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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 언니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사진)이 ‘천영초’라는 이름을 세상에 끄집어냈다. 그의 책 <영초 언니>는 민주화운동에 여성의 역사를 덧쓴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7년 07월 14일 금요일 제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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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성적이 뛰어나고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여학생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의 최고치는 부반장이었다. 학생운동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미담’이랍시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여학생이 데모하는 남학생에게 마실 물을 떠다 주었다더라, 피를 닦아주었다더라…. 여성은 어디까지나 조연에 불과했다. 여학생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면 성희롱이나 성차별 사례 역시 끝도 없이 나왔다.

자취방에서 눌은밥에 막걸리 한 사발 놓고 푸념을 늘어놓던 어느 밤이었다. 아무리 문제 제기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이제는 지쳤다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제안했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책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면 어때? 우리끼리!”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즉석에서 모임 이름이 지어졌다. ‘가라열.’ 여성 해방의 길로, 독재 타도의 길로, 노동 해방의 길로 이 자리에 모인 10명이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말하고, 떠들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모임이 1970년대 중반 어느 날, 서울 수유리에서 시작됐다.

ⓒ시사IN 조남진

가라열의 제안자는 천영초. 그리고 주축 멤버 중 한 사람이 바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다. 서 이사장은 지난 5월,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천영초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으로 불러냈다. 자전적 에세이 <영초 언니>(문학동네)를 통해서다. 살아오면서 서 이사장은 알게 모르게 그 이름에 많이 기대 살았다. 그이야말로 지금의 서명숙을 만든 사람이었다. 천영초는 서명숙에게 담배를 처음 소개한 ‘나쁜 언니’였고,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 이름을 완벽하게 잊었다. 아무도 그녀의 역사를 기록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독재 시절 ‘그때 여자들은 뭐 했어?’라는,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이지만 누군가는 그에 답할 대답 하나쯤 내놓고 싶었다.


“내 인생의 가장 오랜 시간을 기자로 살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취재해 쓰기도 했는데 가깝게 지냈던 언니에 대한 기록 하나 못 남긴다면 직무 유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 영초 언니뿐이겠어요.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즐비해요. 이 책을 시작으로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수많은 영초 언니들이 발견되면 좋겠어요.”

사실 <영초 언니>는 오래된 기획이다. 서 이사장이 쓴 <흡연 여성 잔혹사>(절판, 2004)의 첫 꼭지도, <식탐>(시사인북, 2012)의 여러 꼭지 중 한 부분에서도 천영초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토막토막 써오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내 제주올레 일을 시작하고 바빠지며 원고를 이어가지 못했다. 4년 전에는 매체 연재를 준비했다가 중간에 엎어야 했다. 박근혜 정권이 시작된 해였고,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대가 좋지 않다는 주변 어른들의 간곡한 만류 때문이었다. “나한테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제주올레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하니까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책에도 팔자가 있는 건지 다 때와 시간이 있나 봐요.”

서 이사장은 최순실씨에게 딱 한 가지만은 고맙게 생각한다. 최씨는 지난 1월25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방송 생중계를 보고 있던 서 이사장은 잠시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사람이 민주주의라고 했나? 순간 영초 언니의 37년 전 모습이 떠올랐어요. 지금이야말로 원고를 마무리할 때구나 결심했죠. 원고를 보완하면서 잃어버린 녹음기를 찾은 것처럼 당시가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무서울 정도였어요.”

ⓒ<고대학생운동사> 고대신문사 제공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서 이사장과 포승줄에 묶여 재판정으로 들어가던 영초 언니 역시 민주주의를 외쳤다. ‘민주주의 쟁취!’ ‘독재 타도!’ 그 두 마디를 채 외치기 전에 교도관에게 입이 틀어막혀 발버둥 치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기가 막히지만 최순실씨 같은 사람조차 민주주의를 누리라고 우리가 싸웠던 거기도 하죠. 그런데 이만큼 오기까지의 희생도 기억해야 공평한 거잖아요.”


등장인물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해 대부분 실명으로 썼다. 유시민·김문수·심재철 같은 ‘유명한’ 이름들을 비롯해 대학 시절 만나 결혼하고 이제는 헤어진 전남편까지 예외가 없다. 그 이름들을 검색하며 읽다보면 재미가 쏠쏠하고 또 이내 씁쓸해진다. 한두 줄이라도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이 나오는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의 이름 뒤에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영초 언니>에 등장하는 가라열 멤버 중 한 명인 이혜자씨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데모만 반복하던 당시, 이씨는 정보경찰의 아지트였던 대학 수위실 옆 목조건물을 무너뜨리는 시위를 주도한 학교의 ‘전설’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 진보 정치인의 아내라는 기록으로 존재한다. “혜자 언니가 그래요.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이미 충분히 상을 받았다’라고. 우리 시대 여자들은 다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 자기 공을 내세우거나 몫을 찾는 데 서툴러요.”

<영초 언니>의 인세는 치료비로 쓰인다

영초 언니는 영웅이어서 독재에 맞선 게 아니었다. 흔들리고, 주저하고, 머뭇거리면서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던 그 당시 운동권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걸까. 책은 벌써 7쇄를 찍었다. 서 이사장이 한 라디오 방송에 나가 책 내용을 소개한 아침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로 만들자는 제의도 오간다.

영초 언니는 현재 병마와 싸우고 있다. 2002년 큰 교통사고를 당해 두 눈이 멀고, 지능에도 손상이 왔다. 그 와중에도 또렷이 기억하는 건 당시 함께 불렀던 노래다. 그다지 대중적이지도 않은 기독교 계열 운동권 노래를 영초 언니는 막힘없이 3절까지 불렀다. 수십 년 전 시위 현장에서 한두 번이나 들어봤을까. 당시에는 잘 몰랐던 노래를 이제는 서 이사장도 외울 수 있게 됐다.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인터뷰 도중 노래를 부르던 서 이사장의 목소리가 멨다. <영초 언니>의 인세 절반은 천영초씨의 치료비로 쓰인다. 책과 별개로 7월25일까지 카카오스토리펀딩을 통해 모금되는 돈은 전액 천영초씨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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