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는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및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문건 작성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던 박관천 전 경정이었다. 박 전 경정은 이 사건으로 구속되어 500여 일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의 예언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전 경정을 만나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시사IN 이명익

문재인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방침을 밝혔는데 협조하고 있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 조만간 연락이 올 것으로 알고 협조할 생각이다. 그 사건은 명쾌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대목이 많다.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 오점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고, 오점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반성의 시각에서 이번에 문 대통령과 조국 수석이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고 이해한다.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검찰은 두 가지 방향으로 수사했다. 하나는 문건 내용이 맞느냐였고, 다른 하나는 그 문건이 어떻게 유출되었나였다. 두 가지 수사 모두 석연치 않게 끝났다. 검찰은 문건 내용에 대해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허위라고 결론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건 내용은 지라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하자 검찰은 그 프레임대로 수사를 했다. 나는 문건 유출로만 재판을 받았을 뿐이다.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는 미결인 사건이다. 물론 문건 유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문건 내용, 문건 유출 둘 다 명확하게 의혹을 해소하려면 재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수사 당시 검찰은 문건 유출 경로를 어떻게 조사했나?

검찰은 내가 보관해둔 문건을 나와 일면식도 없는 한일 전 경위가 꺼내서 복사했고 최경락 전 경위가 언론에 유출했다고 발표했다. 즉, 검찰은 ‘박관천 반출→한일 복사→최경락 유포’로 결론을 냈다. 문건을 왜 복사하고 왜 유포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어떤 행위든 동기가 있다. 검찰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쓸 필요가 있어서 한 전 경위나 최 전 경위가 복사했다고 얘기하더라. 과연 문건을 유출한 동기로 그 이유가 적합하다고 보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경락 전 경위가 생을 달리했는데?

최 전 경위는 그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면 어떤 사회적 파장이 일어날지 모를 리 없다. 그가 왜 문건을 언론에 줬는지 그 동기가 검찰 수사에서 빠져 있다.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는 법정 형량이 2년 이하의 징역이다. 여러 건 누설했다고 해도 최고형이 3년이다. 최고형 3년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의 이유가 될까? 최 전 경위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의문점이 많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최 전 경위를 회유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 전 경위와 최 전 경위를 회유했다. 한일 전 경위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그해 12월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문건을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며 협조를 요구했다”라고 양심선언을 했다.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두 경찰관에게 회유한 사람이 누군지도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았다. 재조사가 이뤄지면 이런 부분도 명쾌하게 소명될 것으로 본다.

수사 당시 검찰에서도 그 문건들을 모두 알고 있었나?

지금도 수사받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15년 1월2일 검찰이 나를 구치소에서 불러 정윤회 문건의 첫 버전부터 마지막 버전까지 7~8개를 보여주었다.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 작성한 뒤 폐기한 문건들이었다. 검사에게 “그 문건 어디서 구했느냐”라고 물었더니, “청와대가 협조해줬다”라고 검사가 답했다. 청와대에서도 안 주려는 걸 참 어렵게 구했다면서 “문건들을 왜 이렇게 자주 수정했느냐”라고 검사가 내게 물었다. 보통 문서 작성할 때 두세 번 수정하는데 정윤회 문건은 여러 번 수정을 거쳤다. 이 문서가 역린을 다룬 내용이라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많이 고쳤다고 답변했다.

폐기한 문건을 검찰이 어떻게 입수했나?

청와대에 복합출력기가 있다. 문건을 수정하기 위해 복합기로 출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문건이 PDF 파일로 저장된다고 한다. 민정수석실이 거기에서 뽑아 검찰에 건네준 것이다.

정윤회씨는 그 문건이 허위라고 주장했는데?

문건 내용을 보자. 소위 십상시에 미운털이 박힌 고위 공직자 3명을 쫓아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 김덕중 국세청장,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그 문건이 2014년 1월6일 작성됐다. 2014년 그 문건에 쓰인 2명이 실제로 축출되었다. 내게 문건 작성을 지시한 김기춘 전 실장만 건재했다. 일각에서는 나를 예언자라 하는데 점쟁이도 아니고 예언 능력도 없다. 직무상 조사한 내용을 사실대로 보고해야 해서 그대로 썼을 뿐이다.

ⓒ시사IN 이명익2014년 12월10일 정윤회씨가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고소인 자격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정윤회씨는 문고리 3인방도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최근 뭐라 했는가? 내가 문건에 적시한 그 중식당에서 장시호 본인이 가명으로 예약해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을 수차례 만나서 의논했다고 실토했다. 장시호씨가 없는 말을 지어내 정윤회씨를 비방할 이유가 있나. 강남 일식당에서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가 만났다는 내 보고서도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 한 언론에서 강남의 일식당 주인을 인터뷰했는데, 그 주인이 “여기서 문고리 3인방이 윤회 오빠와 자주 만났고 모 언론사 사장도 윤회 오빠와 자주 만나는 단골손님이었다”라고 증언했다.

검찰은 통화내역 조회 결과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박영수 특검과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주변에 얼마나 많은 대포폰(차명 전화)이 등장했는가. 검찰은 대포폰 조사를 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밀수하는 사람이 여객선 타고 하겠나? 수사의 기초 상식이다. 정윤회씨가 검찰의 옛 발표에 기대어 자꾸 변명으로 일관하면 국민한테 용서받지 못한다.

최근 “황제 수사의 원조는 우병우가 아니라 정윤회”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정윤회씨와 대질을 했다. 조사 전에 속으로 권력 실세니 검찰에서도 어느 정도 대접해주겠지 생각했다. 생각보다 심했다. 정윤회씨가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는데 다리를 꼬고 앉아서 팔짱을 끼고 “그것 말이야” 하는 식으로 훈계조로 진술하더라. 정씨는 혼자 말하다 일어나서 커피를 타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진술을 했다. 정윤회씨가 나갈 때는 검찰 수사관들이 에워싸고 공손히 차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과연 대한민국에 검찰청에서 그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나도 경찰 수사 오래 해봐서 알지만 경찰서에 들어와서도 그렇게 수사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정윤회씨 쪽은 당시 검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해명하는데?

신변보호 요청이란 제보자 또는 피해자가 위협당할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또 검찰청 수사관들이 아니라 방호원들이 신변보호를 해야 한다. 정윤회씨는 피해자나 제보자가 아니다. 국민들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청에서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에 얼마나 분노했나. 우병우가 민정수석이고 같은 검찰 식구라서 그렇게 대우받은 것도 잘못인데, 정윤회씨는 민간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병우 전 수석보다 더한 자세로 검찰을 대하더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정윤회 문건을 모른다고 주장했는데.

김 전 실장과 대질 조사라도 받고 싶다. 정윤회 문건은 2013년 말 ‘김기춘 실장 경질설’이 보도되어 김 전 실장이 진원지를 알아보라 해서 조사가 시작됐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공직기강실 회의를 소집해 “큰일 났다. 할배(김기춘 실장)가 빨리 알아보라고 난리다”라고 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시키지도 않은 보고서를 조응천 비서관이 가져왔다고 하더라. 삼자대면 하자. 나는 김 전 실장이 나하고 조응천 비서관 앞에서 그런 말할 수 있다면 다 인정하겠다. 고령이고 모시던 분한테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유진룡 전 장관이 청문회에 안 나오는 이유로 한 말이 이해가 되더라(유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격이 여물지 못해 김 전 실장을 보면 따귀나 뒤통수를 때리는 등 사고를 일으킬 수 있어서 참석을 자제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2016년 12월10일 고 최경락 경위의 형인 최낙기씨(맨 왼쪽)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윤회 문건 작성 당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도 파악했나?


내가 1년여 동안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을 관리하면서 정윤회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실세인지, 최순실씨가 어떻게 국정과 인사에 개입하는지 조사해 알게 됐다. 정윤회·최순실 이 두 사람이 하는 말이 대통령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종합적으로 조사해 판단했다. 당연히 문건 앞부분에는 최순실에 관한 조사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지만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함께 고심했다. 최순실 대목은 ‘역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서 내용을 순화하느라 6~7회가량 수정했다. 수정할 때마다 출력해서 확인하고 수정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정윤회 문건은 7~8가지 버전이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정유라와 최순실, 박근혜 전 대통령 관계도 조사했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친인척이나 측근 동향 파악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부분이다. 조사는 다 한다.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둘러싼 비리 혐의도 조사했는가?

솔직히 3인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나에게 “우리는 대통령의 옷에 불과하다. 하지만 3인방은 피부다. 피부가 잘못되면 수술해야 한다. 그러니 더 유심히 보아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3인방의 문제점에 대해 보고서를 올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문고리 3인방의 전횡을 막기 위해 다른 노력은 안 했나?

정윤회 문건 사건 전에 한 번은 3인방 문제로 정윤회씨를 만났다.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과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언을 했다. “3명을 다 믿지는 마라. 그중에 제일 사심 없이 일처리할 사람은 정호성 비서관으로 보인다. 나머지 한 명은 무분별한 행동도 많이 하고 낄 데 안 낄 데 안 가리는 것 같다. 또 한 명은 사심이 많은 거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공교롭게 정호성만 구속되었고, 안봉근과 이재만은 행방이 묘연하다.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비서관들이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사라졌다. 국회 청문회 출석요구서도 일부러 받지 않고 도망을 다녔다. 대통령이 구속 수감될 때도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둘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을 모셨다는데 인간적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3인방에 대한 말을 듣고 정윤회씨가 뭐라고 하던가.

고개만 끄덕끄덕하더라. 내 충고에 공감하는 의사 표시로 알았다.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지 않았나?

기회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14년 1월 내가 조응천 전 비서관과 십상시 보고서를 올렸을 때다. 한 번이라도 이런 게 왜 나왔느냐고 경위를 물어봤더라면 좀 더 상세한 보고서가 올라가서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에 공개된 뒤 검찰 조사가 이뤄졌을 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문건 내용은 지라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는 프레임을 짜지 않았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내가 검찰에서 권력 순위 발언을 한 것은 구속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충언이었다. 검찰에 그 이야기를 꺼내면 100% 민정수석에게 보고된다는 것을 잘 알고 한 작심 발언이었다. 그 말 이후 언론에 보도되었고 나는 혹독한 고난만 겪었다. 아내가 접견을 와서 그러더라. “오지랖도 넓다. 구속되어 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왜 그런 말을 해서 언론에 나느냐”라고 원망하더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질주하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대한민국 검찰이 가진 수사권, 기소권, 독점적인 영장청구권을 누가 줬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듯 국민이 준 것이다. 그러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머슴이 마음대로 하면 국민이 권한을 회수한다. 바로 그 시점에 와 있다. 검찰의 독점적 권한에 대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요구다. 물론 경찰도 수사권을 넘겨받았을 때 국민 입장에서 어떻게 쓸지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경찰도 겸허하게 준비하고,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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