘제주 청년 문제 해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며 점차 자존감을 회복해갈 수 있었다. 제주 청년 아지트 ‘작당 연구소’를 차리고, 제주 청년의 삶을 여행해보는 청년 기행 프로그램 ‘리빙 트래블’을 운영하고, 영화·독서 등 청년 소모임을 꾸준히 꾸려가면서 제주청년협동조합은 제주 청년들을 ‘남은’ 자가 아니라 ‘사는’ 자들로 바꿔나가고 있다.

■ “여기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위) ⓒ시사IN 조남진(아래)
5월27일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청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위).
광주의 청소년·청년들이 부담 없이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쉼터 <동네줌인>(아래).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김태진씨(34)는 대기업에 다니다 돈 이외의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워 그만두고 커피 트럭을 몰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간 번 돈으로 30개국 세계 일주를 다니면서 사회의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여행을 마치고 광주에 돌아오니 여전히 예전의 자신처럼 취업과 돈에 목매어 사는 후배들이 가득했다. 이 친구들을 돕고 싶어서 김씨는 빚을 내 조선대 후문 근처에 <동네줌인>(facebook.com/dongnezoomin)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다. 커피 팔아서 돈을 버는 수익 공간은 아니다. 고민이 있는 광주의 청소년·청년들이 부담 없이 와서 쉬거나 자거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일종의 쉼터다. 영화 상영회, 독서 모임, 네트워크 파티 등 광주 지역 청년 모임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지방 청년들에게 청년 공간은 청년 활동의 인큐베이터다. 물리적인 ‘아지트’를 통해 흩어져 있던 청년 공동체가 더 큰 덩어리로 불어나기도 하고 관심 없던 청년들까지 지역 청년 활동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 대전 지역 청년 네트워크 <청년고리>(facebook.com/youthlink.kr)도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청년고리는 2011년 대전시 어은동에 문을 연 공유 공간 ‘벌집’을 통해 지역 내 크고 작은 청년 단체들이 모이면서 시작됐다. 벌집 대표이자 청년고리 대표인 이태호씨(29)는 “그간 잠깐 모였다 사라지는 지역 청년 단체를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벌집에 모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따로 놀지 말고 함께하자’는 공감대가 생겨 대전 지역 청년 네크워크인 청년고리로 키웠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디자인·영상·카페·서점·공방·교육·문화 기획 등을 함께하며 시너지가 큰 청년 단체들이 벌집 내외부에서 청년고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원주의 청년 플랫폼 공간 <청년마을>에서 ‘청년창의포럼:설래발’ 활동가들이 행사 알림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이 조금만 마음을 먹으면 청년들에게 이런 인큐베이팅의 기회를 쉽게 줄 수 있다. 강원도 원주시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청년마을> (blog.naver.com/wjj2017)은 원주문화재단에서 지원받은 청년 플랫폼 공간이다. 지역 극단의 연극 공연, 지역 청년 기획자·예술가 집담회, 페미니즘 독서 모임, ‘청년창의포럼:설래발’ 등 원주시 청년들의 이런저런 ‘작당’들이 이곳에서 모의되고 실행된다.


이런 경로를 통해 지역 청년 활동에 우연히 발을 들인 청년은 처음으로 ‘딴생각’을 품게 된다. 지역 축제 청년 기획단의 일원으로 원주 청년마을과 연을 맺은 원주 토박이 청년 노주비씨(24)는 한창 이력서를 쓰다가 지금 취업 준비를 ‘파업’한 상태이다. “부모님은 강원 지역 공공기관 취업을 바라셨고 나는 ‘무조건 서울로 가서 일해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요즘 들어 여기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대구시 남일동의 <대구청년센터>, 광주시 금남로의 <광주청년센터 the 숲>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단체에 위탁 운영하는 청년 공간이다. 공간 대관 서비스와 함께 교육·정책 제안·창업 지원·상담 프로그램 등을 청년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 <대구 청년위원회> <순천청년정책협의체> 등 청년들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청년 정책 제안·설계·실행자로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도 다양하게 굴러가고 있다. 지방 청년들이 스스로 일구고 씨 뿌린 밭이 이제 물과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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