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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 예술이 있다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16일 금요일 제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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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주홍빛 털모자를 쓴 두더지가 조그만 눈덩이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살짝 굽힌 무릎 위에 양손을 얌전히 모으고 있는 게 아주 다소곳해 보인다. 제목이 ‘두더지의 소원’이니, 이 두더지는 눈덩이에게 소원을 빌고 있는 걸까? 하필 눈덩이에게? 무슨 소원인데?

이런 질문과 함께 들어간 책 속에서 두더지는 혼자 집에 가는 길이다. 눈덩이는 두더지가 뭉친 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길에 그냥 놓여 있던 거다. 두더지는 “안녕?” 하면서 눈덩이에게 조근조근 말을 걸고, 눈덩이는 조용히 들어준다. 두더지와 눈덩이 외에는 아무 배경도 없는 그림으로 미루어보자면 이 이야기는 아주 호젓하고 고요하게 계속 흘러갈 것 같다. 낯선 곳에 방금 이사 와서 외로운 것 이상으로 정에 굶주려 보이는 두더지, 친구가 없다면서도 친구를 사귀려고 애쓰기보다는 무생물에게 말 거는 게 더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하기야 땅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땅 위로, 그것도 한겨울 숲에 올라와 있으니 얼마나 모든 게 황량하겠는가. 전혀 다른 환경에 뚝 떨어진 아이의 심정이 이 한겨울 두더지에게서 애잔하게 비친다.

눈덩이를 굴려가며 조근조근 말을 건네는 두더지는 이제 자기보다 커다래진 눈을 친구 삼기로 작정한다. 함께 버스를 타자는 것이다. 이런 친구 찾기 이야기는 대체로 정해진 절차를 밟는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진짜 친구가 나타난다. 토끼나 고슴도치나 바위에게 친구를 하자고 청하던 거북에게는 거북 친구가, 종이 강아지와 놀던 아이에게는 진짜 강아지가 생기는 식이다. 눈덩이는 버스에 탈 수 없다는 말에 그걸 곰으로 빚어내는 두더지. 너무 커서 안 된다는 말에는 딱 제 크기로 줄이고 모자도 씌워준 끝에 함께 버스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두더지는 눈 곰을 포기하지 않는다

눈 곰은 진짜 곰으로 변할까? 아니, 두더지가 깜빡 졸고 나니 곰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면 그 가엾은 꼴을 본 승객 중 하나가 그 아이와 친구가 될까? 여전히 자리에 남아 눈을 감고 있는 뱀이? 보통 독자의 독법으로는 이런 결말이 기대된다. 하지만 두더지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떠나간 눈 곰을 놓지 않는다. 버스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기다리고, 잠들지 못하면서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 곰이 두더지를 찾아온다! 앞면지에서는 하나만 찍혔던 눈밭의 발자국이 뒷면지에서는 두 개로 늘어난다. 선명하게 찍힌 이 발자국들이 곰의 실체를 확인해준다.


동족인 두더지라든지, 자신을 이해하는 다른 동물 이를테면 뱀이라든지, 진짜 곰을 친구로 사귀는 게 아니라 사라진 눈 곰을 기어이 되살려내는 두더지에게서 피그말리온이 비친다. 환상을 포기하고 현실에서 타협점을 찾는 대신 자신의 창조물에 굳건하게 매달려 결국 생명을 불어넣고 마는 예술가.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아무리 사소한 결핍, 부적응, 외로움, 갈망이 찾아온 것 같아도 현실로 윽박지르며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 거기서 자신의 예술을 찾게 해야 한다.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서 기존의 생명과 함께 살리는 일이 예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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