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홍콩을 여행해봤다면 궁금했을 장면이 하나 있다. 홍콩 시내 중심가인 센트럴을 가득 메운 동남아 여성들의 도로 점거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지하 통로는 물론 그늘진 공원이나 인도까지, 족히 수천명은 될 듯한 동남아 여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다. 이 여성들의 국적은 필리핀, 직업은 육아와 가사도우미다. 이들은 왜 주말마다 거리에 나와 장사진을 치고 있는 걸까?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한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홍콩의 6억7000만원짜리 아파트’라는 사진이 돌아다녔다. 창문도 없이 비좁은 그 집의 넓이는 17.5㎡(약 5.3평)이다. 이게 실화냐고? 사실이다. 혹자는 홍콩의 임대주택 정책이 성공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홍콩의 임대주택은 양에서 한국을 압도할 뿐, 거주 자격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들어가기 힘든 구조라는 이야기다.

이러다보니 홍콩에서는 50㎡(약 15평) 정도의 주택에 거주한다면 중산층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3인 가족이 살기에도 비좁다고 느낄 크기다. 홍콩도 외벌이로는 가족의 부양이 어렵다보니 맞벌이가 일반적이다. 둘만 살 때야 문제가 적겠지만, 아이가 생기면 달라진다. 홍콩도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적고, 사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환타 제공홍콩에는 주말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한 게 바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한 육아다. 홍콩에는 40만명가량의 육아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 중 60%가 필리핀 국적자다. 필리핀 국적자들이 주로 선택된 건 아시아의 다른 저임금 육아 노동자와 달리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필리핀은 국가적으로 이런 육아 노동자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기도 하다.


홍콩은 방의 크기를 줄여 50㎡ 에도 방을 3개까지 뽑아낸다. 육아 노동자에게 방이 배급되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육아 노동자는 붙박이장 같은 곳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 극도로 열악하다.

그럼 이들은 왜 바깥에서 배회 중인가? 근로계약은 주 5일 또는 6일 근무로 되어 있다. 즉 이들도 휴일이 있다. 휴일까지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는 집주인과 가사 노동자들은 서로 불편하다. 많은 집주인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부당노동행위의 근거 자체를 없애기 위해 휴일에는 무조건 출타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거리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의 불편한 현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한국의 최저임금법과 비슷한 ‘최저허용 임금(Minimum Allowable Wage)’의 적용을 받는다. 2017년 현재 MAW는 월 4310홍콩달러 이상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 돈으로 63만원 정도다. 완탕면 한 그릇 먹으려 해도 최소 30홍콩달러(약 4370원)가 드는 홍콩에서 밥을 사먹기란 언감생심. 많은 노동자는 거리로 나와 편의점에서 파는 간편식 또는 집에서 조리한 요리를 싸들고 와 길에서 끼니를 때운다.

홍콩은 2011년 최저임금제를 실시했다. 놀라울 만큼 늦은 홍콩의 최저임금법 시행 초기에는 외국인 노동자만을 위한 법률이었는데, 이후 내국인에게도 확대 적용했다. 2017년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34.5홍콩달러다. 5000원쯤 되니, 한국의 6470원보다 적다. 반면 홍콩의 1인당 GDP는 약 4만4752달러로 2만9115달러인 한국보다 훨씬 많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순위권을 다투는 홍콩의 불편한 현실인 셈이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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