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장은 늘 눈물바다였다. 피는 이념보다 진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취재했다. 만남을 끝내고 나오는 이들의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산가족들의 눈가는 상봉 기간 내내 부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관광을 갔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통일냄비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물론 그사이에도 남북 관계가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연평해전이 잇달아 터졌고 그 충돌로 청춘들이 희생됐다. 그럼에도 남북 대화 채널은 끊기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퍼주기’라고 비판하지만, 남북 교류 협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북한은 ‘관리’가 되었다.

대북 정책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철학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다. 지도자의 철학이 빈곤하면, 주변 정세에 따라 오락가락 행보를 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 대표적이다. 취임사에서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김영삼 정부 시절 남북은 전쟁 직전까지 갔다. 그에 반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일관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충돌은 있었지만 지도자가 중심을 잡았기에 한결같은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 정책도 전임 정부와 정반대이긴 하지만 일관되기는 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으로 지원하겠다는 비즈니스 마인드 면에선 그렇다. 물론 실효성은 전혀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프로세스 정책은 그저 ‘좋은 말 대잔치’였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남북 관계 복원이다. 정권 초반부터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의 공격이 매섭다. 특히 최근 문정인 교수의 워싱턴 발언을 계기로 이들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보수 언론한테 ‘트러블 메이커’로 낙인찍힌 문정인 특보를 방미 직전 만났다. 문 특보는 남북 관계, 한·미 관계, 한·중 관계(한·일 관계)를 삼각형에 비유했다. 삼각형 맨 위 꼭짓점에 남북 관계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관계도 한·중 관계도 남북 관계를 중심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비유였다. 그래서 내게 그의 워싱턴 발언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특보와 대통령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이번 커버스토리에 담겼다.

베트남 전쟁 이후 힘(전쟁)으로 통일을 이룬 분단국가는 없다. 우리가 나아갈 길도 자명하다. 어찌됐든 북한을 ‘관리’하며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살피는 남문희 기자의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올린 이유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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