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범이었던 나는 교도소에서 두 달 넘게 미결수로 있다가, 소년원에 송치되어 1년6개월을 보냈다. 그곳의 대빵(힘센 놈)은 운동화가 많았다. 작업화는 기본이고 축구할 때 쓰는 운동화, 면회 갈 때 신는 운동화가 따로 있었고, 쪼다(힘없는 놈)를 복도 바닥에 눕혀놓고 얼굴을 짓밟는 새 운동화가 따로 있었다. 거기 밟히면 도로에 난 스키드 자국처럼 뺨에 신발 밑창 무늬가 선명하게 찍혔다. 독고다이(특공대)는 소년원 담장에 뚫어놓은 개구멍으로 술과 담배를 구해왔고, 술 취한 대빵은 불콰해진 낯으로 쪼다들에게 빠따를 쳤다. 나는 만년 쪼다였다.

ⓒ이지영 그림

〈고상만의 수사반장〉(삼인, 2017)을 보면 ‘이게 군대냐?’라는 비웃음을 빼물게 된다. 2014년 4월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을 보자. 그해 3월, 의무대에 배치된 윤 일병은 대답이 느리고 인상이 나쁘다는 이유로 선임병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 네 명은 대걸레 자루가 부러지도록 윤 일병을 구타하고, 잠을 재우지 않거나, 땅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그것을 먹게 했다. 윤 일병이 가혹행위로 탈진하자 가해자들은 비타민 수액을 놓아준다면서 링거병의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무려 3배나 빠르게 했고, 윤 일병이 회복하자 다시 폭행했다. 사건 당일 고참은 윤 일병의 입안 가득히 냉동만두를 강제로 넣은 후 “체하는 게 뭔지 알려주겠다”라며 주먹으로 때렸다. 소년원에서도 이러지는 않았다.

군대를 갈 것인가, 소년원을 갈 것인가. 내가 있었던 소년원에서 때리고 맞는 일은 부조리하지 않다. 시쳇말로 소년원생은 도둑놈이거나 깡패였다. 도둑놈이 뭘 잘했다고 소년원에서 인권을 찾고, 깡패 노릇 하던 것들이 소년원에 들어와 좀 맞는다고 한들 무슨 대수였겠는가. 그런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겠다고 모인 자칭 전우란 것들이 서로에게 하는 짓을 보라. 군대를 가느니 군소집이 면제되는 소년원에 가겠다. 적어도 소년원에서는 윤 일병처럼 폭행으로 사망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다. 2011년 3월, 사격장에서 소총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손 이병 사건을 보자. 그는 103㎏이나 되는 체구인 데다 200m 앞의 사격 표적지를 보지 못할 만큼 시력이 나빴다. 게다가 그는 현역 입영이 불가능한 수전증이 있었다. 병역 자원 부족으로 병역 면제 처분을 받을 수 없었던 그에게 부대 지휘관은 과체중을 70㎏으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혼자서 일반 사병의 세 배가 되는 9㎞ 구보를 했다. 이처럼 가혹한 신체 운동을 묵묵히 따른 끝에, 손 이병은 자대 배치 14일 만에 13㎏을 감량했고, 석 달 뒤에는 20㎏까지 체중을 줄였다. 하지만 나쁜 시력과 수전증은 그를 중대 안의 사격 성적 불량자로 만들었고, 고문관(왕따)을 탈출하는 방법은 자살이었다.

전투행위 외에 발생한 물적·인적 손실을 군대에서는 ‘비전투 손실’이라고 한다. 1948년 창군 이래 군인 3만9000여 명이 자살로 처리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전쟁터에서만 죽을 수 있는 것이 군인이라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한 해 평균 6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자살자 수는 정상이 아니다. 이토록 불합리한 비전투원 손실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주체는 국방부이지만, 국방부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

신병훈련소에 입영한 훈련병은 훈련소에서 나눠주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가족관계와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써내야 한다. 군 수사당국은 이때 적은 글을 악용한다. 군 입대 전 대학에 떨어졌거나 여자친구와 헤어진 경우, 아버지가 실직을 했다든지 부모가 이혼했을 경우, 하다못해 어려서 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쓰면 그것이 자살자의 자살 동기로 각색된다. 1987년 6월 훈련소에서 자살한 이이동 훈병은 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간 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재혼했던 것이 자살 원인으로 둔갑했다. 또 2015년 5월 공군 소속 정 상병이 선임병과 동기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병을 얻자, 부대의 병영생활 상담관은 정 상병이 세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제 아빠를 폭력 아빠로 만든 상담관도 구속 수사를 원합니다. 세 살 때를 기억하면 그건 천재입니다.” 대한민국 군대의 주적은 국방부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강요된 동성애

〈고상만의 수사반장〉
고상만 지음
삼인 펴냄
지은이는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군대가 수사하는 것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세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군사기밀을 빼고는 전부 민간 영역에 반드시 개방해야 합니다. 둘째, 군대 내에서 벌어진 가해 사건에 대해서는 군이 아닌 민간 합동으로 공정히 조사할 수 있는 외부 조사 기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평시 체제하에서는 민간 법정에서 군 사고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소년원 이야기다. 소년원의 대빵은 낮밤 가리지 않고 쪼다를 불러 비역을 하거나 구강성교를 시켰다. 그렇다면 대빵 중에서도 가장 그악스러운 대빵이었던 외근(페니스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과 무지(이름 그대로 무식했다)는 동성애자였던가? 낙동강 하류에서 뱃사공을 했다던 두 사촌 말이다. 소년원에서 비역질에 맛들린 대빵들은 입만 열면 그저 ‘여자 따먹은 얘기’였고, 퇴원해서 ‘여자 따먹을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대빵이 되었으니 마땅히 그 짓을 해야 ‘가오’가 선다고 믿는 마초였다. 소년원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그 알량한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들이 남자를 대상으로 욕정을 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뜰 리 없었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강요된 동성애 역시 이성애자 상급자의 전유물이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이성애자였던 청년이 군대에서 잠시 동안 기회주의적 동성애자가 되는 기제를 엿보려면, 권인숙의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2005)를 보면 된다.

군인은 입대와 함께 자신의 육체적 자율성을 송두리째 군대에 빼앗긴다. 하므로 군인이 휴가 때마다 집창촌을 찾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휴가병은 그곳에서 여자를 갖고 놀며 군대에 빼앗겼던 자율의 감각을 회복하는 한편, 무력했던 자기 존재를 되찾는다.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여성이 제물이 된 것이다. 이 억눌린 심리구조가 병영 안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발산될 때, 이성애자 상급자는 기회주의적 동성애자가 된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 조항인 군형법 제92조의 6을 폐지하면 “내 아들이 군대 가서 동성애자가 된다”라고 우려하는 부모들이 있다. 억압적인 병영이 문제지 그런 걱정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사회에서든 군대에서든, 이성애자에 의해서든 동성애자에 의해서든, 위계와 강제에 의한 성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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