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에 작은 소라게를 바라보는 아주 커다란 눈이 나옵니다. 마치 거인의 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을 보면 웃음이 터집니다. 바로 한 소년이 돋보기로 아주 작은 소라게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소라게의 처지에서 돋보기를 보고 있는 소년의 눈을 확대해 보여줍니다. 보는 이의 시점만 바꿔도 세상은 새롭고 경이롭게 발견됩니다.

다음 장면에서 소년은 보통 게를 발견하고 납작 엎드려서 관찰합니다. 때마침 파도가 소년을 덮칩니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모래밭에 신기한 물건이 남아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사진기입니다.

소년은 사진기의 주인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소년은 사진기를 열고 필름을 꺼냅니다. 필름을 인화해보면 사진기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진관으로 달려가 필름을 맡기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일곱 개의 컷으로 그려집니다. 벤치에 앉았다가 엎드렸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앉았다가, 가게 안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사진을 손에 들고 나옵니다. 한 시간의 기다림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마침내 사진을 찾아서 들여다보는 소년의 눈이 마치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커집니다. 도대체 사진에는 무엇이 찍혀 있을까요? 첫 번째 사진에는 붉은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로봇 물고기입니다. 두 번째 사진에는 문어 가족들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한 소녀가 사진을 들고 찍은 사진입니다. 소년은 곧 ‘사진 속의 사진’에서 이상한 사실을 알아챕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는 또 어떤 소년이 사진을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돋보기를 눈에 대고 다시 사진 속의 사진 속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이번에는 다시 어떤 소녀가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소녀가 든 사진에는 다시 어떤 소년이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이제 돋보기로는 더 이상 사진 속의 사진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 상자〉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시공주니어 출판 예정

소년은 현미경에 사진을 고정시키고 사진 속의 사진을 계속 들여다봅니다. 과연 몇 사람이 사진을 들고 찍었을까요? 이 이상한 사진 놀이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시간 상자〉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사진 속의 사진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책을 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시간 상자〉에 온갖 상상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는 사진을 찍은 사람과 사진을 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를 추억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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