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태어난 케인스와 슘페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경제학자였지만 관심사는 크게 달랐다. 케인스는 실업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한 반면, 슘페터는 혁신을 통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연구했다. 대공황 시기의 대세는 역시 케인스여서 슘페터가 가르치던 하버드 대학 학생들은 그의 책은 읽지 않고 케인스를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케인스에게 반감이 많았던 것일까. 슘페터는 케인스의 경제학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케인스는 자식이 없어서 경제철학이 단기적’이라고 쓰기도 했다.

시대를 뛰어넘어 이들의 이름이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불러낸 이는 물론 케인스다. 새 정부는 케인스주의를 따라 재정지출을 매년 경상 GDP 성장률보다 높은 7%씩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더욱 진보적인 포스트케인스주의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전 정부들은 정부 부채 비율이 낮고 불경기인데도 재정정책에는 소극적이었다. 심각한 불평등이 성장에도 나쁘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의 선명한 케인스주의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창조적 파괴’ 및 ‘기업가의 역할’을 강조한 슘페터를 불러내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케인스주의 수요관리나 소득 주도 성장보다 ‘공급 측면’의 혁신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혁신의 중요성을 부정할 이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기업의 자유만 강조하거나 규제 완화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주의해야 한다. 아이폰 기술의 대부분이 미국 정부 지원 연구개발 활동에서 나왔듯이 혁신에서 ‘기업가적 국가’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신(新)슘페터주의자들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정부가 효과적인 국가적 혁신체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임금 상승과 분배의 개선이 수요를 증가시키고 투자를 자극해 생산성도 높일 수 있으니, 소득 주도 성장 자체가 혁신의 중요한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기득권을 혁파하고 지대 추구 대신 기업가의 혁신에 보상하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케인스를 불러낸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보수적인 거시경제학에 밀려 주류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케인스주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에서 귀환하고 있다. 2012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의 긴축정책에 문제가 많았다고 인정하고 재정 확장을 지지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조차 적극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비판도 존재한다. 보수파는 하이에크를 따라 재정 긴축과 규제 완화 등의 구조개혁을 주장하고, 일부 급진 좌파는 마르크스를 빌려 케인스주의가 이윤율과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연합뉴스14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2017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등을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자들은 경기부양 없는 구조개혁이 오히려 경기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연구들은 재정정책, 특히 공공투자가 경제성장에 효과적이며 높은 정부 부채 비율이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증거도 없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최근 생산성 상승이 정체하고 있는 것도 수요 부진으로 인한 투자의 부족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다. 이렇게 총수요와 총공급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실제로 심각한 불황이 장기적으로 공급 측면에도 영향을 미쳐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이력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과 공공부문 개혁 이뤄져야 성공 가능해

이러한 거시경제학의 대전환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도 케인스주의는 올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성공을 위해 부동산 가격의 안정과 공공부문의 개혁 등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경기변동과 장기적 성장의 핵심인 투자를 촉진하고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현대의 케인스주의에서는 간과되었지만, 케인스는 정부가 투자를 직접 계획하고 투자의 사회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정부가 구조조정과 산업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내고 신기술 부문을 포함해 생산적 투자를 촉진하는 것은 혁신을 추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20세기의 케인스와 슘페터는 이론적 지향은 다르지만 화폐와 투자에 대한 관점은 비슷했고, 두 사람 모두 당시의 낡은 경제학을 넘어서기 위해 힘썼다. 21세기 한국에는 케인스의 통찰을 실천하며 슘페터의 혜안도 잊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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