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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처방해드립니다

한 의사가 23년간 250명이 넘는 사람을 ‘일부러’ 죽였다. 그는 살인 동기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남기지 않은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15일 목요일 제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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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거의 돈과 치정 때문에 벌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살인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보는 게 금전 및 치정관계이다. 만일 동기가 이 두 가지 이외인 경우라면 범인을 잡기 어려워진다. ‘묻지마 살인’ 같은 것 말이다.

가정의(GP·General Practitioner, 영국의 경우 인근의 가정의학과에 환자로 등록해서 주치의를 지정받은 후 일차적·통상적 진료를 받도록 되어 있다)였던 해럴드 시프먼의 살인 행각은 그 동기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묻지마 살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오랜 세월 동안 발각되지 않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시프먼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23년 동안 25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범이다. 피해자들은 모두 그의 환자였다.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죽음의 의사(Dr Death)’였다.

ⓒEXPRESS
‘죽음의 의사’로 불리는 해럴드 시프먼(맨 오른쪽)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시프먼은 노동계급의 빈한한 가정 출신으로 어렵게 의사가 되었다. 그가 의사가 된 것은 열일곱 살 때 유독 시프먼을 편애하던 어머니가 폐암에 걸려 죽는 모습을 무력하게 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의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제 성분의 약물에 중독된 나머지 서류를 위조해 약물을 빼돌리다가 정직당했다. 하지만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지는 않았고 이런 사실이 공개되지도 않았으므로 계속 가정의로서 인생을 살아갔다.

시프먼을 주치의로 두었던 환자들의 사망률은 인근 다른 주치의의 경우에 비해 열 배 가까이 높았다. 지역의 장의사들로부터 이와 같은 의혹을 접수한 경찰은 시프먼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 이후 시프먼은 환자 세 명을 더 죽인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2월 드디어 그의 살인 행각이 발각된다.   

캐서린 그런디 사건은 시프먼이 저지른 마지막 살인이자 그의 살인 중 유일하게 동기를 설명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 살인은 돈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환자였던 그런디 부인은 비록 81세로 고령이었지만 특별한 지병이 없고 독립적이고 활동적이었다. 죽은 남편은 전직 시장이었다. 시프먼은 주치의로서 이 부유한 노인의 약간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심스러운 점이 없고, 굳이 부검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고인의 유언장에는 화장해달라는 쪽 칸에 표시가 되어 있었으나 딸은 어머니를 매장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후 유언장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었다. 변호사로서 그간 어머니의 법적인 서류들을 처리해오던 딸도 알지 못하는 내용의 유언장이었다. 놀랍게도 모든 재산이 고인의 주치의에게 상속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딸은 어머니의 유언장이 위조되었다고 의심했다. 만일 유언장이 위조되었다면 가장 유력한 범인은 최대 수혜자인 주치의일 것이었다. 또한 그렇다면 고인의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이 파헤쳐졌다. 사체를 부검하자 치사량이 넘는 헤로인이 고인의 근육에서 발견되었다. 피해자에게 약물이 투여된 시간대가 시프먼이 방문한 시간대와 일치했다. 범인은 역시 시프먼이었다.

그런디 부인 사건을 계기로 그의 환자로 최근에 사망한 사체들이 발굴되었다. 사인은 모두 헤로인 과다 투여로 밝혀졌다. 그는 모두 열다섯 건의 살인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받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이 더 폭로되었지만 불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추가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사의 ‘선한 동기’에 대한 믿음 깨져


그가 살인을 시작한 것은 1975년으로 알려져 있다. 첫 대상은 70대 초반의 여자 환자였다. 시프먼의 희생자들은 대개는 나이가 많지만 건강 상태가 양호한 여성이었다. 인도주의적 동정 때문에 죽음을 도운 거라고 할 수도 없다. 살인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사하는 것이다. 그가 여자 노인을 주로 선택한 점이나 약물을 사용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즉 청소년 시절 시프먼은 어머니가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 급격히 고통에서 해방되던 모습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신(god)’ 노릇을 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의사란 따지고 보면 환자를 살릴 수도 있고 동시에 죽이는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 아니던가. 아니면 그는 그저 사람을 죽이고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을 수도 있다. 혹자는 시프먼이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축내기만 하는 노인들을 혐오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추정에 불과하다.

ⓒThe Mirror
시프먼은 주로 여성 노인을 살해 대상으로 선택했다.

시프먼 스스로 살인의 동기에 대한 아무런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유를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채 복역한 지 5년 만인 2004년 감방에서 침대 시트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58세 생일 전날 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음의 동기는 명백히 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 60세 이전에 사망하지 않으면 그의 아내 프라임로즈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의 액수는 매우 삭감되도록 되어 있었다. 열일곱에 세 살 연상의 시프먼과 결혼한 아내 프라임로즈는 끝까지 남편의 무죄를 믿었다. 그가 자살한 덕에 아내는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연금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고 영국의 의료 관행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가 자기가 담당하는 환자들을 이렇게나 많이 오랫동안 죽인 것이다. 의사의 잘못된 행위를 조기에 탐지하고 통제하는 의료 관리 시스템의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고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망증명서 발급을 주치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행, 중독성 약물을 취급하는 허술한 방식, 의사 감독 단체가 감시보다는 권익 보호에 중점을 두고 운영된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무엇보다도 시프먼 사건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은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관계인 듯하다. 특히 의사의 ‘선한 동기’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의사의 선한 동기를 환자 측에서 믿을 것이라는 믿음. 사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하여 요청에 따라 일정량 이상의 진정제나 진통제를 제공하는 일은 암암리에 행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어떤 의사도 ‘닥터 데스’로 불리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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