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북한을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의 첫 사례다(〈시사IN〉 제509호 ‘똘이장군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사 참조). 물론 비슷한 시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민족의 화해와 전쟁의 초극을 이야기하는 조정래 장편소설 〈태백산맥〉이 히트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현시점에서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다. 애초에 박정희의 독자적 핵 보유 플랜이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는 껄끄러운 사실을 뛰어넘기 위해, 김진명은 일본이 다시 한반도를 침략하려 하고 동맹국인 미국마저 이를 방치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온다. 일본에 핵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북한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 기괴한 소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아마 “어떠한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라는 취임 일성으로 출범한 문민정부가 아니었다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을지 모른다. 한·미 동맹조차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소설의 인식과 정권의 방향이 맞았던 셈이다.

사랑으로 이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의 영화 〈쉬리〉(왼쪽)와 임무를 수행하고도 희생당하는 간첩을 보여준 〈간첩 리철진〉.

문민정부라고 해서 북한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던 이전 정부의 행태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1994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를 헬기를 동원해가며 강경 진압했고, 특히 1996년에는 정권 차원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자체를 와해시키겠다며 공안 정국을 이끌어갔다. 북한 핵 위기와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북한은 통일을 함께 논의할 대상에서 다시 악의 제국으로 그 지위가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취임사에서부터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출범한 정부 처지에서 예전만큼 북한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언설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남한의 기자가 북한의 총리 비서와 사랑에 빠져 분단의 장벽을 극복하려 들고, 남북한 정보 당국의 온건파들이 이를 이용해 화해 무드를 이끌어간다는 내용의 SBS 드라마 〈해빙〉(1995)이 방영될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 때문이었다. 게다가 1997년 청와대와 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정권 재창출을 이유로 북한 군부와 접촉해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벌여줄 것을 요청한 총풍 사건이 밝혀지면서, 정부가 더는 북한 이슈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워졌다.


〈해빙〉 이후 한국의 대중매체는 북한 지배세력 내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체제를 단순히 “혹부리 돼지 수령을 섬기는 늑대들”과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로 거칠게 이원화했던 〈똘이장군〉 시리즈의 세계관을 비로소 넘어선 셈이다. 불행히도 〈해빙〉은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MBC 〈제4공화국〉에 밀려 이 대담한 세계관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문제는 충성심을 강요하는 체제”라고 고발

이후 온건파와의 대화로 강경파를 제압하고 평화를 불러와야 한다는 발상이 대중의 너른 열광을 불러일으킨 첫 작품은 영화 〈쉬리〉(1999)였다. 특수임무를 띠고 남파된 북한 강경파의 특수요원 이방희(김윤진)가 한국의 정보요원 유중원(한석규)에게 접근했다가 그와 연인이 되었다.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 강경파의 부름 앞에 이방희는 눈물을 머금고 연인에게 총구를 겨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조차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사랑으로 이념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한국 관객들에겐 낯선 것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민족이라는 이름을 호명해 남북 화해를 상상했다면, 〈쉬리〉는 통일과 화해를 민족적 협력의 단위가 아니라 개인적 연애의 단위에서 상상한 것이었는데, 이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왼쪽)는 남북 군인 간 의리를 통해, 〈태극기 휘날리며〉는 가족주의를 통해 남북 간 비극의 역사를 곱씹는다.

강경파 정예 요원마저 개인 대 개인으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쉬리〉의 질문이 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같은 해 개봉한 〈간첩 리철진〉(1999)은 더 대담하고도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식량난 타개를 위해 한국에서 개발한 슈퍼 돼지의 유전자를 탈취하라는 임무를 받아 남파된 간첩 리철진(유오성)은 고정간첩의 딸 화이(박진희)와 감정적인 교류를 나눈다. 리철진은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슈퍼 돼지의 유전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장진은 이 과정에서 리철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그는 남파되기가 무섭게 사람의 선의를 믿었다가 4인조 택시강도에게 공작금과 무기를 도난당하고, 복권 당첨금을 타러 은행에 갔다가 얼결에 은행 강도를 때려잡으며,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변절한 동료를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고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한다.


철진에게 한껏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 장진은 해피엔딩으로 끝낼 것처럼 굴다가 마지막 순간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민족 화해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북에 슈퍼 돼지 유전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자, 북은 무력으로 유전자를 탈취하려 했던 시도를 감추기 위해 리철진을 제거한다. 장진은 머리에 뿔이 나고 엉덩이엔 악마의 꼬리가 달린 줄로만 알았던 간첩조차, 남북 간의 정세에 따라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는 희생양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남북 간의 화해 무드가 도는 순간조차, 누군가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 그 덕분에 관객은 임무를 수행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당할 수 있는 존재, 국가와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간첩’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남북 간의 해피엔딩을 상상할 만큼 힘이 센 판타지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북 간의 대화를 가로막고 공포를 불러온 책임이 다름 아닌 충성을 강요하는 체제에 있다고 고발하는 단계까지는 온 것이다.

이듬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몇 년 후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서 한국 영화는 가족주의를 통해 남북 간 비극의 역사를 곱씹고 이를 넘어서야 하지 않겠냐고 웅변했다. 같은 시기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이 열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해 매스게임을 관람하던 중 카드섹션으로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이 연출되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에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위성 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물론 북미 화해 무드까지 조성되던 시대적 흐름과 대중문화는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랬던 시절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천상륙작전〉(2016) 같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시절로 회귀하게 된 걸까?

기자명 이승한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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