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약속
에드윈 캐머런 지음, 김지혜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헌법은 그 자체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낙인찍히고, 고립되고, 욕먹는 집단에 속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저자는 “온 마음을 다해 동성애자이고 싶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성애자가 이성애자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듯, 성 소수자 역시 성 소수자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커밍아웃한 게이이자 HIV 감염인인 저자를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저자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쳐 2008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조건’이 인간을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또 양심적이면서도 유능한 판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한다. 그 여정과 남은 숙제를 담았다.


플러쉬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지은현 옮김, 꾸리에 펴냄

“그녀는 여자였고 그는 개였다.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되어, 그렇게 엄청나게 분리되어,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개와 함께 살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안다. 이 순수한 동물이 얼마나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사람 곁에 있는 어떤 개들은 질투와 슬픔과 애정을 표현해 동거인을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어린 시절부터 항상 개와 함께 살았다. 〈플러쉬〉는 울프와 함께한 반려견들이 만들어낸 반쯤은 자전적이고 반쯤은 허구적인 ‘개’의 전기소설이다. 스페인 사냥개의 혈통을 타고난 레드 코커스패니얼 플러쉬의 ‘견생’은 사랑과 철학과 온갖 냄새로 다채롭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플러쉬의 주인 엘리자베스 바렛 아가씨다. 영국 미트포드의 병약한 아가씨는 플러쉬와 만난 이후 점차 독립적이고 활기찬 여성으로 변화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조르바는 나에게 열정적인 생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인간은 우주에 홀로 던져졌다. 고로 방황은 운명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인간이 돼야 하나’ 인생은 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위대한 문학작품 역시 끊임없이 답안을 제출했다. 그 가운데 ‘조르바’는 문학이 창조해낸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조르바는 도전을 즐기고, 역경에 맞서며, 욕망에 충실하고, 슬픔에 담담해한다.
조르바는 자유로움과 상상력, 깊은 사유와 흥겨운 춤으로 어우러진 역동적인 인간이다. 그래서 일상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에게 그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다가온다. 소설은 지적인 광산 소유주와 공사 반장 사이의 기이한 우정을 소개하면서 정신과 물질 사이의 영원한 대결을 탐구한다. 카잔차키스 타계 60주년을 맞아 〈그리스인 조르바〉가 다시 나왔다.  


자본주의의 슈퍼스타들
브누아 시마 지음, 뱅상 코 그림, 허보미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친애하는 ‘자본가’들은 인간적인 동시에 다양한 모순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시대별 대표인 자본가들을 통해 재미있게 소화할 수 있는 기회다. 자본주의 250년사를 풍미한 전 세계 자본가 39인의 삶과 업적, 유산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며 그들의 다양한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 1차 산업혁명 당시 방적기 발명가이자 기업인이었던 리처드 아크라이트로부터, 20세기 초에 노동 과정 및 임금 부문의 혁신으로 경제사를 바꾼 헨리 포드를 거쳐, IT 혁명의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문기자 출신인 저자는 자본가 39인에 대해 한편으로는 탁월함에 감탄하면서도 신랄하고 심술궂은 비판을 잊지 않는다. 만화까지 곁들여 풍미를 더한다. 저자가 자본가들에게 붙인 별명도 매우 기발해서 기억할 가치가 있다.


바람커피;로드
이담 지음, 지와수 펴냄

“카페를 하면 손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커피를 들고 손님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커피 트럭 ‘풍만이’를 탔던 것이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리 비만은 아니었지만 풍만이는 잘 달리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도 80㎞를 겨우 냈다. 오늘 안으로 광주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없었다. 도로 위의 사우나를 만끽하다 휴게소에서 그가 내린 커피를 마셨다. 뜨겁고 시원한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제주 강정마을 평화도서관에 보낼 책을 모으기 위해 모인 광주 문화예술인들도 그 커피 맛을 볼 수 있었다.
다음 해 지리산에서 풍만이를 다시 만났을 때도 맛은 여전했다. 지방에 내려갈 때면 페이스북에서 그와 풍만이가 어디 있는지 찾곤 했다. 커피를 핑계로 여행하며 커피를 구실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커피 향처럼 구수하게 펼쳐져 있다.


젓가락
Q. 에드워드 왕 지음, 김병순 옮김, 따비 펴냄

“내가 만난 일본인, 베트남인, 한국인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젓가락을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각의 제국〉 〈라멘의 사회생활〉 〈대한민국 치킨전〉 등을 펴낸 출판사 따비에서 음식 문화 책을 또 한 권 냈다. 이번엔 젓가락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음식 도구의 사회사’를 다룬다. ‘동아시아 5000년 음식 문화를 집어올린 도구’라는 책의 부제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인 저자는 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음식을 뜨겁게 끓여서 먹는 걸 선호한 북중국 지역의 음식 문화가 젓가락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전쟁에서 젓가락이 완승을 거두게 된 데에는 국수와 만두 같은 음식이 중국에서 유행하면서부터일 거라고 추론한다. 한국·중국·일본에서 그 쓰임새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대목도 흥미롭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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