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의 일이다. 어느 겨울 아침,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바싹 야윈 승려 한 명이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내 아버지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승려는 집 안으로 옮겨졌고 따뜻한 음식 덕분에 곧 기력을 회복했다. 아버지는 “병원에라도 가보세요”라며 얼마간의 돈까지 건넸다. 그런데 승려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은 감사하지만 자신은 이미 목숨이 다해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담담히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답례라며 찢어지고 해진 보따리에서 족자를 꺼냈다. 항아리와 고승이 그려져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에게는 항아리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나에게만 항아리와 항아리 밖으로 목을 내밀고 있는 고승이 보였다. 내가 그 사실을 얘기했더니 승려는 아버지만 따로 불러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족자 속 고승이 보였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이제 나도 안심하고 죽을 수 있겠다. 이 족자는 세상의 모든 병으로부터 당신의 아들을 지켜줄 거다. 다만 족자 속 고승에게는 딱 한 가지 성가신 것이 붙어 있다. 곧은 마음만 있으면 물리칠 수 있는 성가심이지만 떠맡기게 되어 참으로 미안하다. 허나 당신의 아들에게 보이고 말았으니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용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고는 곧장 우리 집을 떠났기 때문에 생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해가 바뀌어 내가 다니던 학교에 집단 눈병이 돌기 시작했을 때 과연 승려의 말은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눈병만이 아니라 나는 흔해빠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단, 병에 걸리지 않은 건 ‘족자 속 고승에게 붙어 있는 성가신 것’의 정체를 알게 되기 전까지의 일이다. 아아,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그 정체가 대관절 무엇인지 궁금한 형제·자매들께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그림자밟기〉를 읽어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정말 끝내주는 소설인데 ‘시대물+단편’이라는 이유로 괄시받는 듯하여 살짝 각색해봤다.

기자명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