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도 오지 않았지만, 이제 마크롱은 어디에나 있다.” 프랑스 제15대 총선 이후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이런 기사를 실었다. 신생 여당 ‘라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M:전진하는 공화국·이하 앙마르슈)’의 압승을 단적으로 드러낸 문장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속한 앙마르슈는 308석을 얻었고, 여당과 연대한 민주운동당(MoDem)도 42석을 획득했다. 하원 총의석 577석의 과반을 차지한 수치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 내각에 속한 장관 6명 역시 모두 당선했다.

ⓒEPA6월1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북부 르투케 투표소에서 총선 1차 투표를 마친 뒤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서른아홉 살 대통령을 선출한 프랑스 국민들은 총선에서도 ‘새 정치’에 몰표를 주었다. 여당의 압승이 이례적인 건 아니다. 이전의 세 차례 총선에서 모두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화당·사회당 기존 정당이 대패하고 한 석도 없었던 신생 정당과 정치 신인들이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경찰특공대 RAID 출신인 장미셸 포베르그, 환경운동가 프랑수아 드루기, 디지털장관으로 선임된 창업가 무니르 마주비, 그리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까지 다양한 인물이 부르봉 궁에 입성했다. 사부아 지역에서 당선된 티파니 드구아는 24세로 가장 나이가 어리다.

 

기존 의원 가운데 25%만이 다시 당선되고, 나머지 75%(434석)는 새 인물로 채워졌다. 새로 뽑힌 의회의원은 평균 48세다. 전임 의회들의 평균 나이보다 다섯 살이나 젊어졌다. 60대 의원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여성 비율은 38.6%로, 14대 의회에 비해 약 12%포인트 높아졌다.


여당과 연대한 민주운동당의 선전도 이번 총선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당 대표인 프랑수아 바이루는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이 중도 표를 얻어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해 18.6%의 지지를 얻고 민주운동당을 창당했다. 새로운 중도 정당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 마크롱 정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영향력이 미미했다. 그간 단 한 석도 얻지 못했을 정도로 부진했던 이 정당은, 지난 2월 프랑수아 바이루가 마크롱과 손을 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의원 42명을 당선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프랑수아 바이루는 “우리가 아는 민주운동당의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시사IN 최예린

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은 우파 정당 공화당(레 레퓌블리캥)은 속내가 복잡하다. 112석을 차지해 제1야당이 되었지만 실상 여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은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속한 정당이다. 총선 직전 마크롱 대통령은 필리프 총리 외에도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 제랄드 다르마냉 재무장관 등 주요 부처 장관을 이 당에서 뽑았다. 당내 주요 인사를 빼앗기고 의석까지 줄어들면서 추가 이탈을 염려한 공화당 지도부는 ‘집안 단속’에 골몰하고 있다. 사무총장인 베르나르 아크와예는 “대립의 입장에 있는 정부에 신임을 주지 않는 것은 원칙적으로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분열된 기존 좌파 정당들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올랑드 정부 시절 집권 여당이었던 좌파 사회당은 이번 총선에서 겨우 30석을 얻어 소수 정당이 됐다. 좌파 대통령 후보였던 브누아 아몽 전 교육장관이 1차 투표에서부터 낙선하자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는 당 대표직을 그만두었다. 대선 후보였던 극좌파의 장뤼크 멜랑숑이 속한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당은 17석을 얻었다. 그중 한 명인 알렉시스 코르비에르는 “몇몇 유권자들은 ‘마크롱은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저에게 투표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코르비에르의 분석은 근거가 없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제5공화국 사상 최고 기권율을 기록했다. 2012년 총선보다 13%포인트 증가한 57.4%의 유권자들이 기권했다. 멜랑숑은 이런 결과를 두고 “시민사회의 파업과 같은 형태”라고 평가했다.

“양립할 수 있는 마크롱” 메일 보내 홍보

마크롱 대통령은 올 9월에 치를 상원 선거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원은 모두 348명으로 선거인단 15만명이 간접선거로 뽑는다. 선거인단은 지역 평의원, 시의원, 시장, 하원의원 등으로 구성된다. 상원의원 임기는 6년이며 3년에 한 번씩 절반을 새로 선출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자문을 하는 상원의원 프랑수아 파트리아는 기존 상원 의원들을 마크롱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 “양립할 수 있는 마크롱(Macron compatibles)”이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특정 당의 입장을 가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마크롱의 정치적 성향을 강조한 것이다. 상원 의원들을 대통령 지지자, 이른바 마크로니스트로 만들려는 의도다.

ⓒAP Photo6월18일 기자회견 중인 장뤼크 멜랑숑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대표.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이뤘지만 마크롱 정부 앞에 놓인 난제도 적지 않다. 노동 유연화에 대한 지속되는 반발과, 2015년 이후로 유지해온 국가 비상사태 지속 여부, 그리고 몇몇 장관들의 부정 의혹이 그것이다. 최근 연정 파트너인 민주운동당 소속 의원들이 유럽의회에서 보좌관을 채용하고 세비를 받았지만 이들이 실제로는 프랑스에서 당을 위해 근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6월20일 민주운동당 소속 실비 굴라르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공직 신뢰 회복과 국가 개혁을 위해”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민주운동당 대표인 프랑수아 바이루 사법장관도 결국 사퇴했다. 


앞서 6월19일에는 국토장관 리샤르 페랑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앙마르슈의 사무총장으로 활약하며 대선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그가 대표로 있었던 지역 건강보험기금이 부인의 건물을 임차하는 과정에서 페랑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혹이 불거지자 그에게 여당 원내대표 자리를 제안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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