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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잡은 그 법 아베가 되살린다

일본 특별고등경찰이 윤동주 시인에게 적용한 법은 치안유지법이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공모죄 법안’ 개정안은 이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것으로 ‘일본판 테러방지법’이라 불린다.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15일 목요일 제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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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7월14일 도시샤 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다니던 조선인 학생이 교토의 시모가모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는 조선인 친구에게 징병과 민족문화에 대한 압박 등 일본 정책을 비판하며 조선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하라고 권유했다. 또한 조선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는가 하면 민족 문학에 대한 생각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가 받은 혐의는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이것은 당시 일본 내무성 경찰국 보안과가 발행하던 관보 <특고월보(特高月報)> 1944년 1월20일자에 게재된 기사 ‘재(在)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 책동 개요’의 내용이다. 이 ‘조직 사건’의 주인공은 당시 스물여섯 살 윤동주 시인이다.

ⓒEPA
아베 일본 총리는 ‘특정비밀보호법’ ‘전쟁법안’에 이어 ‘공모죄 법안’을 개정하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시절, 일본의 정치경찰인 특고(특별고등경찰)가 윤동주 시인에게 치안유지법을 적용했다. 이 법은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한국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들을 학살한 관동대학살이 벌어진 지 2년 뒤인 1925년 4월22일, “국체(國體:일본 왕실)와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28년 6월29일에는 “(운동 관련) 결사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행위”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일본 패망 두 달 뒤인 1945년 10월4일 연합군총사령부는 ‘정치적·공민적·종교적 자유 제한의 제거에 관한 사령부 각서’에 따라 이 법을 폐지했다. 


폐지 70여 년 만에 아베 신조 정권이 치안유지법 부활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판 테러방지법’인 공모죄 법안(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공모죄 법안은 이미 세 차례나 발의되었다가 통과되지 못한 전력이 있다. 그런 공모죄 법안이 의회 통과를 목전에 둔 단계까지 오는 데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 것이 바로 아베 신조 총리의 의지다. 공모죄 법안이 통과되면 통제와 감시가 용이해진다. 이 정보 통제와 국민 감시 체제의 확립은 아베가 추진하는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의 필수 조건이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를 노골적으로 추진해왔다. 먼저 2013년 12월6일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의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해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법은 이미 비밀 유출 행위나 비밀 관리 침해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서 공모죄 법안을 위한 포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15년 5월14일, 아베 정권은 전쟁법안(안보법제)을 국회에 상정했다. 반대운동이 일어나 13만명이 국회를 포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일본공산당이 선두에 서고 나머지 야당이 연대하는 이른바 ‘야당공투(野黨共鬪)’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2015년 9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한 안보법제가 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일본 자위대는 일본과 동맹·우방 관계에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과 동일하다고 간주하고 대응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전쟁법안 강행에 이어 치안 입법의 강화도 이뤄졌다. 마약 범죄, 총기 범죄, 조직적 살인, 집단 밀항 등 4대 범죄 수사로 한정되어 있던 경찰의 감청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감청법(통신방수법)이 개악되었다. 타인의 죄에 대한 진술로 자신의 형량을 협상하는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를 허용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통과되었다. 감청법 개악은 국민 감시 수단의 확대를, 유죄협상제도 도입은 밀고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노린 조치라는 비판이 따랐다. 이 모든 과정의 마무리 단계에서 등장한 게 바로 공모죄 법안이다. 실제로 일본의 민주 진보 진영은 “공모죄는 도청과 유죄협상제도 등의 수사 기법과 연결되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해치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것이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무고한 백성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

ⓒ시사IN 신선영
2015년 9월19일,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전쟁법안(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일본 대학생단체 회원들이 국회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베 정권의 이와 같은 폭주에 반대하는 일본의 민주 진보 진영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기시감 때문이다. 1925년 당시 사법대신(지금의 법무장관)이던 오가와 헤이키치는 치안유지법에 대해 “무고한 백성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연구·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90여 년 뒤인, 올해 1월2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아베 역시 공모죄 법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다.”


‘공모죄는 일반인과 무관하다’는 아베의 주장을 뒤집는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2007년 일본공산당은 자위대 내부 문서를 입수해 자위대의 정보활동을 담당하는 정보보전대의 활동을 국회에서 폭로했다. 일본 최대 진보 매체인 <신문 아카하타>의 1면에도 관련 기사가 실렸다. 폭로 내용에 따르면 자위대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던 시민들의 집회나 시위 등을 ‘반(反)자위대 활동’으로 규정했다. 자위대의 정보보전대가 집회에 나선 시민들을 촬영하고 녹음했다. 또 참여자들의 이름과 직업, 소속 단체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정보보전대는 연금 개악 반대운동, 소비세 증세 반대운동, 심지어 사진전 활동까지 감시했다. 그 대상에는 일반 시민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의원, 신문기자, 학자, 영화감독 등이 포함되었다. 폭로 이후 시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2월 센다이 고등재판소는 “자위대가 공표되지 않은 이름이나 직장 정보를 수집한 것은 사생활 침해로서 위법이다”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송을 청구한 이에게 10만 엔(약 107만원)을 배상하도록 국가에 명령했다. 일본 정부도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정부 차원의 사죄나 반성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5월18일 조지프 카나타치 유엔 인권이사회 사생활보호권 특별보고관은 공모죄 법안에 대해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해 인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특별보고관이 유엔(전체)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직접 설명할 기회도 없이 공개서한의 형태로 발표된 일방적인 내용은 부적절하다”라며 반발했다. 아베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적조차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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