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공중 산책로가 탄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 서울역 뒤쪽 고가도로가 공중 산책로로 진화했다. 개장 열흘 남짓 만에 100만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서울역 고가보다 8배 긴 청계천이 2005년 개통 열흘 만에 300만명이 방문했음을 감안하면 서울역 공중 산책로는 성공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 공간의 정식 명칭은 ‘서울로 7017(서울로)’이다. 1970년에 세워진 낡은 고가가 2017년에 공원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다. 고가 공원 진입로가 17개, 높이가 17m라는 뜻도 있다. 고가 공원의 길이는 1024m. 퇴계로 남대문시장 입구부터 만리동 손기정공원 초입까지 나 있다. 총사업비 597억원을 들여 2015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5월20일 문을 열었다.

개장 이후 서울로에 세 번 가봤다. 낮에, 저녁에, 그리고 밤에. 점심 전후한 낮 시간에는 인근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가 폭이 8~10m인데, 대형 화분이며 조형물로 인해 정작 걸을 공간은 좁아 보였다. 17m 높이의 공중 산책로는 서울스퀘어, 연세, 서울시티타워 등 대형 빌딩에 둘러싸여 딱히 조망이랄 것이 없었다. 서울로 한가운데에서 마주해야 하는 대형 마트의 ‘대형 로고’야말로 흉물이었다.

ⓒ시사IN 이명익‘서울로 7017’의 콘크리트 화분은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시설로 거듭난다. 주변 고층 건물들과 어우러져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해질녘 서울로는 통행로였다. 만리동이나 중림동에서 남대문시장 또는 명동으로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로가 생기기 전에 만리동에서 남대문시장 방향으로 걸어가려면 적어도 30~40분 동안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서울로로 가면 쉬엄쉬엄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저녁 무렵에는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울로를 이용하는 직장인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서울로를 산책하는 외국인 여행자도 흔했다. 서울로를 통하면 남산공원 진입도 훨씬 수월하다.


서울스퀘어 조명쇼가 장관

밤의 서울로는 아름다웠다. 박원순 서울시장 말마따나 밤에 가장 가볼 만했다. 걷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껴졌던 대형 화분이 푸른빛 조명시설로 변했다. 무엇보다 서울로를 에워싼 대형 빌딩의 풍경이 제법 볼만한 야경으로 바뀌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의 조명쇼가 압권이었다. 4층부터 23층까지 4만여 개의 LED가 펼쳐내는 조명쇼를, 높이 17m 공중공원에서 보는 것은 장관이었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예술가·뮤지션 등이 곳곳에 나타나 거리공연을 펼쳤다. 형형색색의 소형 분수도 빛을 발했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왜 이곳이 공중공원이자 산책로인지 납득했다.

개장 초부터 서울로는 논란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왜 이토록 콘크리트 느낌이 물씬 나는 길을 조성했느냐는 비판이다. 폐쇄된 철길을 공원화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처럼 곳곳에 녹색지대가 갖춰진 산책로를 기대한 시민들은 적잖이 실망했다. 서울시는 화분 645개에 나무 2만4000여 그루를 심었다고 발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로의 전체 분위기는 분명 삭막한 회색빛이다. 친환경 탄성 소재를 깔거나 나무데크라도 설치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47년간 대한민국 산업화 역사를 함께해온 서울역 고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재로서 콘크리트를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34~35쪽 인터뷰 기사 참조). 박 시장은 또 전시 기간이 끝나 철거된 ‘슈즈트리’ 논란에 대해서도 “생명을 다한 서울역 고가를 고쳐서 다시 쓴 것처럼, 쓸모를 다하면 버려지는 소비문화를 되짚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고가를 모태로 한 서울로는 태생부터 논란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2년 서울역 고가 정밀안전진단에서 잔존 수명이 2~3년밖에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는 고가 철거를 고려했지만 차량 통행이 끊기는 것에 대해 남대문시장 등 주변 상인의 반발이 극심했다. 대체도로 건설 여부 등을 놓고도 이해관계자들과 줄다리기를 펼친 끝에 대체도로 건설 없이 서울역 고가를 공원화하기로 결정했다. 차가 아닌 보행자를 위한 도심을 만들겠다는 정책의 결과였다. 지금도 서울로 주변에는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로 개장 이후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남대문시장 상인도 환영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단다.

그렇게 보면 서울로는 단순한 공중 산책로가 아니다. 노후한 도시를 어떻게 재생하느냐를 놓고 벌인 뜨거운 역사적 논쟁의 기록이다. 이 기록이 얼마나 아름답게 축적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서울로의 야경만큼이나 중요한 볼거리인지 모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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