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원과 ‘악연’이 깊다. 이명박 정부 시절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은 그는 정부 비판 기조의 클로징 멘트로 이름을 날렸다. 〈뉴스데스크〉에 붙던 광고가 서서히 떨어졌다. 기업에 연락하면 ‘저쪽에서 자꾸 어제 광고 잘 봤다고 매일 아침 전화가 온다’고 하소연했다. 국가정보원 경제과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그는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했다.

MBC에서 30년간 근무 후 여의도로 진출했다. 국회의원이 된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당 최고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맡아 〈국정원을 말한다〉라는 책을 냈다. 국정원을 감시하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4년째 몸담고 있다. 그사이 ‘국정원 사건’은 더 많아졌다. 그는 지난해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서 ‘국정원의 흑역사’를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

2017년 5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국정원 개혁 요구와 기대가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국정원 개혁 공약을 내세웠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금지와 대공수사권 이관이다. 국정원 문제의 핵심 요인을 진단한 다음 나온 해법이다. 이제 국정원 문제 감시자이자 개혁의 파트너로 나서야 할 여당 정보위원이 된 신경민 의원을 6월5일 만나 국정원 개혁에 대해 물었다. 그는 “국정원 개혁은 이제 운용이 아닌 제도화로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사IN 이명익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4년째 몸담고 있으면서 국정원의 문제점을 분석한 〈국정원을 말한다〉를 쓰기도 했다.


서훈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국정원의 과오를 쭉 읊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입 및 언론 공작을 시작으로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관제 데모 지시 의혹,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RCS 내국인 사찰 의혹 등을 언급했다. 리스트업해서 말하다 보니 새삼 많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을 넘어 아예 주도했다. 이를 신임 국정원장이 살피고 진단·처방하는 데서부터 국정원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9년간 국정원은 감사도 수사도 조사도 받지 않는 기관이 되었다. 검찰 수사 거부, 감사원 감사 거부, 국회 국정조사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서훈 원장의 일성은 국내정보관(IO) 폐지다.

2013년에도 비슷한 조치는 있었다. 대선 댓글 개입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국회가 특위를 꾸려 ‘IO의 국가기관 등 파견 및 상시 출입금지’안을 마련했다. 그때는 ‘출입 않겠다’였고, 이번에는 ‘아예 없애겠다’는 차이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간 조치다. 물론 폐지가 끝은 아니다. 보안업무를 한다며 국내 기관에 개입할 수 있다. 또 IO 조직과 인원을 적절하게 변모시킬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 문제가 남았다. 내부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두고 봐야 한다. 첫 행보가 분명히 한 단계 진전한 것은 맞지만, 이제 시작이다.

감찰실장 자리에는 검찰 출신이 앉았다.

진일보했지만, 외부 인사 임명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례가 있다. 외부 인사를 어떤 요건에서 일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RCS 사건이 터지고 담당 과장이 자살했다. 고강도 감찰을 받고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겼다. 국회에서 감찰 자료를 요구했다. 국정원은 감찰을 하면 무조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감찰을 안 했다는 거다. 직무유기로 욕먹을지언정 진실 은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감찰 안 했다고 우기면 확인할 방법도 없다.

자체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 외부에서 견제가 가능한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원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꿔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앤다는 게 대선 때 우리 당의 공약이었다. 국정원의 수사권은 없애고, 대공수사는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으로 이관한다는 계획이다.

대공수사권 이관은 자유한국당이 반대한다.

반발이 많다는 거 안다. 국정원이 제일 잘하는 분야라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정원의 전횡을 보면 회의가 든다. 대공수사권을 이용해서 간첩을 만들기까지 했다.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보자. 처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주장할 때 설마설마했다. ‘민변의 오버가 아닐까?’ 검증해보니, 검찰이 재판부에 낸 중국 공문서는 맞춤법조차 틀린 서류였다. 어쩌다 저리 허술한 자료를 증거로 냈을까? 국정원이 수사한 증거에 검찰이 손도 못 대서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국정원이 끝도 없이 망가졌다. 제도적으로 국정원의 권한을 나눠 견제받게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 개혁은 시도됐다.

그때는 제도를 손대기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바꾸려고 했다. 외부 인사를 국정원장·기조실장에 임명하는 등의 개혁을 시도했다. 대통령의 의지로 국내 정보 보고도 받지 않았다. 국정원도 발맞춰 과거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다 원대 복귀했다. 제도를 크게 손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 쇄신도 정권이 끝나니 다시 원위치되었다.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다. 당시를 교훈 삼아 제도를 바꾸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동시에 인사와 운용도 잘 해야 한다. 실패의 경험을 따져서 되풀이하지 않는 게 이번 정권의 책무다. 무조건 우리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왜 실패했는지부터 짚고 시작하자.

의회의 견제도 중요하다.

국정원 견제는 청와대와 국회가 해야 한다. 청와대는 운용과 인적 쇄신, 국회는 제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국회 정보위 기능 강화도 중요하다. 현재는 비공개가 남발된다. 정보위가 열리면 보좌진도 못 들어간다. 전문위원도 없다. 의원만 참석한다. 그렇다고 엄청난 비공개 정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듣고 있으면 왜 이걸 비공개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조건 공개하자는 게 아니다. 비공개해야 할 정보가 분명 있다. 그러므로 공개와 비공개를 적절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는 비밀주의가 너무 심해서 보고의 신뢰도까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은 예산 집행·결산에서도 특혜를 누린다.

일반 부처와 달리, 국정원은 사업별 예산이 아닌 총액만 제출하고 첨부 서류도 면제된다. 정보위 심사만으로 예결위 심사를 대신한다. 감사원 회계감사도 국정원장의 ‘셀프 회계감사’로 대체한다. 현재 국정원이 정보위 심사를 받지 않는 기재부 예비비를 매년 3000억원 정도 쓰는데, 이를 전면 금지하거나 국회 정보위 또는 예결위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 본연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주장인가.

국내 정치 개입을 일삼던 국정원이 정작 김정일 사망은 몰랐다. 정보위가 열릴 때마다 국정원이 하는 보고는 ‘북한은 곧 망한다. 정치적으로 굉장한 어려움에 처했다. 경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 혼돈과 불안이 크다’이다. 현실은 다르다. 안 무너졌다. 제발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적 사고)’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북 전략을 세운다. 한동안 국정원 별명은 ‘걱정원’이었다. 국정원을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신뢰받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나누는 개혁이 필요하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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