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도진기 지음, 시공사 펴냄

“도덕을 왜 따라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도진기는 데뷔한 지(2010년) 얼마 안 되는 작가지만 이미 한국 장르문학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장르문학 불모지인 한국에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를 두 명이나 창출한 것이다. 도진기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활약하는 괴짜 변호사 고진과 백수 청년 진구다. 특히 진구는 천재로서 지적 유희엔 능하고 유머러스하지만 이기적이며 사이코패스 같은 기질이 농후한 인물이다. 〈모래바람〉은 진구라는 캐릭터에 대한 정밀 탐구다. 소년 시절, 실크로드 탐사에 아버지와 동행했다가 만난 여성을 통해 진구라는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드러낸다. 한국 장르문학에서 보기 힘들었던 캐릭터를 창출하고 그를 탐구하는 단계까지, 원숙해진 ‘도진기 월드’를 성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과 책방의 미래
북쿠오카 엮음, 권정애 옮김, 펄북스 펴냄

“‘새내기가 없는 업계 따윈 사라져버려!’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매년 가을 한 달 동안 ‘북쿠오카’라는 페스티벌이 열린다. 책(book)과 지역명을 조합해 만든 이름으로 지역 내 출판업계 사람들이 총출동한다. 눈에 띄는 행사는 역시 독자들이 직접 판매자로 참여하는 일종의 벼룩시장 ‘한 상자 헌 책방’이다. 가장 예쁘게 책을 진열한 사람, 책을 많이 판매한 사람 등을 꼽아 시상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해서 책과 관련된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대개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즐길 수 있을까.’ 독자가 책에서 멀어진 것에 업계의 책임은 없는지…. 지난 10년 책과 사람을 잇는 행사를 만들어왔던 북쿠오카 팀이 책과 책방의 미래를 놓고 장장 11시간에 걸친 끝장토론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었다.


동화독법
김민웅 지음, 이봄 펴냄

“〈토끼전〉의 토끼는 힘없는 민초가 아니라 출세하지 못한 초라한 서생이다.”

국민 가수 조용필은 가장 즐겨 듣는 음악이 민요라고 했다. 세계 각국의 민요는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음악이기 때문에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명인들이 동화를 읽는 이유도 비슷하다. 동화를 읽으며 유쾌하고 섬세하게 삶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인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도 그렇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는 동화 속 상징을 재해석하고 의미와 맥락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김 교수는 동화가 들려주는 상투적인 교훈 너머의 사유를 들여다보라고 주문한다. 〈미운 오리 새끼〉는 단순히 ‘자존감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는 자아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문구의 과학
와쿠이 요시유키·와쿠이 사다미 지음, 최혜리 옮김, 유유 펴냄

“문구는 과학기술의 박물관입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정수가 얽히고설켜 있지요.”

문구를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다. 가령 연필의 작동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흑연의 탄소층은 헐겁게 결합된 구조라 쉽게 미끄러진다. 필압이 작용하면 이 성질로 인해 탄소층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가며 검은 가루가 된다. 이것이 글자나 그림의 선을 이룬다.’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상세한 그림이 함께 나온다.
복사용지는 어떨까. 일반 책과 노트 종이와 다르다. ‘복사기나 프린터를 통과할 때 압력과 열, 높은 전압이 가해져서 특유의 약품이 첨가된다.’ 잉크가 번지는 걸 막는 사이즈제, 백색도와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재지용 전료, 지력 증강제 등의 약품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문구의 성분과 구조, 제조공정을 비롯해 작동 원리를 설명해준다. 일상의 발견이자 과학의 발견이다.


민주주의의 시간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내는 비범한 성취가 민주주의 최고의 매력.”

민주주의는 익숙하게 쓰는 말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온갖 정치적 언설에 민주주의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높을까.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해와 이해에 대해 진단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다른 민주주의론’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정부나 정당 대신 시민이 직접 민주주의를 운영해야 한다는 ‘직접 민주주의론’, 헌법을 개정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헌정 민주주의론’ 등을 비판한다. 민주주의의 본령과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는 그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개선해가려는 불완전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 언저리에 위치해 있는 제도이자 규범일 뿐, 어떤 완성된 목적지를 갖고 있는 체제가 아니다.”


촛불철학
황광우 지음, 풀빛 펴냄

“이번에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에 의지한다.”

저자는 과거 운동권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1980년대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펴낸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은 시대의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필독서였다. 현상수배범으로 찍혀 무려 12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2년 민주노동당 정치연수원장을 맡는 등 현실 정치에 나서기도 했지만 2007년 담양의 산 속에서 쓰러져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후 지난 시대의 역사와 철학을 반추하는 책을 주로 집필해왔다.
〈촛불철학〉은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한 철학도의 물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멀게는 1984년부터, 가깝게는 2017년 올해 썼던 글들을 주제에 맞게 다시 재구성했다. 저자의 미발표 글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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