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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대통령 섬기는 70대 장관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내각의 특징은 세 가지다. ‘온건 우파 중심, 양성평등, 전문가 발탁.’ 여성 장관이 절반을 차지하고 정치 경력이 전무한 장관도 5명이나 된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15일 목요일 제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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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첫 내각을 구성했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의 인사는 신중했다. 이번 발표는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가늠할 시금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는 6월11일(1차 투표)과 6월18일(결선투표) 총선을 치른다(프랑스는 총선에서도 대선과 마찬가지로 결선투표제가 운용된다. 1차 투표에서 12.5% 이상을 득표할 경우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확정하게 된다). 내각에 대한 여론은 신생 여당 ‘앙마르슈(전진)’의 생환 여부와도 직결된다. 지난해 4월 창당한 앙마르슈는 현재 원내 의석이 한 석도 없다.

장고 끝에 구성된 새 내각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온건 우파 중심, 양성평등, 전문가 발탁이다. 대통령 성향으로 미뤄보아 우파 중심 내각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장관들보다 이틀 앞선 총리 지명부터 ‘우향우’ 성향은 드러났다. 에두아르 필리프 신임 총리는 우파 성향 야당인 공화당 출신이다. 그는 공산주의자의 증손자이자 항만 노동자의 손자라는 좌파적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화당의 전신 대중운동연합(UMP)의 대표를 지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규제 완화 정책 등에 대통령과 공감한다. 46세인 필리프 총리는 ‘마크롱의 우파 단짝’이라 불린다.

ⓒAFP PHOTO
5월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새로 임명한 각료들과 엘리제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경제부와 예산부 장관 인선은 새 정부의 시장 친화 행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신임 경제장관인 브뤼노 르메르는 우파 중심의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농업장관을 지냈다. 사회보장세(CSG) 인하와 주민세 폐지 반대 등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하지만 대체로 시장주의적 성향은 자명하다. 예산장관에는 제랄드 다르마냉을 앉혔다. 다르마냉은 필리프 총리와 마찬가지로 공화당 출신이다. 르메르와 다르마냉은 대통령의 보수적 경제정책을 실행할 주무 부처 장관들로 꼽힌다.


‘양성평등’ 인사도 주목할 만하다. 새로 임명된 장관 18명은 정확히 남성 9명, 여성 9명이다. 함께 발표된 정무차관 4명 역시 남녀 성비가 같다. 내무부·외무부·경제부·법무부·환경부·국토부·농업부·재무부·교육부 장관과, 국회소통·디지털 정무차관에 남성이 임명됐다. 국방부·노동부·고등교육부·보건부·교통부·문화부·유럽부·스포츠부·해외영토부 장관과, 양성평등·장애인 정무차관에는 여성을 등용했다. 프랑스 내에서도 이례적인 인선이다.

특히 주목할 여성 장관으로 실비 굴라르 국방장관을 꼽을 수 있다. 여성 국방장관은 자크 시라크 정부의 미셸 알리오마리 이후 두 번째다. 굴라르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과 같은 파리정치대학 및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다. 연방주의자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그녀는 유럽과의 연대 강화를 주창해온 마크롱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다. 그녀가 당면한 과제는 국방 예산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5년까지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의 2%로 늘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를 2018년부터 적용할지 결정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노동장관으로 임명된 뮈리엘 페니코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아래 일방적으로 통과된 노동법의 개정을 맡게 될 중요한 직책이다. 페니코 장관은 1980년대 메스 시 노동 담당 부서에서 청년 일자리를 맡았고, 1991년에는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 밑에서 일했다. 이후 그녀는 프랑스 식품회사인 다농 사에서 인사 담당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사회당 계열 프랑스 노동조합(FO:노동자의 힘) 대표 장클로드 마이는 이번 인선을 두고 “노사 대화가 잘되기로 유명한 다농 사의 인사 담당자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5월25일 마크롱 대통령은 ‘법 개정에 앞선 사회적 합의’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노사 대표를 엘리제궁에 초청해 일곱 차례 회담을 한 바 있다. 대화를 중심으로 노동문제를 해결해온 뮈리엘 페니코의 능력을 신임하고 있는 셈이다.

마크롱 내각의 세 번째 특징은 시민사회 인사들의 발탁이다. 정치권 밖에서 선택된 전문가 출신들을 등용한 것이다. 후보 시절부터 마크롱 대통령은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강조한 바 있다. 새로 입각한 인사 가운데 5명은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 이력도 다채롭다. 펜싱 선수 출신 로라 플레셀이 스포츠장관이 되었다. 보건장관 아녜스 뷔쟁은 의사였다. 문화장관 프랑수아즈 니센은 출판사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녹색운동가 환경장관 임명이 신의 한 수

ⓒAFP PHOTO
5월28일 마크롱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에두아르 필리프 공화당 의원(오른쪽)이 같은 당 소속의 브뤼노 르메르 재무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세계적인 녹색운동가 니콜라 윌로를 등용한 것은 특히 신의 한 수로 꼽혔다. 윌로는 프랑스 방송 채널 TF1에서 <우수아이아>라는 환경 프로그램을 제작한 인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간 시라크·사르코지·올랑드 정권이 꾸준히 구애해왔으나 그는 매번 거절했다. 윌로 장관은 노트르담데랑드 공항 건설 논란과 페세나임 원자력발전소 폐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환경 우선적 태도를 보이는 좌파를 껴안을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변화를 위한 연합과 혁신의 정부”라고 이번 내각을 자평했다. 그러나 새 내각에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페미니스트 단체인 레제프롱테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남녀 동수 내각이 ‘겉으로만 실현된 양성평등’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를 제외한 주요 장관은 모두 남성을 임명했다는 이유다.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권 신장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내각이지만 완전한 새로움은 아니다”라는 평가도 나왔다. 70대 기성 정치인들이 주요 장관으로 포진했기 때문이다. 제라르 콜롱브 국무장관,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 자크 메자르 농업장관은 모두 1947년생이다. 정부가 인사 제1원칙으로 꼽았던 도덕성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왔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피용 의원의 가족 비리를 폭로한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가 국토장관 리샤르 페랑의 부동산 부정거래 의혹을 보도했다.

이번 인사에 가장 격렬히 반발하는 쪽은 야당인 공화당이다. 자당 출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와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을 정부에 ‘빼앗겼다’. 프랑수아 바루앵 공화당 총선준비위원장은 필리프 총리와 르메르 경제장관에 대해 “그들은 전리품이 아니라 인질이다. 스스로 대항해 싸워온 프로젝트의 실행자가 됐다. 이번 내각은 4주짜리 임시정부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총선 여론조사에서 집권 여당과 공화당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총선 이후 하원의원 과반이 신임하지 않으면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 기존 정치권에 기반이 없는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정권 초부터 뼈아픈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대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표를 얻은 야당들은 저마다 칼을 갈고 있다. 대선에 버금가는 ‘빅뱅’을 앞둔 프랑스 정치권은 지금 폭풍 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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