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실속 없이 피로감만 주는 겉핥기식 인맥을 최대한 줄인다는 뜻이다. 각종 매체에서 경쟁하듯 ‘미니멀 라이프’를 예찬하는 마당에 ‘사람이 재산’이라며 억지로 인맥을 넓히는 건, 요즘 말로 전혀 ‘힙하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남들보다 나에게 더 투자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최적화된 새로운 삶의 형태가 아닐까.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
나카가와 마나부 지음, 김현화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나카가와 마나부가 쓴 만화 에세이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앞표지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캐릭터의 처연한 뒷모습은 어쩐지 앞서 설명한 삶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 또한 요즘 젊은이들의 특권 아니던가.

저자인 나카가와 마나부는 자신을 책의 주인공으로 앞세워 순도 100%의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고 나발이고, 그는 그냥 정말로 순수하게 사무치도록 외로웠던 것이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끝에 택한 만화가의 길. 꿈을 위해 도쿄로 갔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곁에는 단 한 명의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덕분에 뭐든지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건, 고독사하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다. 

그렇게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바뀔 무렵, 마나부는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점을 보는 일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SNS에서 동창들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 ‘퀸카’들은 종적을 감췄고, 영양가 없는 사람들만 꼬인다. 마나부는 답답한 SNS 세계를 벗어나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간다. 난이도가 낮은 모임부터 마니아들이 어울리는 모임까지. 어떤 모임이든 술의 힘을 빌리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가 생기는 건, 거의 진리나 다름없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친구를 사귀는 건 어떨까. 마나부는 교회에도 나가본다. 집으로 돌아오면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이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책의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한 마나부의 고군분투기가 펼쳐진다. 함께 숙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옆방 만화가 지망생 B씨가 그 대상이다. 어떻게든 친해지려는 필사적인 마나부와 달리 B씨는 친구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먹고사는 것도 힘들지만 외로운 건 더 견디기 힘든 마나부와,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생활에 치이는 B씨. 이들은 과연 만화라는 공통점으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맥 다이어트’가 뭔가요?

어찌 보면 한없이 지질한 이야기인데 책을 덮는 순간까지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과장 없는 담담한 화법과 낙서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림체도 한몫한다. 무엇보다 전혀 ‘힙하지’ 않은 마나부 본인의 캐릭터가 압권이다. 마나부는 마치 ‘인맥 다이어트’ 같은 사치스러운 말은 집어치우라고 말하는 듯하다. 친구를 찾아 사방팔방 헤매는 마나부가 이따금 애잔하고, 또 그렇게까지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싶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물론 꼭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다. 결국 마나부가 원했던 것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단 한 명의 친구였다.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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