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함정
게르트 기거렌처 외 지음, 박병화 옮김, 율리시즈 펴냄


“‘매우 중요하다’는 발표를 접한다면, 순수한 우연의 결과일 확률이 아주 높다.”

‘모유에서 300가지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몰타보다 덴마크의 성폭력이 더 심각하다.’ ‘외국인이 많은 도시일수록 범죄율이 높다.’
독일 언론이 실제로 보도한 내용들이다. 심리학자·통계학자· 경제학자인 저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를 ‘왜곡’이라고 쓴다. 모유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의 모든 물질은 독성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그 함유량이다. 선진국 여성들은 후진국 여성보다 ‘성폭력’의 범위를 넓게 볼 가능성이 크다. 그 응답률 또한 국가에 따라 다르다. 외국인이 많은 도시는 내국인도 많다. 대도시일수록 범죄자는 몰리기 마련이다.
가짜 통계를 검증하기 위해 동원된 수식을 전부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용된 사례들만 골라 읽어도, 과학을 참칭하는 숫자놀음에 면역력을 꽤 갖추게 될 것이다.


작은 자본론
야니스 바루파키스 지음, 정재윤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경제학자는 거짓말을 한다. 유능할수록 더더욱.”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가계는 소득 중 일부를 은행에 저축하고, 기업은 그 돈을 대출받아 사업을 꾸린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다시 가계소득과 재투자로 흘러들어가는 선순환으로 국민경제를 성장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말한다. 현실의 가계들은 저축은커녕 빚만 잔뜩 지고 있으며, 기업들은 사내에 잔뜩 쌓아둔 돈 덕분에 대출받을 필요가 없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결코 선순환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는 이런 환상을 유포하며 자본의 시녀 노릇을 하고, 국가는 자본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시행한다. 그 결과가 바로 극도로 불평등해진 경제와 주기적인 경기침체다. 과격하지만 논리정연하다. 영화와 소설까지 동원해서 딱딱한 경제 현상을 풀어내는 ‘말발’도 대단하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소담 옮김, 코난북스 펴냄

“초경계 학문을 하려면 사회학자라는 간판이 굉장히 편리합니다.”

원제는 〈후루이치 군, 사회학을 다시 공부하세요〉다. 제목 전면에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가끔 직함 때문에 비판받는다. ‘박사학위도 없는 애송이’가 사회학자라니. 설명하기 편해 쓰는 것뿐이지만, 어느 날 그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학이 무엇일까. 
일본 사회학자 12명에게 사회학이 무엇인지 물었다. 배경 지식이 많지 않아도 읽는 데 무리가 없다. 사회학자들의 대화법도 흥미롭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젠더 연구자 우에노 지즈코, 패러사이트 싱글(부모 집에 얹혀사는 비혼자 세대) 같은 사회현상을 짚어내는 야마다 마사히로, 동일본 대지진 문제에 몰두해온 오구마 에이지 등을 통해 현재의 일본을 만나볼 수 있다.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김영사 펴냄

“이카로스 날개를 단 인류는 태양을 향해 신의 영역으로 한발 더 내딛고 싶어 한다.”

인류가 근대에서 역사를 진전시킨 원동력은 인본주의였다. 근대를 관통한 모든 사상은 ‘인간이 가장 고귀하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의 자장 속에 있다. 이를 통해 인류는 동물과 자연을 종속시켰고 고대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역병·전쟁을 퇴치했다. 지금 인류는 이를 넘어 불멸, 행복, 신성의 영역으로 다가서고 있다.
‘호모 데우스(Homo Deus)’,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한다. 위대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본주의는 역설적으로 ‘초인간’을 향한 불가역적 추동력을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이보그나 비유기체의 ‘탈인간’으로 진화하고, 그때 탈인간의 사상은 ‘데이터교’가 될 것이다. 인류 과거를 탐구한 〈호모 사피엔스〉로 전 세계를 강타한 저자가 이번에는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고 나섰다.

지도로 보는 세계
파스칼 보니파스 외 지음, 강현주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100장의 지도로 100개의 문제를 살핀다. 손바닥 손금 보듯 국제 정세를 읽는다.”

프랑스는 지도 강국이었다. 동해(한국해) 표기가 일본해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프랑스 라 페루즈의 항해지도(1797년)였다. 전 세계 지도의 교본이었던 이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되면서 이후 동해 표기가 거의 사라졌다.
이 책은 지도 강국 프랑스의 저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100가지 통계자료를 세계지도에 표기해 세계의 문제를 볼 수 있게 한 ‘인문지리’의 걸작이다.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서 어떤 경로로 얼마나 심각하게 퍼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외교장관을 역임한 위베르 베드린과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 소장이 함께 정리하고, 지도 전문가인 장피에르 마니에르가 지도 위에 구현했다. ‘각국 관점에서 본 세상’에 대한민국 편도 있다.

영초 언니
서명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무도 그녀의 역사를 기록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낯선 이름을 검색해봤다. 천영초를 오타로 인식하고 ‘천연초’를 검색 결과로 내놓았다. 책 속에는 여러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에 대한 기록을 검색하기가 훨씬 힘들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남성의 서사로만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영초 언니’를 떠올린 건 최순실 때문이었다. 최순실이 수의를 입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모습은 40여 년 세월을 건너 천영초라는 이름을 불러왔다.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의미는 너무나 달랐다. 책은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줬던” 천영초의 잊힌 이름을 복원해나간다. 영초 언니의 이야기이자, ‘명숙 언니’의 삶이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응원을 건넨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