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률 지음
창비 펴냄
한국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며 자랐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기까지 적지 않은 이들이 희생했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불평등한 잔혹함을 다룬다. 엘리트나 사회적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즉 여성과 도시 빈민, 주변부 사람들의 시점으로 현대사를 살폈다. 4·19 혁명, 삼청교육대, 6월항쟁처럼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건을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담은 것이다.

예를 들면 1951년 소정골 사람들, 1960년 마산 할머니, 1984년 박영두는 각각 한국전쟁, 4·19혁명,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의 증언자들이다. 이들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연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 한편이 아린다.

역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전하고자 이 책은 ‘사건사’의 형식을 빌렸다. 역사 속 ‘소수자’의 시점에서 인물들이 겪은 사건에 집중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방식이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소설인지, 역사책인지, 영화 시나리오인지 헷갈린다. 구조 속에서 피해를 받은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글쓴이는 학자이지만,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꽃피웠다. 텍스트보다 영상이 익숙한 유튜브 세대도 쉽게 빠져들 만한 교양서다.

2016년 광화문광장을 우리는 ‘함께 만든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촛불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성과도,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이 흘린 눈물의 덕분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수가 함께 쟁취한 역사는 헌재 재판관·특검·언론인·정치인 같은 엘리트의 서사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리된 주류 역사를 마르고 닳도록 외우도록 주입시키는 게 교실에서 이뤄지는 역사 수업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근원을 묻고, 2016년을 어떻게 기억할지 고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무척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된, 6월항쟁이 30주년을 맞은 이때만큼 ‘주변부 역사의 가치’를 되새기기 좋은 시기가 또 있을까.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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