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두 명이 교내 게시판 앞에 서 있다. 육상부 모집 포스터를 보고 있다.

“기여. 살 빼는 덴 유산소여. 이걸론 뺄 수 있어.”

문희(장햇살)가 말한다.

“성가시게 뭔 육상이여.”

용순(이수경)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때 포스터 하단을 가리키는 문희. ‘매일 방과 후 연습’이라고 쓰여 있다.

“헐, 대박. 집에 안 가고 뻐길 수 있어.”

그 한마디에 별안간 웃는 낯으로 바뀐 용순.

“기여. 하자. 콜.”

잔뜩 들뜬 아이들이 빠져나간 복도 위로 한 획 한 획 수줍게 써넣는 손글씨 제목, ‘용순’. 그 두 글자를 눈으로 따라 읽는 내 얼굴도 덩달아 웃는 낯으로 바뀐다.

영화 시작한 지 이제 막 5분이 지났다. 개울가에서 엄마랑 같이 자갈 줍던 꼬마 용순, 엄마가 떠난 뒤 아빠랑 둘이 살게 된 아이 용순, 둘이 살지만 혼자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녀 용순, 혼자 먹는 저녁의 적막함이 싫어서 술에 취해 잔소리하는 아빠가 싫어서 그렇게 점점 집에 가기 싫어진 고등학생 용순, 그러다 마침내 ‘집에 안 가고 뻐길’ 방법을 찾아내 신이 난 주인공 용순이로 커가는 5분이었다. 단박에 관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경쾌한 오프닝. 그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너 잘하잖아. 너 뭐에 막 매달려 갖고 열심히 해본 적 없지? 확신 갖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돼. 그래도 고갠 들고 뛰자.” 이렇게 말해준 육상부 지도교사 체육(박근록)을 용순이가 사랑하기 시작한다. “나한테 뭐 잘한다고 칭찬한 건 쌤이 처음이에요.” 그렇게 고백하던 밤, 용순이의 심장은 달리기할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고 그날 이후 선생님과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선생님께 아무래도 딴 여자가 생긴 것 같다. 정말인지 묻고 싶었다. 이젠 정말 내가 싫어진 건지, 나를 정말 사랑하긴 한 건지, 체육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게 있긴 한지, 내게 정말 소중한 건 대체 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 뒤를 밟는다. ‘뭐에 막 매달려 갖고 열심히 해본 적 없’던 용순이가 난생처음 온 힘 다해 매달려 열심히 해보는 미행이다. 선생님께 배운 달리기가 요긴하게 쓰인다. 열여덟 살, 유난히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을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린다. 우리 모두의 용순이가.

“그냥 땅이 막 흘러가는 걸 보는 게 좋아서”

자신의 단편영화 〈열여덟 여름〉을 고쳐 장편 데뷔작 〈용순〉으로 다시 만든 신준 감독은 “자극적인 것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라고 했다. “잔인하고 충격적인 설정들로 긴장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에 질려” 〈용순〉처럼 “마음 따뜻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그 시도가, 이 작품이 나는 모두 마음에 든다.

이런 한국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렇게 달리는 한국 영화가 그리웠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누군가를 해코지하려고 달리는 게 아니라, “(발밑으로) 그냥 땅이 막 흘러가는 걸 보는 게 좋아서” 고개 숙인 채 혼자 운동장을 달리는 청춘의 이야기라 참 반가웠다. “그래도 고갠 들고 뛰자”라며 세상 모든 열여덟 살을 다독이는 성장영화라 더 흐뭇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가끔 산들바람은 분다. 동어반복과 자기 복제로 과열된 한국 영화계도 가끔은 〈용순〉 같은 영화를 만든다. 산들산들 내 마음을 간지럽힌 영화 한 편. 목덜미의 땀을 식히는 바람처럼 그냥 적당해서 마냥 흐뭇해지는 이야기.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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